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모자 2018. 9. 1. 14:04

  옛날 충청도의 어느 부잣집에서 주인이 회갑을 맞아 사람들을 초대하

여 성대한 수연(壽宴)을 열었다. 한창 잔치가 무르익을 무렵 허름한 옷

을 입은 사람 하나가 들어오더니 음식을 한 상 부탁하였다. 가족들은 좋

은 날 좋은 일이라고 하여 말석에 음식상을 차려 주었다.


  잠시 후 주인의 아들은 참석한 이들에게 축수(祝壽)시를 지어 달라며 

운자(韻字)로 邊(변), 連(연) 그리고 년(年)자를 지정해 주었다. 손님들은 

그 운자에 맞춰 너도나도 주인의 장수를 비는 좋은 시를 짓느라 바빴다.


  그런데 식사를 마친 그 허름한 손님이 자기도 밥값으로 축수시를 짓겠

다고 하여, 가족들은 왠지 좀 내키지 않았으나 할 수없이 지필묵을 가져

다주었다.


  그 손님은 시를 써내려 갔다.


      登高望海邊   등고망해변     높은 곳에 올라서 해변을 보니

      十里平沙連   십리평사연     모래사장 십리에 이어졌도다


  주인은 이 시를 보며, “이게 무슨 축수시란 말이요? 과객은 헛소리를

하시는구려!”하면서 역정을 내었다. 그러자 과객은 씩 웃으며 다음 구를

보시지요, 하면서 이어서 써 내려갔다.


      箇箇令人拾   개개영인습     모래 알알 사람 시켜 줍게 하여서

      算君父母年   산군부모년     그대 부모의 나이를 헤아리소서


  주인과 가족들은 그제야 놀라서 과객에게 사과하며 손을 잡아 일으켜

상석으로 모시고 대접을 하는 것이었다. 이 과객의 이름을 혹자는 백호

(白湖) 임 제(林 悌)라고 하기도 하고, 혹자는 김삿갓이라고 하기도 하나

확실하지는 않다.


  김삿갓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하나 더 해 보자.


  김삿갓이 전국을 방랑하며 떠돌 때, 환갑잔치가 열리고 있는 어느 집

으로 들어서서, 한 상 얻어먹기 위해 시를 지었다.


  彼坐老人不似人(피좌노인불사인) 저기 앉은 저 노인 사람 같지 않으니


  이 첫 구를 보고 발끈한 주인과 가족들은 “사람이 아니면 그럼 짐승이

란 말이냐?” 하면서 화를 내었다. 그러자 이어지는 둘째 구는 다음과 같

았다.


  疑是天上降眞仙(의시천상강진선) 혹시 하늘에서 내려온 신선이 아닐까


  이 둘째 구를 본 가족들은 오호~ 하면서 화를 누그러뜨렸다. 그러나

이어지는 세 번째 구,

 

  其中七子皆爲盜(기중칠자개위도) 그 일곱 아들이 모두 도둑이 되어


를 본 노인과 가족들은 “아니 이 사람이 대체 우리를 갖고 노는 거야

뭐야?” 하면서 다시 버럭 화를 내었다. 그러자 김삿갓은 재빨리 마지막

네 번째 구를 써내려갔다.


  偸得碧王獻壽宴(투득벽왕헌수연) 벽왕을 훔쳐다가 환갑연에 바치도다


  마지막 구를 본 노인과 가족들은 그제야 의미를 알고는 웃음을 터뜨

리며 김삿갓을 잘 대접했다고 한다.


* 碧王벽왕...碧王桃(벽왕도)의 줄인 말, 왕도(王桃)는 ‘어린 복숭아나무

에 열린 첫 열매, 아직 익지 않은 ‘풋’이라는 의미로 ‘벽왕도’라고 한다.

신선계에 있다는 이 열매를 먹으면 노인들이 장수한다고 한다.


* 疑是 ~인가 아닌가 의심함, 偸훔칠 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