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사 (陸史)
육사(陸史) 이 활(李 活)은 1904년 안동에서 태어나, 20대 초반에는 의열단에 가입
하여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루되어 투옥되기도 했다. 본명은 이원록(李源
祿)이었고, 처음에는 ‘일제의 역사를 찢어 죽인다’는 의미로 육사(戮史)라는 호를 쓰
다가 나중에 육사(陸史)로 바꾸었다고 한다.
일제(日帝)의 조선어말살정책에 의해 동아, 조선의 폐간에 이어 한글시 발표가 금지
되자, 어릴 때부터 한학(漢學)을 배운 육사에게 한시(漢詩)는 피난처가 되었다. 당시
시중에는 소위 불온 지식인들의 리스트가 돌고 있다는 소문과 함께 ‘목 놓아 울 수 없
는’ 시인들은 입을 다물고 사랑방으로 숨어서 모이곤 했다.
육사는 정인보(鄭寅普)의 문하에 드나들며 알게 된 석초(石艸) 신응식(申應植)과 절
친이 되어, 이 둘을 중심으로 한 6~7명의 문인들이 시회(詩會) 모임을 가지곤 했는데,
1942년 여름에 시회의 멤버인 이민수의 삼선교 자택의 뒷산에 올랐을 때 쓴 육사의 한
시 <만등동산(晩登東山)>을 읽어 보자.
卜地當泉石 산수가 좋은 곳에 거처를 정하고
相歎共漢陽 서울에 함께 살아감을 즐거워했네
擧酌誇心大 술잔을 드니 마음속 거침없이 드러나
登高恨日長 높은 곳에 올라 긴 해를 한탄하도다.
山深禽語冷 산 그림자 깊어지니 새소리 차갑고
詩成夜色蒼 시를 쓰니 밤 기운이 아득하구나
歸舟那可急 돌아가는 배 어찌 그리 급한가
星月滿圓方 하늘엔 온통 별과 달이 가득한데
이 시의 4구에 보면, 육사는 산에 올라 경성시를 내려다보며 경성을 비추는 낮의 해
가 긴 것을 한탄(恨)한다고 하였다. 왜 그가 한탄하였는지는 그의 수필 <계절의 오행>
의 다음 부분을 읽어보면 자연히 이해가 될 것이다.
“지금 내 머리 속에 타고 있는 내 집은 그 속에 은촛대도 있고 훌륭한 懸額도 있기는
하나 너무도 古家라 빈대가 많기로 유명한 집이었나이다. 이 집은 그나마 한쪽이 기울
어서 어느 때 어떻게 쓰러질는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나폴레옹이 우리 집을 쳐들어오
면 나는 그것을 모스크바같이 불을 지를 집이어늘, 그 놈의 빈대란 흡혈귀를 전멸한다
면 나는 내 집에 불을 싸지르고 로마를 태워버린 네로가 되오리다”
- 이육사 수필 <季節의 五行>
육사는 황금 압정을 뿌려 놓은 것 같은 서울의 밤하늘을, <별들은 아득한 하늘에>라
는 시로 유명한 하인리히 하이네도 부러워할 것이라고 자부하였다. 그러나 그에게 낮에
보이는 식민지 경성의 모습은, 그 안에 피를 빠는 흡혈귀들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불태
우고 싶은 심정이었던 것이다.
뒷산의 주연에서 <만등동산(晩登東山)>을 짓고 난 다음, 삼선교의 이민수 댁으로 내
려와서 벌어진 또 한 차례의 주연에서 육사가 지은 작품이 <주난흥여(酒暖興餘)>이다.
<酒暖興餘>
酒氣詩情兩樣闌 술기운과 시정이 이제 파하여 갈 때
斗牛初轉月盛欄 두우성 떠서 돌고 달은 난간에 밝은데
天涯萬里知音在 나의 지음은 하늘 끝 멀리 가 있으니
老石晴霞使我寒 석정의 맑은 정기가 나를 시리게 하네
지음(知音)이란 서로 마음이 통하는 친한 벗을 말함인데, 만리 하늘 끝에 가 있는 육
사의 지음은 누구였을까? 그는 석정(石正) 윤세주(尹世胄)였다. 그때 윤세주는 중국에
서, 교관이자 간부로서 조선의용대와 함께 중경(重慶)을 출발하여 북상하여, 태항산
항거지에서 일본군과 전투 중에 전사하였다. 육사가 ‘벗 석정의 맑은 정기’를 노래할 당
시, 석정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그해 가을 최현배 등 30여명이 조선어학회사건으로 체포 되었고, 지난 여름밤 시회
에서 <주난흥여(酒暖興餘)>로 북경행을 암시한 바 있는 육사는, 중경의 임시정부와
연안(延安)의 조선독립독맹, 그리고 국내를 연결하기 위해, 또는 조선의용군의 북경
적구(敵區) 활동에 참여하기 위해 북경으로 건너갔다가 잠시 귀국 도중 체포되어, 다
시 북경으로 끌려가 1944년 1월 16일 일본총영사관 유치장에서 순국하였다. 10년간
그리던 석정 윤세주를 육사는 결국 하늘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육사의 절친 석초(石艸) 신응식(申應植)(1909~1975)은 육사가 타계한지 26년이 지
난 1970년에 <陸史를 생각한다>라는 시를 썼다.
우리는 서울 장안에서 만나
꽃 사이에 술 마시며 놀았니라
지금의 너만 어디메에 가
광야의 시를 읊느뇨
내려다보는 동해바다는
한 잔 물이어라
달 아래 피리 불어 여는 너
나라 위해 격한 말씀이 없네
석초 역시 한시(漢詩)에 조예가 깊어, 윗 시 <陸史를 생각한다>도 한 눈에 한시의
뼈대를 감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문학과 독립 운동에 몸 바친 시인, 동해를 바라보
며 그 시인을 잊지 못하는 또 한 시인의 절절한 마음을 생각하며, 이 시를 한시로 바
꾸어 보았다.
京華吾與爾 우리는 서울 장안에서 만나
花間飮遊時 꽃 사이에 술 마시며 놀았노라
爾獨今何逝 지금은 너만 홀로 어디로 가서
孤吟曠野詩 광야의 시를 외로이 읊조리나
東瀛遐底瞰 멀리 내려다보이는 동해바다는
只水一瓢樽 표주박에 찰랑이는 한 잔의 물
月下爾吹笛 달 아래 피리 부는 그대
爲邦無檄言 나라 위한 격한 말씀이 없네
* 京華... 번화한 서울, 逝갈 서, 죽을 서, 東瀛동영... 동해바다, 瀛큰 바다 영,
遐멀 하, 瞰볼 감, 只다만 지, 瓢樽표준... 조롱박을 쪼개 만든 작은 바가지
檄言격언... 널리 알리고 부추기는 말씀, 군병을 모집하거나 적을 꾸짖는 말씀.
(이 글의 신석초 시인 부분을 제외한 대부분은 도진순 교수의 논문 <육사의 한시
만등동산과 주난흥여>에서 발췌 인용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