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모자 2010. 8. 20.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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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에 매미가 운다. 창 밖 저 먼 곳에서 우는 소리가 나기 시작하면 금세 그 소리가 퍼져

나가 온 아파트의 매미들이 일제히 울어 댄다. 그리고 잠시 쉬었다가 또 다시 반복되는 매

미소리.

 

  예전에도 밤에 매미가 울었나? 그 분야를 잘 아는 분에게 물으니 도시의 밤이 밝기 때문

이라고 한다. 생각해보면, 기온을 인위적으로 떨어뜨리는 에어컨 냉방을 즐기는 우리가 밤

이 밝다고 우는 매미를 시끄럽다고 나무랄 수 있을까.

 

  매미는 땅속에서 7년 혹은 십 수 년을 살다가 올라와, 한 해 여름의 2~3주 동안 열심히 울

며 짝짓기를 하고 나서 죽는데, 땅속에서 기다려온 긴 일생에 비해 터무니없이 짧은 짝짓기

시즌이 잦은 비로 많이 허비되었으니, 이래저래 매미는 열심히 울며 짝을 찾아야하는데 밤

또한 밝으니 어찌 울지 않을 수 있으리오.

 

  한두 마리가 울기 시작하면 일제히 따라 울어 큰소리로 진행되다가 또 서서히 약해져, 끊

어지려나 하고 들어보면 다시 이어져 세차게 들려오는 매미소리.... 자세히 귀 기울여 들어

보면 서로 좀 다른 소리들이 섞인 것 같다가도 어느새 한 가지로 뭉뚱그려져 울려오는 대합

창.....

 

         細泉流月葉號風       작은 샘물 달빛 흘러 잎 바람에 부르짖고

         欲斷還連乍異同       끊어질 듯 이어지며 다른 듯 같은 소리

         曾記客程瘙首立       나그네길 떠올리며 머리 긁적이면서

         萬山紅葉夕陽中       온 산 가득 붉은 잎 석양 속에 서 있네

 

  목은(牧隱) 이 색(李 穡)이 지은 <매미소리(蟬聲)>라는 시이다. 고려 말 신흥 세력과의 갈

등으로 관직에서 멀어져 방랑하던 때에 지은 작품이다. 저물어가는 왕조(王朝)와 함께 떠밀

려 어디로 가야할 지 모르는 지식인의 무력감을 노래한 시이지만, 매미소리를 절묘하게 묘

사한 2구에서 그가 시인이었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 끊어질 듯 이어지며 다른 듯 같은 소리.......

 

  1구에서는 달빛이 샘에 비친다고 하였는데, 4구에서는 석양 중에 서있다고 하여서 처음엔

좀 의아하였으나, 생각해보면 이런 일은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지난달 서해안 무창포에

서도 석양과 함께 서쪽하늘에 걸린 굵은 초승달을 본 일이 있다. 이야기가 잠시 빗나갔다.

 

  매미는 그 모습이 깨끗하고 투명해서, 예로부터 문학작품에서도 그 대접을 받아 왔다. 당나

라의 우세남(虞世南)이라는 이는 ‘갓끈 드리우고 맑은 이슬 마시며, 성근 오동나무 사이로 노

랫소리 흘리네/垂緌飮淸露,流響出疏桐’ 라고 하여, 관모(官帽)를 쓴 고결한 성품의 군자(君

子)로 매미를 묘사하였다. 송(宋)나라의 주 희(朱 憙)가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요 며칠 동안

매미소리가 더욱 맑으니, 들을 때마다 그대의 높은 풍모를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었네’ 라고

했던 것도 매미가 주는 이러한 이미지와 무관하지 않다.

 

  조선의 이 항복은 매미를 일컬어 ‘단지 서늘한 하늘에서 가을 이슬만 마시고, 뭇새들과 함께

높은 가지 다투지 않는구나/只向涼霄飮秋露  不同群鳥競高枝’ 라고 하여, 매미를 잡으려는 버

마재비를 탓하였다. 매미가 어찌 이슬만 먹고 살 수 있을까마는, 그만큼 옛 사람들은 매미를

욕심 없이 맑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고고(孤高)한 존재로 여겨왔다.

 

  매미소리에는 듣는 이의 마음속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듯한 청량감(淸凉感)이 있다. 다산(茶

山) 정 약용(丁 若鏞)은 <소서팔사(消暑八事)>라는 시를 지어, 여름에 더위를 피할 수 있는 8

가지 방법을 말하면서, 그중 여섯 번째로 ‘숲속에서 매미소리 듣기(東林聽蟬)’를 들었다. 아무

리 더울 때라도 숲속은 시원한데 거기에 삽상(颯爽)한 매미소리까지 곁들인다면 이 얼마나 손

쉽게 얻을 수 있는 피서법인가.

 

  이런 매미소리이지만, 듣는 이의 심상(心想)에 따라 여러 가지 생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나라를 잃고 동경의 여관에 머물던 만해(萬海) 한 용운(韓 龍雲)에게 매미소리는 사면초가로

들렸으며/蟬聲似楚歌(선성사초가), 18년 동안 벽지(僻地)에서 유배생활을 하였던 앞의 정 약

용에게 매미소리는 때로 부침개 지지는 소리처럼 시름겹게 들렸을 법도 하다/蟬唱愁如急火煎

(선창수여급화전).

 

         西陸蟬聲唱        가을 매미 소리 울어대는데

         南冠客思深        감옥 속 나그네 근심 깊도다

         不堪玄鬢影        견딜 수 없네 저 매미가

         來對白頭吟        내게 백두음 가락 불러줌을

         露重飛難進        먹은 이슬 무거우니 날기 어렵고

         風多響易沈        바람 세어 그 소리 쉬 사라지네

         無人信高潔        성품 고결함 믿어주는 이 없으니

         誰爲表予心        누가 내 마음 표현해 줄 것인가

 

  위의 시는 당(唐)나라 낙빈왕(駱賓王)이라는 시인이 지은 <감옥에서 매미소리를 들으며>라

는 시이다. 낙빈왕은 측천무후(則天武后)의 비위를 거슬려 옥에 갇혔다. ‘백두음’이란 변심한

남편 사마상여에게 아내 탁문군이 지어서 들려주었다는 한탄(恨歎)의 노래. 내 마음 저 매미

같이 고고하고 깨끗하건만 그 누가 믿어줄 것인가. 감옥에 갇힌 시인에게 창 너머로 들려오는

매미소리는 탁문군의 백두음처럼 애절하기만 하다.

 

  고대 중국에서는 죽은 사람을 장사 지낼 때 사자(死者)의 입속에 옥으로 깎은 매미를 넣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십 수 년을 땅 속에 살다가 땅 밖으로 나와 나무 위에서 껍질을 벗고

깨끗한 모습으로 환골탈태(換骨奪胎)하는 매미처럼, 이 세상 고해(苦海)의 모든 껍질을 훌훌

털고 저 세상에 가서 좋은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라는 염원을 담은 것이리라.

 

 

         매미가 벗어 놓고 간 허물 속으로, 눈이 내린다

         이 누더기의 주인공은 저 광활한 우주 속으로 날아갔는데

         눈은 비좁은 구멍 속으로 자꾸 자꾸 내린다

         그리하여 쌓인다

         하늘은 몇 번이나 녹았다가 얼고

         (이 겨울이 지날 때쯤 나는 매미 허물을 가만히

          벗겨봐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날아갈 줄도 모르고, 발을 가슴께로 그러모은

         얼음매미 한 마리가 거기 웅크리고 있겠지

 

  안 도현 시인의 <얼음매미>라는 시이다. 껍질만 남기고 존재는 이미 사라지고 없지만, 십

수 년을 땅속에서 기다려오다가 짧은 순간 사명(使命)을 완수하고 사라진 잔해(殘骸). 억겁

을 이어져 온, 다음 세대에 생명을 전달하여야 하는 그 사명이 장엄(莊嚴)하기도 하다. 목숨

붙어 있다는 일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나도 매미도 지금 여기에 꼭 있어야할 귀중한 존재

다.

 

  밤이 깊어감에도 매미소리는 여전히 나의 창에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