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모자 2011. 4. 20. 17:37

   문학 작품에서 ‘사물을 실상보다 지나치게 크게 혹은 작게 표현함으로써 문장의 효과를

높이려는 수사법’ 을 과장법誇張法이라고 한다. 있는 그대로의 묘사는 너무 심심하지 않은

가. 예로, ‘눈물이 많이 났다’ 보다는 ‘눈물이 홍수를 이루었다’ 가 더 효과적이고, ‘그런 마

음이 전혀 없다’ 보다는 ‘그런 마음이 눈꼽만큼도 없다’ 가 더 기억에 남는다.

 

 

   당나라의 시인 두보(杜甫)는 서민들의 어려운 생활을 여러 편의 시로 썼는데, 그중의 한

수 <가을바람에 띠 집이 부서지고> 라는 시에서

 

 

                    牀牀屋漏無乾處     자리마다 비가 새어 마른 곳이 없는데

                    雨脚如麻未斷絶     삼단 같은 빗발은 그칠 기미가 없네

 

 

라고 비雨오는 장면을 묘사하였다. 비의 양이 많으면 줄기처럼 내린다. 띠 집이니 지붕이야

오죽할까. 비가 새서 이미 온 집안을 다 젖게 만들고도 그칠 줄을 모르니, 이에 대한 원망怨

望을 삼단 같은 빗발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베를 짜려면 우선 마麻를 삶아서 그 줄기를 벗겨 잘 마를 때까지 주욱 걸어 놓는다. 계속

비가 퍼붓듯 내리는 모습이 굵고 거친 삼단 널어놓은 것 같다고 하였으니, 전란으로 인해 하

루하루 먹고 살기도 힘든 민초民草들에게 설상가상으로 매정하게 내리는 비雨가 피부에 파

고드는 채찍처럼 아프게 느껴진다.

 

 

   이번엔 이 백李 白의 시를 보자. 당 현종 때 안록산의 난을 진압하러 나간 병사들의 시름을

읊은 <북풍행北風行>이라는 시에

 

 

                    燕山雪花大如席     연산의 눈송이는 방석만 하여

                    片片吹落軒轅臺     조각조각 나부끼며 헌원대로 떨어지네

 

 

라고 하였다. 전쟁은 누구에게나 모진 고생이지만, 추운 북방의 싸움터로 나가는 병사들의 고

충은 오죽할 것인가. 모진 바람 추위에 눈마저 내리니, 반갑지 않은 그 눈송이의 크기가 방석

만큼 크다고 하였다.

 

 

   이 경우엔 주먹만 하다고 하면 그럴듯할 것을 방석만 하다고 하였으니, 아무래도 부자연스

러워 나타내려고 한 뜻을 스스로 그르치고 말았다. 과장법! 하면 떠오르는 이 백李 白의 ‘백발

삼천장白髮三千丈’ 이란 유명한 시구詩句도 나는 매우 어색하게 느껴진다. 흰 머리가 삼천 길

이나 길었다니,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말하는 표현치고는 너무 지나쳐 읽는 이의 마음도 좀 질

리게 된다. 대시인의 과장법이 왜 이리 어색한 것일까.

 

 

   흰 머리가 늘어나는 일을 한탄하는 표현이라면 다산茶山 정 약용丁 若鏞의 시 구절을 보자.

   

                     白髮勢如昏星生      백발 돋아나는 것이 초저녁 별 뜨는 것처럼

                     初來只見一星呈      처음엔 별 하나 나타나지만

                     須臾二星三星出      금세 별 둘 별 셋이 나오고

                     三星出後衆星爭      별 셋 뒤엔 뭇별이 다퉈 나오듯

                     的的歷歷紛錯亂      깜빡깜빡 반짝반짝 어지럽게 빛나

                     應接不暇棋滿枰      헤아릴 틈도 없이 바둑판 알처럼 그득해지네.

 

 

   초저녁 하늘에 별이 나타나는 모습을 본 일이 있을 것이다. 하나 둘 보이더니 셋 넷 열 스물...

이윽고 헤아리지도 못할 만큼 삽시간霎時間에 하늘은 어두워지고 별은 가득해진다. 나이 들며

흰 머리가 빨리 늘어가는 일을 이렇게 잘도 과장하였지만 과연 꾸민 흔적도 없이 자연스럽다.

멋지다.

 

 

 

   봄이 깊어질수록 봄바람도 자주 불어 꽃잎이 떨어져 길에 쌓인다. 봄의 한적한 정취를 그린

고려의 진 화陳 澕의 시에

 

 

                     碧砌落花深一寸     푸른 섬돌 떨어진 꽃잎 한 치나 쌓여 

                     東風吹去又吹來     봄바람에 밀려갔다 다시 밀려오네

 

 

이라는 구절이 있다. 봄바람이 이리저리 불어오니 푸른 섬돌에 꽃잎이 한 치寸나 쌓였다고

하였다. 꽃잎이 인적 없는 뜰에 수북이 쌓인 정경情景에 작가의 봄 시름이 독자의 가슴으로

쉽사리 파고든다. 그러나, 이와 비슷한 정취를 그린 조퇴암의 시의

 

  

                     醉來不記關河夢     술 취해 관하의 꿈 기억나지 않는데 

                     路上飛花一膝深     길 위에 꽃잎 날려 무릎까지 차도다

 

 

라는 구절은 봄바람에 떨어진 꽃잎이 무릎까지 쌓였다고 과장誇張을 하였으니, 이 부분을 넘

어가던 독자讀者의 심상心想이 무릎까지 가득 찬 꽃잎에 걸려 시 전체 이미지의 흐름을 끊고

있다. 이 역시 과장법을 이용하여 효과를 높이려다 시의詩意를 그르친 예가 아니고 무엇일까.

 

 

   정 철 송강의 관동별곡에서, 동해를 바라보며 소나무 뿌리를 베고 꾼 꿈에 신선이 나타나

술을 나누는 장면에서, 북두셩(北斗星) 기우려 챵해슈(滄海水) 부어 내여.... 이 술 가져다가

사해(四海)예 고로난화, 억만창생(億萬蒼生)을 다 취(醉)케 맹근 후의.... 라는 구절이 나온

다.

 

 

   북두칠성을 잔盞 삼아 기울여 넓은 바닷물을 술 삼아 부어서, 세상 모든 백성으로 하여금

골고루 나누어 마셔 취하게 만든 후에... 라는 뜻이니 시인의 스케일이 얼마나 크며 웅대한가!

헛된 허장성세虛張聲勢로 보이기는커녕, 창공蒼空과 벽해碧海를 넘나드는 시인의 기백氣魄

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과장誇張도 이 정도가 되면 신선의 경지에 올랐다고나 할까.

 

 

   정 송강보다 약 한 세기나 후에 태어난 김 유기金 裕器라는 시조작가가 지은 시조 중에 ‘두

어라 사해四海로 태평주太平酒 비저 만성동취萬姓同醉하리라’ 라는 구절이 있는 것을 보면,

그는 정 송강의 작품을 텍스트로 삼아 공부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조선 후기 진주목사를 지낸 정 현석鄭 顯奭이라는 분은 김 유기의 윗 시조를

 

 

                     願將四海釀爲酒     사해 물로 태평주를 빚어

                     共醉升平萬姓家     만백성이 고루 취하게 하리라

 

 

라고 한역漢譯하였으니, 정송강의 훌륭한 과장법 표현은 시공時空을 초월하여 면면綿綿히

살아 있음을 다시 느끼게 된다. 다시 당나라 시인 맹교孟郊의 <원시怨詩>라는 작품을 보자.

 

 

                     試妾與君淚      저와 그대의 눈물을

                     兩處滴池水      두 군데서 연못물에 떨구어 보아요

                     看取芙蓉花      그리곤 연꽃을 보세요.

                     今年爲誰死      올해엔 누구 것이 죽는지

 

 

한 여인이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눈물을 많이 흘린 연못의 물은

염도鹽度가 높아져서 연꽃이 죽을 수 있다는 말이다. 연꽃이 죽을 정도로 염도가 높아진다니

얼마나 눈물을 많이 흘렸다는 말일까. 언뜻 읽어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 그러나 실상 어마어마

한 과장誇張임에도 불구하고 지극至極한 그 그리움에 선뜻 동조하고 싶어진다. 남자로서 이런

시를 지은 맹교는 여성의 심리를 많이 연구한 시인이었나 보다.

 

 

   눈물 이야기가 나온 김에 우리 시조 한 수를 더 읽어 보자.

 

 

                     눈물이 眞珠라면 흐르지안케 싸두었다가

                     十年後 오신님을 구슬城에 안치련만

                     痕迹이 이내업스니 그를 설워하노라 (무명씨)

 

 

   눈물이 진주라면 모두 모아 두었다가 그 많은 눈물 구슬로 구슬성을 쌓아서 십년 후에 오실

님을 그 성城에 앉게 할 수 있으련만, 흘린 눈물 곧 흔적 없이 사라지니 그를 슬퍼한다는 말이

다. 연못의 연꽃을 죽게 하는 것과 눈물 구슬로 성을 쌓는 것과 어느 편이 더 많은 눈물일까..

앞선 맹교의 시나 뒤의 무명씨의 시조 모두 우열을 가릴 수 없도록 절절하게 다가오는 과장법

의 명편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