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 日 (추 일) ....... 가을날 (자작 한시)
지난 주말
남쪽 바다를 보러 갔다.
목포에서 하루를 묵고
찾아간 곳은 고흥 반도.
고흥 반도는 마치 섬과 같아서
지도를 보면 제법 큰 땅덩어리가
폭 4km 의 좁은 육지의 브릿지로
보성군에 대롱대롱 매달려
남해바다에 떠 있는 형국이다.
지난 번 위성(衛星)을 발사하였던
나로도(羅老島)에 가까워지자
은물결이 자글대는 바다와
숨어있던
작은 아름다운 포구(浦口)들이 나타나고
그리고 한 편으론
제법 넓은 들이 펼쳐져 있다,
풍성한 가을 들판이.
차를 멈추고 밖으로 나갔다.
벼가 익어 고개 숙인 논에는
경이로운 노오란 빛이 가득하고
허수아비 하나
마침 날아가는 외기러기 전송하듯
푸른 하늘을 우러르고 있다.
곡식과 과일에
감미로움을 더해줄 따스한 햇빛이
오후의 들판 위로 내리 쪼인다.
키를 훌쩍 웃자란 수숫대마다
거뭇거뭇 벌은 수수가 미풍에 흔들리고
조(粟)도 벌써 다 익어
붉은 이삭들이 밭에 가득
갈고리처럼 늘어져 있다.
조(粟)를 이렇게 밭에서 보는 것은 처음이다!
사람없이 한가로운
시골 들판을 거닐다가
싸리 울타리를 지나는 노인에게
아는 사이처럼 인사하고
나로도 가는 길을 묻는다.
이럴 땐
타임머신이 필요해!
자동차가 아니고 나귀나 노새
포장길이 아니고 꼬불꼬불한 흙길
산수화 같은 옛 강산을 상상하며
머언 곳
이런 한가한 풍경속의 한 점(點)으로
나를 대입하고 싶다.
그리고 그속에서 살아보고 싶다.
한 사람의 초부(樵夫)가 되어
그물 치고 나락 키우며
살아보고 싶다.
秋 日 가을날
偶人揮手餞孤鴻 허수아비 손 흔들어 외기러기 전송하고
稻熟低垂粟已紅 벼 익어 늘어지니 조도 이미 붉었는데
世事不知千里客 세상 일 잊은 나는 천리에 나그네 되어
籬邊前路問樵翁 울타리 곁 초옹에게 갈 길을 묻는다
(2010. 10. 22. 作)
偶人 우인 : 허수아비
揮手 휘수 : 손을 흔들다
餞 전 : 전송하다, 배웅하다
稻熟 도숙 : 벼가 익다
粟 속 : 조
樵翁 초옹 : 나뭇짐 진 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