문의당기(文漪堂記)........신 위(申 緯)
申漢叟名其堂曰文漪。送書於予曰。
신한수(申漢叟)가 제 집 이름을 문의당(文漪堂)이라 하고
나에게 편지를 보내어 이렇게 말하였다.
吾性樂水。而常恨闤闠中無泉池之觀。
“내 품성이 물을 좋아하기에, 늘 도성 안에 볼 만한 샘이나 못이 없는 것을 한
스럽게 생각하였소.
雖有觀水之術。無所於施。
비록 물을 바라보는 기술을 가지고 있지만 이를 시행할 곳이 없었소.
觀於天下地圖而有得焉。
그러다 천하의 지도를 보다가 터득한 바가 있었지요.
盖積水蒼然。九州萬國。大而如帆檣之布列。小而如鷗鷺之出沒。
대개 많은 물이 온 세상 만국에 푸른데, 크게는 배들이 줄지어 늘어선 것과 같은
곳도 있고, 작게는 갈매기나 해오라기가 물결에 뜨락 잠기락하는 곳도 있지요.
人之遍九州萬國者。皆水中物耳。
사람들이 온 세상 만국에 두루 퍼져 있는 것은 모두 물 가운데 있는 존재일 뿐이지요.
此堂之所以名也。
이 집 이름을 문양이 있는 물결이라는 뜻의 ‘문의’라고 한 까닭이 이것이라오.
子其爲我記之。
당신은 나를 위하여 기문을 지어주시지 않겠소.”
予見而笑曰。世固有無其實而處其名者。
내가 이를 보고 웃으며 말하였다.
“세상에는 정말로 그 실체가 없는데도 그 이름을 차지하는 것이 있다오.
今子之名其堂。可謂無其實矣。
이제 당신이 그 집에 이름을 붙인 것은 가히 그 실체가 없다 하겠소.
雖然子亦有說。
비록 그러하지만, 당신도 또한 할 말이 있겠지요.
今有家於海島之中者。人必謂之居水而不謂居山矣。
이제 바다의 섬 가운데 집이 있는 사람은, 남들이 반드시 물에서 산다고
하지 산에서 산다고는 말하지 않겠지요.
島人固亦有環墻而宮。閉戶而坐者。
섬사람들 중에서
정말 담장을 두르고 집을 짓고 문을 닫은 채 들어앉아 있는 자는
以其不日狎於濤淵而謂非居水不可也。
매일 파도를 몸으로 직접 접하는 것은 아니라는 이유를 들어
이들이 물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고 하면 아니 되겠지요.
如是者人皆知其然矣。
이와 같은 것은 사람들이 모두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지요.
而何獨疑於子之言乎。
그런데 어찌 당신의 말만 의심을 품겠나요?
大地一島也。衆生島人也。
큰 땅도 하나의 섬이고, 중생들도 모두 다 섬사람이지요.
雖浮家泛宅而日與水居者。亦其勢不能以駐眼不移。
비록 배를 집 삼아 떠다니면서 매일 물과 더불어 사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 형편상 눈을 늘 한 곳에 고정시켜 움직이지 않게 할 수는 없을 것이고,
必有暫時移視而須臾無心於斯時也。
필시 잠시라도 시선을 움직일 것이요.
그러면 그 순간은 잠시 마음이 물에서 떠나겠지요.
跬步與千里一也。
반걸음 간 것이나 천리를 간 것이나 매한가지인 법이지요.
今子居於斯堂。而一欲觀乎水紋之淪漪也。
이제 당신이 이 집에 거처하면서
물결이 찰랑거리는 것을 한 번 보고자 하는데,
雖朝於闤闠而將夕於江湖。其不能常目於水。子與彼無以異矣。
비록 아침에 도성 안에 있다가 저녁에 강호로 나간다 하더라도,
늘 물에 눈길을 둘 수는 없는 것은 당신과 저 사람이 다를 것이 없지요.
或在於轉眄之久。或在於朝暮之頃。
저 사람은 길어도 눈 한 번 깜빡할 순간이고,
당신은 짧아도 아침에서 저녁까지 제법 시간을 두고 있겠지요.
轉眄之比朝暮則有間矣。
눈 깜빡할 사이는 아침에서 저녁까지와 비교한다면 차이가 있겠지만,
然盖將自其久者而言之。則俛仰之間。已爲陳跡。
그러나 그 오래 지속되는 측면에서 말한다면, 하늘을 쳐다보고 땅을
내려다보는 짧은 사이에도 이미 지나간 묵은 자취가 된다오.
自其不久者而言之。則千百年爲一朝矣。
그 오래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말한다면, 백 년이나 천 년도
하루아침과 같을 것이지요.
夫俛仰之爲久。而千百年之爲不久。則以轉眄咲朝暮。吾不知其可也。
저 하늘을 쳐다보고 땅을 내려다보는 시간이 길고
백 년 천 년의 시간이 길지 않다면,
눈 깜빡하는 순간이 아침에서 저녁까지의 시간을 비웃을 것이니,
나는 그렇게 해도 좋을지 모르겠소.
夫孰曰非其實也。
누가 그것이 실체가 아니라고 말하겠소?”
或曰子之言。辯則辯矣。雖然吾懼人之責漢叟以魚鼈爲禮也。
내말을 듣고 어떤 이가 “당신의 말은 따져보면 그럴 듯하오. 그러나
내가 겁나는 것은 남들이 한수에게 산에 살면서 물고기와 자라로 예를
표한다고 책망할까 하는 일이라오.” 라 말하였다.
予曰苟如是。子能喚渡於歐陽子之畵舫齋乎。相與大咲。
이에 내가 “정말 이러하다면, 당신은 구양수(歐陽脩)의 화방재(畵舫齋)에서
뱃사공을 부를 수 있겠군.” 하고는 함께 크게 웃었다.
- 해석 이 종묵 서울대교수
<해설>
신위의 문장과 글씨는 서영보보다 명성이 높지만, 벗에게 그 현액과 기문의
글씨를 서영보에게 부탁하였다. 신위는 자신의 집이 도성 안에 있지만, 큰 대
지 자체도 하나의 섬이라 생각하였다.
이러한 사고는 구양수(歐陽脩)의 화방재(畵舫齋)에서 확인된다. 구양수는 활
주(滑州)에 폄적되어 있을 때 방안으로 들어가면 마치 배 안에 있는 것처럼 서
재를 꾸민 다음 그 이름을 화방재라 하였다. 문의당이나 화방재 모두 와유(臥
遊)의 뜻을 담은 것이다.
서영보는 상대주의적 시각에서 모든 사람이 다 섬사람이라 하였다. 물이 보이
는 곳에 집을 짓고 살더라도 늘 물을 보고만 있지는 않기 때문에 어쩌다 물을
보는 사람과 다르지 않다. 오히려 물과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사람이 오히려
마음으로는 더 물과 가까이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객관적 시간의 양은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 이렇게 서영보는 말하였다.
이렇게 말하고 말기에는 너무 진지한 듯하여 농을 던졌다. 《예기(禮記)》에
“산에 살면서 어별(魚鼈)로 예를 표하고 물가에 살면서 사슴과 돼지로 예를
표하는 것은, 군자가 이를 예를 알지 못한다고 한다(居山以魚鼈爲禮, 居澤以鹿
豕爲禮, 君子謂之不知禮.)”라 하였다.
신위가 도성 안에 살면서 늘 물을 가까이 한다 한 것은, 산 속에 살면서 물
고기로 예를 표하겠다는 것과 다름이 없지 않겠는가? 이렇게 질문을 던져놓고,
서영보는 구양수의 화방재가 정말 물속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렇게 반문하여
글을 마쳤다. 농으로 마침으로써 오히려 삶의 여유가 돋보인다.
- 해설 이 종묵 서울대교수
<공부>
* 申漢叟 : 신 위(申 緯), 자는 한수(漢叟), 호는 자하(紫霞),
19세기 전반에 시(詩)·서(書)·화(畵)의 3절(三絶)로 유명했던 문인이며, 시에 있어서는
김택영이 조선 제일의 대가라고 칭할 만큼 당대를 대표하는 시인 중의 한 사람이었다.
1812년(순조 12) 중국에 가서 옹방강(翁方綱)을 비롯한 그곳의 학자들을 만나고 돌아
온 이후 그 전에 쓴 자신의 시들을 다 태워버렸다.
그의 시는 전(前)시대에 활약했던 이서구(李書九) 등의 시풍을 계승하면서
한말 4대가인 강위·황현·이건창·김택영 등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 漪 잔 물결 의
* 樂 즐길 (락), 좋아할 (요)
* 闤 거리 환, 闠, 城市바깥문 궤...... 闤闠환계 : 도성 안의 거리, 저자.
* 檣 돛대 장, 帆檣 범장... 돛대
* 子 당신(경칭)
* 予 나(me) 여
* 固 진실로 (고), 말할 것도 없이,물론,본디부터, 정말로
* 狎 익숙할 (압) 親狎친압할 (압) 愛狎애압...허물없이 가까이 하여 썩 친함 (親近)함
親狎 친압.. 버릇없이 너무 지나치게 친함 ex) 狎鷗亭
* 跬 반걸음 (규) 跬步규보... 반걸음
* 淪漪 윤의 잔물결, 淪 잔물결 륜, 빠질 륜(淪落윤락)
* 眄 곁눈질할 (면) 곁눈질할 (묜) 左顧右眄좌고우면
* 轉眄전면 ①눈알을 굴려서 봄 ②잠깐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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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咲 웃음 (소) 웃다, 비웃다
* 懼 두려워할 (구) 염려하다, 걱정하다, 두려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