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漢詩)의 맛과 멋

제망매가 (祭亡妹歌)

겨울모자 2013. 4. 12. 16:53

 

   우리글이 없던 신라시대에 한자를 빌어서 우리말을 표현하던 것을 이두(吏讀)라고 했는데

이것들이 더 진화하여, 우리말로 된 문장 전체를 한자의 뜻(訓)과 소리(音)를 빌려 표현하는

방법을 향찰(鄕札)이라고 하였고, 향찰로 쓴 당시의 노래를 향가(鄕歌)라고 부른다.

  

   향가를 또 사뇌가(詞腦歌)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사뇌’란 순수한 우리말 ‘새내’를 한자의

소리(音)를 빌어 표현한 것이다. (새)는 ‘높새바람’에서도 보듯이 동(東)쪽을 뜻하는 옛말이고,

(내)는 강 또는 그 지역의 땅을 뜻하는 옛말이니, ‘새내’란 동방(東方), 동토(東土)를 의미하는

말이다. 즉 사뇌가의 옛말은 ‘새내놀애’로서 동방의 노래라는 뜻이다. 여기에서 동방은 신라를

가리키는 것이니 ‘향가=사뇌가=신라의 노래’가 되는 것이다.

 

   향가는 삼국유사(신라향가)에 14수, 균여전(고려 초기)에 11수, 해서 모두 25수가 전해지고

있다. 삼국유사의 14수중에서 4수가 4줄짜리(4구체)이고, 2수가 8줄짜리(8구체)이며 8수가 10

줄짜리(10구체)이다. 균여전의 11수는 모두 10줄짜리(10구체)이다. 4줄로 된 4구체가 더 발달

하여 8구체가 되었고 다시 10구체로 발전한 것이다.

  

   8구체는 제 7구의 처음에, 또한 10구체는 제 9구의 처음에 ‘아으’라고 발음하는 阿耶(아야)

阿也(아야)등의 감탄사가 꼭 나온다. 훗날 우리 시조의 종장에 아이야, 두어라, 엇지타 등의

감탄사가 나오면서 글자의 숫자를 정하는 형식미가 완성되었듯이, 향가에 있어서도 이러한

초보적인 형식이 존재했다는 것이 흥미로운 일이다.

 

   그럼 제망매가를 감상해보자.

 

                  祭亡妹歌

                              月明

 

 

         生死路隱                           (죽고 사는 길이)

         생사로는

         此矣 有阿米 次肹伊遣               (이 세상에 있으므로 두려운데)

         예   이샤매  저히고

         吾隱 去內如 辭叱都                 (나는 간다는 말도)

         나는 가나다 말ㅅ도

         毛如 云遣 去內尼叱古               (못다 하고 가버렸느냐)

         몯다 닏고 가나니ㅅ고

 

         於內 秋察 早隱 風未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어느 가살 이른 바라매

         此矣 彼矣 浮良落尸 葉如            (이리저리 떨어질 이파리처럼)

         이에 저에 떠러디ㄹ 닙다이

         一等隱 枝良 出古                   (같은 가지에 났어도)

         하단   갖애 나고

         去奴隱 處 毛冬乎丁                 (가는 곳을 모르겠구나)

         가논   곧 모다온뎌

 

         阿也 彌陀刹良 逢乎 吾              (아, 극락세계에서 만날 나는)

         아으 미타찰애 맛보올 나

         道修良 待是古如                    (도를 닦으며 기다리겠노라)

         道닷가 기드리고다

                   (양주동 석독)                             (양주동)

 

 

   1929년 경성제국대학의 오쿠라 신페이(小倉進平)교수가 처음으로 우리 향가를 석독(釋讀)

하여 소위 천황상을 타기도 했는데, 당시 26세의 양주동 선생은 평양 숭의여전의 교수로 재직

하던 중, 학교 도서관에서 이 논문을 보았다. 천 수백 년 전에 지은 우리나라 노래를 처음으로

석독한 것을 양주동 선생은 경탄하며 읽다가, 그 일을 한국인이 아닌 일본사람이 했으며, 그

내용에 있어서도 태반이 오류 투성이였음을 알고는 커다란 의분(義憤)을 느꼈다.

 

   양주동 선생이 약 6개월여의 연구 끝에 일단 그 오류들을 지적하는 반론을 일본 사학자들의

논문잡지인 청구학총(靑丘學叢)에 발표하자 일대 센세이션이 일어났다. 일본인이었던 경성제

대 총장은 “이제 조선인들도 공부를 시작하였다”라는 제목으로 일본 신문에 글을 실어 일본인

학자들에게 경고를 하기도 했다니.... 참, 우리로서는 웃지도 울지도 못할 일이었다.

 

   이후 양주동 선생은 절치부심 연구에 골몰하여 13년 후인 1942년에 드디어 향가 25수의 본

격적인 석독서(釋讀書)로서 900페이지에 달하는 역작 <조선고가연구朝鮮古歌硏究>를 발간하

기에 이르렀고, 이어 1947년에는 고려가요해독서인 <여요전주麗謠箋注>를 발간하여 국문학

상 또 하나의 명저를 추가하게 되었다.

 

   다른 나라의 역사나 문화를 연구하는 일 자체를 나쁘게 볼 수는 없지만, 제국주의라는 관점

에서 본다면 그건 보통 일이 아니다. 몇 해 전에 작고한 번역문학가인 이윤기씨는, 제국주의는

본격적인 침탈에 앞서 약소국의 문화부터 파고들어 그 민족정신의 숨통을 미리 잡아버리는 습

성이 있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만주 집안(集安)의 광개토대왕비(碑)를 제일 먼저 발견하여 그중 몇몇 글자를 아전인수격으

로 해석하여, 일본의 조선 침략을 자기들의 옛땅의 회복이라고 호도(糊塗)한 것도 침략의 중추

적 역할을 하던 육군참모본부이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보면, 신라 진성여왕 때인 888년에 향가모음집인 <삼대목三代目>이라

는 책을 편찬했다는 기사가 나오는데, 이 책은 아쉽게도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다. 이 <삼

대목>과 비슷한 시기에 일본에서도 고대가요집인 <만엽집萬葉集>이 발간되어서 지금까지 전

해 내려오고 있다. 여기엔 고대 일본어를 한자를 빌어 표현한 노래가 4,500수 이상 전해지는데,

아직도 완전한 해독이 안 되는 부분이 상당히 많아서, 우리 학자들 몇몇이 그 노래들을 우리 고

대 한국어로 해석하려는 노력을 진행하고 있다.

 

   일본 나라(奈良)시의 동대사(東大寺)라는 절에 가면 정창원(正倉院, 쇼소인)이라는 왕실유물

창고가 있는데, 여기에 우리나라 옛 책들도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그곳에 혹시 삼대목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지만, 혹시 있어도 있다고 할까? 일본왕실의 조상인 4세기 야마토 조정(朝廷)

을 백제인들이 세운 것인데, 그러한 증거가 나타날까봐, 있어도 없다고 하겠지.

 

   언젠가 이 책 <삼대목>이 발견이 된다면 이야말로 1971년 무령왕릉의 발견에 버금가는 중대

한 일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우리의 옛 역사와 문화에 대해 우리가 모르던 많은 부분을 널리 밝

혀낼 수 있는 기적과도 같은 일이 일어나기를 고대해본다.

 

   다시 제망매가로 돌아가서, 이 시에서 제일 시적(詩的)인 부분을 나는 제2장이라고 생각한다.

한 부모에서 태어난 형제를 ‘같은 가지에서 피어난 이파리’에 비유한 것이다. 사족(蛇足)을 하나

붙이자면, 이 이미지가 나에게 또 다른 한시(漢詩) 한 수를 떠올리게 한다. 제망매가보다 약 500

년 전에 조조의 셋째 아들 조식(曹植)이 지은 소위 ‘칠보시(七步詩)’라는 시이다.

 

   조조가 죽은 후 그 첫째 아들인 조비가 왕위에 올랐다. 조비는 자기의 친동생 조식이 훌륭함을

알고 그를 형제이기 이전에 정적(政敵)으로 여겨 죽이려 마음먹었다. 트집을 잡아 불러들인 후,

그에게 어려운 명령을 내렸다. “일곱 걸음을 걸어라, 그리고 그 동안에 ‘형제’를 주제로 하여 시

를 짓되 형, 제 라는 글자가 들어가서는 안 된다. 못하면 죽일 것이다.”

 

   조식은 눈물을 흘리며 천천히 일곱 걸음을 걸으면서 시를 지었다.

 

              煮豆燃豆萁(자두연두기)     콩줄기를 태워 콩을 삶는데

              豆在釜中泣(두재부중읍)     콩은 솥 안에서 울고 있구나

              本是同根生(본시동근생)     본래 한 뿌리에서 난 것인데

              相煎何太急(상전하태급)     어찌 이리도 급하게 들볶아대나

 

   이 시를 들은 조비는 탄복하여 후회하며 조식을 살려주었다고 한다. 제망매가와는 상황이

반대이다. 월명스님은 동생의 죽음을 애석해하였는데, 조비는 동생을 죽이려 하였으니! ‘동생’

이라는 말의 어원(語源)이 이 시의 제3구의 동(同)자와 생(生)자에서 나왔다는 설도 있지만....

사실 여부는 알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