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모자 2018. 3. 26. 11:57

  초등학교 몇 학년 때의 교과서에서였던가, 베토벤이 어느 날 저녁

홀로 산책을 하다가 달빛 어린 창문에서 은은히 흘러나오는 눈 먼

소녀의 피아노 소리를 듣고 영감을 얻어 <월광곡>을 작곡하였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러나 이는 꾸며낸 이야기였고, 1801년 31세가 된 베토벤이 귀족

가문의 17세 딸인 줄리에타 귀차르디를 사랑하게 되면서, 그녀에게

헌정하기 위해 작곡한 곡이 바로 <월광 소나타>이다. 다시 말하면 베

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14번 <월광>이다.


  미국의 음악평론가 폴 베커(1882~1937)는 “피아노에 있어서 구약

성서는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 48곡이고, 신약성서는 베토벤의

소나타 32곡이다” 라고 말했다고 한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에는

<비창> <월광> <열정>등의 부제(副題)가 붙은 곡들이 여럿인데, 이

중에 베토벤이 직접 붙인 부제는 6번 <비창>과 26번 <고별>의 두 곡

뿐이라고 전한다. 후일 렐슈타프(Ludwig Rellstab)라는 시인이, 1악장

의 은은한 아다지오를 “마치 루체른 호수에 일렁이는 달빛과 같다”고

하여 그 뒤로는 <월광 소나타>로 불리게 된 것이다.


  귀차르디를 향한 베토벤의 사랑! 그 사랑은 호수의 달빛처럼 은은하

게 시작하여(1악장), 제자 리스트가 말했듯이 ‘두 개의 심연 사이에 예

쁘게 핀 한 송이 꽃’처럼 경쾌하게 진행하다가(2악장), 드디어는 폭풍

처럼 격렬한 사랑으로 바뀐 것(3악장)을 표현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최초로 베토벤의 독주 피아노곡을 전곡 녹음한 피아니스트 알프레드

브렌델(1931~ )은 “베토벤의 작품에서 새로운 통찰(洞察)을 발견하는

일은 끝이 없다”고 했다. 베토벤의 작품에서는 항상 기존의 틀을 벗어

나 새로운 형태를 모색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는 뜻일 것이다.


  소나타라면 ‘빠른-느린-빠른’의 진행을 보이는 게 보통인데, 베토벤은

<월광 소나타>에서 특이하게도 1악장을 느린 아다지오로 시작하는 구성

을 만들었다.


  베토벤은 ‘달과 같은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햇빛을 받아 그 빛으로

우리를 비추어주는 달처럼, 그가 고전주의 음악에 새로운 생기를 불어

넣어 낭만주의 음악의 탄생을 도운 ‘달과 같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는

자신의 일생 내내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개혁정신을 간직하고 음악을

통해 그것을 이루어간, 역사의 거인이다.


     月光                  월광


耀眼遮顰午日騰      요안차빈오일등

多情柔照子如燈      다정유조자여등

三更投地樹長影      삼경투지수장영

護鳥安棲甘夢能      호조안서감몽능


대낮 햇빛은 눈부셔 찡그리지만

그대는 다정한 등불처럼 비추어

한밤 땅 위에 나무 그림자 드리우고

깃든 새들 달콤한 꿈꾸게 하누나


* 耀眼요안...눈부시다, 耀빛날 광, 眼눈 안, 遮顰차빈...가리며 찡그리다,

  子如燈자여등...그대는 등불처럼, 子그대 자, 投地투지...땅 위로 던지다,

  樹長影수장영...나무의 긴 그림자, 護鳥호조...새를 보호하다,

  安棲안서...편안히 깃들다, 甘夢能감몽능...달콤한 꿈을 꾸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