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치원 (崔致遠)
서해안의 대천해수욕장 부근에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선생의 유허(遺墟)가 있다.
드넓은 평야 한 가운데 서 있는 바위섬.
방조제가 생기기 전에는
조수(潮水)가 드나드는 바다였으니
지금도 이곳을 보리섬(麥島)이라 부른다.
병풍처럼 모여 서 있는 커다란 바위들에
선생이 시(詩)를 새겼다고 전해지는데
1,200년의 풍우(風雨)에 깎여 읽을 수 없고
글자가 있었다는 정도만 알 수가 있다.
아, 과연 어떤 시가 쓰여 있었을까.
아쉬운 마음으로 바위를 쓰다듬는다.
지금 이 바람소리를 고운 선생도 들었을까?
상념에 잠겨 주위를 잊고 있던 나를
어서 가자고 아내가 뒤에서 부른다,
햇빛은 엄청 밝게 쏟아지는데
마치 시간이 정지된 것 같은 정적,
사람도 인가도 없는 적적함이 아내는 싫은가보다.
근처의 성주사(聖住寺) 터에도
선생이 지은 비문을 새긴 석비(石碑)가 있고,
선생이 한때 태안의 태수(太守)를 지내기도 했으니
그때 이곳에 시를 남긴 것일까.
글자는 없어졌어도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살아남아
오늘 나를 이곳에 서있게 하는구나.
過孤雲遺墟 고운선생 유허를 지나며
孤雲留在處 그 옛날 고운 선생 머무시던 곳
巖刻讀難成 바위에 새긴 글자 읽을 수 없네.
寂寂無人見 사람은 뵈지 않고 적적한 중에
間間有鵲鳴 간간이 까치 울음 들리는구나.
觸皮殘滅字 마멸된 글자들을 만져보면서
傾耳古今聲 혹시 옛 바람소리 귀에 들리듯
峻檄黃巢賊 황소 도적 준엄히 격하던 모습
千年掛譽名 천년 지난 그 이름 명예롭도다.
(2017.5.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