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漢詩)의 맛과 멋

인왕산 (仁王山)

겨울모자 2019. 3. 2. 14:27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새로운 도읍지를 물색하라는 명을 받은

무학대사는 지금 서울의 경복궁 자리를 정하여, 인왕산(仁王山)을 진산

(鎭山)으로 하는 동향(東向)의 궁궐을 짓자고 상주(上奏)하였다. 그러나

태조는, ‘제왕(帝王)은 남쪽을 향하여야 한다’는 정도전의 의견을 받아들

여 북악산을 진산으로 하고 낙산(駱山)과 인왕산을 각각 좌청룡 우백호

로, 남산을 안산(案山)으로 하는 경복궁을 짓게 된 것이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무학대사는 이러한 남향(南向) 설정이 옳지 않아

서 그로 인해 200년 후에 큰 환란을 초래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고 한

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과연 200년 후인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

경복궁은 불타서 폐허가 되었고, 얼마 안가 인조 2년에 이괄의 난이 일

어났을 때, 경복궁 터에 진을 친 이괄의 반란군과 정부군 사이의 마지막

결전을 한양 백성들은 인왕산에 올라가서 지켜보았다고 한다.


  영조 때의 문인화가인 겸재(謙齋) 정 선(鄭 歚)은 인왕산 기슭에 살며,

장마가 끝나면서 비가 개는 인왕산의 모습을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

로 그려서 우리 미술 사상 최고의 걸작 그림을 탄생시켰다. 인왕산! 하면

나는 이 그림이 먼저 떠오른다. 농묵쇄찰법(濃墨刷擦法)으로 그려낸 거

대한 암석과 안개가 걷혀 가는 풍부한 산록!


  김동인은 소설 <광화사(狂畵師)>에서 인왕산을 이렇게 묘사하였다.

“바람이 있고, 암굴이 있고, 산초 산화가 있고, 계곡이 있고, 생물이 있

고, 절벽이 있고...말하자면 심산(深山)이 가져야 할 유수미(幽邃美)를 

다 구비하였다....... 도회에 거주하며 식후의 산보로서 푸대님 채로 이

러한 유수한 심산에 들어갈 수 있다는 점으로 보아서 서울에 비길 도회

가 세계에 어디 다시 있으랴”


  인왕산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학교를 다닌 나는 토요일 오후가 되

면 산악반 친구들과 인왕산록의 바위를 찾아가 암벽 등반을 수련하던 

억도 있다. 주택가를 걷다보면 어느 새 산록으로 접어들어 조금만 더 

라가면 다양한 모양의 바위가 있어서 암벽 수련을 하기가 참 좋았다.


  나의 친애하는 벗 김원장(金院長)이 주말에 인왕산을 등산한다고 연

이 왔다. 오~ 참 좋은 생각! 나도 마음으로 벗을 쫓아 인왕산에 오르

는 상상을 하며, 시를 한 수 지어 벗에게 헌정(獻呈)하고자 한다.



         仁王山                               인왕산


       仁王春信覓   인왕춘신멱    봄소식을 찾으려 인왕산으로

       歡上九朋徒   환상구붕도    아홉 친구 즐거이 산에 오르네

       景樹伸枝痒   경수신지양    볕 쬔 나무 가려운 듯 기지개 켜고

       山禽啄羽娛   산금탁우오    산새들 서로 깃을 쪼며 노는데

       雄巖千丈崛   웅암천장굴    큰 바위 천 길이나 우뚝 솟아서

       仰客一聲吁   앙객일성우    사람들 쳐다보며 탄성 올리니

       錯似身遊夢   착사신유몽    우리들은 마치도 꿈을 꾸면서

       謙齋霽色圖   겸재제색도    겸재 그림 안에서 노닐 듯하네


   * 徒무리 도, 景樹경수...볕에 선 나무들, 伸펼 신, 기지개 켜다,

     痒가려울 양, 啄쫄 탁, 娛즐길 오, 崛우뚝솟을 굴, 仰우러를 앙,

     吁탄식할 우, 錯잘못할 착,

  

   * 농묵쇄찰법(濃墨刷擦法)... 진한 묵으로 붓을 뉘어 쓸어내리듯 

     그리는 먹칠법, 벼랑 바위의 매끄러운 면이나 수직 단면의 표현

     에 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