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漢詩)의 맛과 멋

1년을 2년처럼

겨울모자 2010. 10. 21. 15:43

    내 사무실 책장에 작은 탁상시계가 하나 놓여 있다. 크기는 내 손아귀에 가득 찰 만큼 작고,

쇠로 만들어서 묵직한 것이 양쪽 머리 위에는 앙증맞은 울림통 두 개를 이고 서있다. 시계의 상

표는 <Peter>이고, 로마 숫자로 표시된 VI자 옆에 아주 작은 글씨로 <made in Germany>라고

쓰여 있는 것으로 보아 오래 전에 독일에서 만든 시계인가보다.

 

    만든 지 수십 년은 족히 지났을 것 같은 이 시계는 글자판과 몸체 테두리에 아름다운 문양이

새겨져 있다. 군데군데 금빛 도장(塗裝)이 벗겨져 있는데, 시간은 11시 5분전에 멈추어 있다...

항상!

 

    1991 년의 어느 일요일.. 아들아이가 중학생이었을 때 같이 황학동의 벼룩시장에 갔다가, 노

점상의 진열대에서 반짝거리는 이 시계를 발견하고.. 우린 의미 있는 미소를 지으며 서로 쳐다

보다가  이 시계를 샀다. 사고 나서 한 동안은 째깍째깍 잘도 가던 이 시계가 어느 날 멈추어 버

렸다. 몇 번 고쳐 보았으나.. 하지만 너무 오래 된 시계라서 멈춘 것에 대한 아쉬움은 크지 않았

다.

 

    그 즈음 아들아이와 나는 미국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시리즈로 발표하던 <백 투 더 퓨

쳐> 라는 영화에 빠져 있었다. 신기한 것을 좋아하는 아들아이와 나의 취향이 맞아, 비디오 테

입을 사서 틈만 나면 같이 보고 또 보곤 하였다.

 

    아들아이와 자주 시간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었다. 아들아이는 그 영화들을

좋아한 나머지, 영어 대사(臺辭)를 줄줄 외울 정도가 되었다. 영어를 좋아하던 아들아이가 그

영화를 좋아하게 된 것이지만, 나중엔 그 영화가 아들의 영어를 더 훌륭하게 만들어 주었다.

 

    갑자기 무슨 영화 이야긴가 하시겠지만, 그 영화의 클라이맥스 장면에서 주인공 소년이 타임

머신 차(車)를 운전할 때 그 차의 대쉬보드 위에 탁상시계를 하나 올려놓는데... 그 시계가 바로

우리가 벼룩시장에서 산 것과 똑같은 모양의 것이었다.

 

    아들아이는 성장하여 대학생이 되었으나, 다니던 공대를 거의 마칠 즈음, 다시 시험을 치러

의과 대학생이 되었다. 나는 처음엔 말렸지만 끝내 자신의 뜻을 이룬 것이 참으로 대견했다. 공

대를 다닐 땐 얼굴에 핏기가 없더니, 의과대학생이 된 후론 적성(適性)에 맞는다며 항상 싱글

벙글 생기가 넘쳤다.

 

   처음부터 의대로 들어갔더라면, 지금 스물여섯의 나이에 벌써 의사가 되어 종합 병원의 복도

를 걸어 다니고 있을 텐데... 아직도 본과 1 학년의 어려운 공부에 영일(寧日)이 없는 그를 보면

안쓰러울 때가 많다.

 

    11시 5분전에 멈추어 있는 시계를 본다. 태엽을 감고 얼람(警鐘)을 울리면 따르르릉 맑은 소

리가 난다. 이 소리가 춘천에 있는 아들 아이에게 전해져서 힘든 나날의 피로를 좀 덜어 주었으

면 좋겠다.  그래, 지금은 11시 5 분 전... 12시가 되려면 얼마 안 남았지! 그 때까지 힘내라, 정말

얼마 안 남았어!!    (2002년 8월)

 

 

               * *                * *                * *                * *

 

 

    아들아! 2 학기가 시작되었구나. 1 학기 동안에 네가 집에 한 번인가 왔었나? 끝없는 공부 때

문에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는 너를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자기 몫을 하는 사람으로

홀로서기 까지, 어느 분야인들 어렵지 않은 곳이 있으랴마는, 네 스스로 뜻을 세워 선택한 길..

힘들어도 다시 또 힘을 내어 주기 바란다.

 

    공부 때문에 보통의 상상을 초월하는 고생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는 마음 매우 안쓰럽더구

나. 너의 학교 학생들을 수준급 이상으로 키우려는 학교 측의 의지를 강하게 느꼈다. 이제 머

지않아 의사가 되어 직접 환자를 대할 때, 열심히 공부한 그 시간들의 고마움을 절절히 느끼게

될 것이다.

 

    일단 <의사>가 되고난 이후에는 누가 잘 가르쳐 주지도 않고 또한 열심히 하라고 내몰지도

않는다. 어려운 환자를 만나 치료에 관한 어려운 결정을 스스로 내려야할 때 의사는 참으로 고

독한 것이다.

 

    시간은 끊임없이 흐르는 것, 우리의 삶도 끊임없이 걸어가야 하는 먼 길... 보이지 않는 저

앞 어딘가에 있을 아름다운 마을을 그리며, 지금 너는 누구나 가야 하는 외롭고 고된 길을 홀

로 가고 있는 것이겠지...

 

    도중에 만나는 비바람에 지쳐 쓰러지는 일 없이, 외롭고 힘들어도 지지 않고 나아가는 용기

가 필요할거야. 올바른 의사가 되겠다는 신념이 네게 용기를 줄 것이다. 열심히 네 힘을 키워서

항상 남의 아픔을 먼저 돌아보는 사람이 되기 바란다. 너를 늘 사랑하는 가족들의 기도가 또 네

게 힘을 줄 것이다. 성당에는 꼭 나가고 바쁘겠지만 영세를 빨리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기 바란

다.

 

    외롭고 힘들어도 늘 자신의 신념을 꿋꿋하게 간직하고 사는 것이야말로 멋진 삶이란 것을

이미 잘 알고 있는 너에게 더 이상의 무슨 말이 필요하겠니? 어려울 땐 항상 아침을 생각해라.

마음을 짓누르는 일이 있으면, 항상 다음날 아침에 다시 그것을 생각해 봐라.

 

    점심시간이다. 창밖엔 한낮의 밝은 빛이 가득하구나. 저 빛처럼 밝은 웃음이 네 얼굴에서 늘

떠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서울에서 애비 씀   (2002년 8월)

 

 

               * *                * *                * *                * *

 

 

** 몇 년이 흘러 점점 많아지는 공부에 더욱 힘들어하던 아들아이에게, 또 보고 힘내라고 위의

글들을 다시 보내주었더니......  답장이 왔다.

 

    아버지께,

 

    제게 주셨던 이 글을 참 오랜만에 다시 보니 감회가 새롭네요. 언제나처럼 주말을 집에서

보내고 일요일 밤에 돌아오는 춘천, 처음엔 그렇게도 이 도시에 정이 붙질 않더니, 이젠 예전

엔 잘 보이지 않던 집 앞의 나무나 벤치의 구석구석에도 눈길이 갑니다. 이제 앞으로 이곳을

떠나면, 다시 와서 좀 살아보고 싶지 않을까 할 정도로 정이 들었나 보네요.

 

    여러 해 전에 춘천으로 오면서 이곳에서 지낼 시간이 끝도 없이 길게만 느껴졌었는데 이제

머지않아 졸업을 해야 할 시점에 오니 만감이 교차합니다.

 

    앞으로 겪을 일들을 생각하면, 이제까지 겪은 일들은 그야말로 새발의 피겠지요. 제 20대

를 춘천에서 거의 다 보내면서, 오랜 시간을 학생으로 지내느라 또래들에 비해서 철도 덜 들

고 사회 돌아가는 것도 잘 모르고 부모님께도 무엇 하나 아들 노릇을 버젓이 한 기억이 없어

죄송하기만 합니다.

 

    아버지와 함께 샀던 그 시계가 늘 11시 5 분 전.^^  진짜 얼마 안 남았네요. 남은 시간도 열

심히 공부해서 그야말로 유종의 미를 거두겠습니다. 의사가 되려고 그간 나름대로 공부해왔

지만, 학생 때 공부한 것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는 말씀, 이제 또 가슴에 새기며 열심히 달리겠

습니다.

 

    제가 공부에 짓눌려 신경이라도 쇠약해질까 봐 늘 걱정되시죠? 즐거운 마음으로 공부하려

하니 아무 걱정 마세요. 아직 제 용돈 하나 벌어 쓸 생각도 못하는 못난 저를 항상 착하다고 해

주시고 믿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저는 미래의 제 아이들과 아내에게 어떻게 해주어야 할지 이미 아버지께 다 배웠습니다. 늘

건강하세요.               진원 올림      (2005. 8. 13)

 

 

               * *                * *                * *                * *

 

 

    의과대학을 졸업한 아들은 그 후 공중보건의 3년 그리고 인턴 1년의 과정을 마치고, 현재 서

울의 모병원에서 내과 레지던트 1년차의 과정을 밟고 있다. 이제 우리 나이로 34세.

 

    수많은 환자를 돌보느라 두세 시간 밖에 잠을 자지 못하는 날이 허다하고, 일주일에 한두 번

집에 와서 잠만 자고 새벽에 나가기 바쁘니, 어쩌다 모처럼 마주 앉아 잠시 이야기를 나누면서

피곤에 지친 그의 얼굴을 바라볼 때 나와 아내의 마음은 무거워진다.

 

    한 해 한 해 지나며 나아지겠지만, 지금이 그의 인생에서 제일 힘든 시기일 터이니 같은 길을

먼저 지나온 선배로서 격려의 말만 몇 마디 해줄 수 있을 뿐, 그의 힘든 것을 손수 덜어줄 수 없

어 안타까운 마음이다.

 

    바쁜 중에도 그는 가끔씩 나에게 핸드폰 문자를 보낸다. 말끝에는 꼭 ㅋㅋ 나 ^^ 를 붙여서.

그것은, 집에 잠깐 들렀을 때 피곤함 때문에 부모에게 명랑한 모습을 보이지 못했음이 마음에

남아, 조금이나마 우리 마음을 편케 해주려는 의도라는 것을 나는 잘 알기에, 그의 착한 천성

(天性)이 늘 고맙기만 하다.

 

    요즘은 그럴 시간조차도 없지만, 공중보건의 생활을 할 때는, 주말마다 집에 와서 혹 설거지

거리라도 눈에 띄면 엄마 대신에 뚝딱 해치워 버리던 아들. 부모가 자신 때문에 걱정할까봐 늘

걱정인 그가, 아무쪼록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어려운 시기를 이겨내기만을 바라고 있다. 그리고

이젠 나이가 꽤 들었기에, 내 주위의 친지 친구들이 계속 배필 자리를 권해주셔서 너무나 감사

하고 있다. 하지만 선을 볼 짧은 시간마저 내기가 쉽지 않으니 이 일을 어쩌나, 내년쯤에는 시간

을 조금씩이라도 내서 꼭 마음씨 고운 배필을 얻을 수 있었으면........

 

   소 동파(蘇 東坡)의 시를 한 구절 읊어보자.

 

        無事此靜坐      이렇게 정좌(靜坐)하고 있으니

        一日似兩日      하루가 마치 이틀 같구나

        若活七十年      만약 이렇게 70년을 산다면

        便是百四十      곧 140년을 누리는 셈이 아닌가

 

    얼마나 좋은가. 자기 하기에 따라서는, 남들이 사는 1년을 2년으로 늘여서 살 수 있다니. 신

변의 잡된 것들을 멀리하고 살아가니 마음을 괴롭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정자에 조용히 앉

아(정좌 靜坐)있는 시인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보자.

 

    단순히 그저 넋을 놓고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분주(奔走)와 세욕(世慾)에 젖었던 마음을

비우고 조용히 자기 자신 속으로 침잠(沈潛)하는 것이 바로 정좌(靜坐)이다. 조용히 정좌를 하

고 있으니 하루가 이틀처럼 느껴진단다. 그만큼 많은 생각을 할 수가 있으니, 어려움을 딛고,

자신을 살지게 해줄 올바른 이치를 많이 이끌어 낼 수 있다는 뜻일 것이다.

 

    앞으로 몇 해가 지나 아들이 나름대로 성취를 얻은 후, 훌륭한 내과의사가 되어, 1년을 2년

처럼,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남의 아픔을 알고 어루만지는 삶을 살았으면 한다. 또한 그간 못다

키운 소양(素養)과 취미(趣味)도 틈틈이 가꾸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것이 가끔 나와

함께라면 나는 더욱 행복할 것이고........   (2010. 10.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