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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 (蚊蚋 문예)
겨울모자
2015. 11. 9. 11:41
가랑비 내리는 조용한 밤
한시 책을 펼쳐 읽는데
팔과 어깨 무언가 따끔따끔하더니
모기 한 마리 왱~하며 날다가
휙 휘두른 손에 가련하게도 맞아서
한시 책 흰 종이 위로 톡 떨어진다.
나의 모세혈관을 뚫어 찾던
가증스러운 침(針)이 또렷하구나.
인간보다도 지구상에 먼저 태어나
그 작은 몸속에 스텔스 전투기처럼
온갖 장치를 다 구비하고서
피를 빨기 위해
항응고제까지 발산한다는 녀석.
얄미워서 손가락으로 집어
말살(抹殺)해 버리려다가
아니지 너 이놈 이제부터는
한시(漢詩) 그 좋은 말씀 옆에 붙어서
남의 피만 빨아온 네 잘못을
오래 오래 반성하고 있거라.
조용히 책 한 번 닫아 눌러
녀석을 그 자리에 박제해 놓는다.
蚊蚋(문예) 모기
微雨讀書夜 가랑비 내리는 밤 책을 읽는데
惱人蚊噆時 모기란 놈 성가시게 물어대다가
手揮憐被打 휘두른 손에 가련하게도 맞아서
壯烈落于詩 장렬하게 시(詩) 위로 떨어지누나
生涯雖不久 네 생애 비록 길지 않았다만
吸血爾他人 늘 남의 피를 빨고 살아왔으니
靜在河圖裏 이제부턴 하도 속에 얌전히 남아
無言勉養神 묵묵히 정신 수양 잘 하려무나
* 河圖(하도)... 주역(周易)의 원리가 담긴 중국의 옛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