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雪嶽山)
중고교 대학까지 동문이면
굉장히 가까운 사이이다.
그런데도 자주 보지 못하고
동창회 석상에서나
그것도 가끔 만나는 서교수.
대학병원의 소아청소년과
과장을 역임하고
정년을 맞은지 몇 해.
서교수는 꽃을 가꾸고
정원을 다듬는 일이 취미라서
꽃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이미 전문가적 경지에 들어선
사진 작가이기도 한데
그것만 갖고도 고상한 사람이
훌륭한 서예(書藝) 작가이기도 하니
사람 참 욕심(?)도 많다.
얼마 전 고교졸업
50주년 시즌2 ‘서화 사진전’에
서교수는 19세기의 역관(譯官)으로
학자이자 개화파의 주역이었던
오경석 선생의 7언 절구(絶句)를
예서체(隸書體)로 쓴 작품을 올렸었다.
院深無客似禪居 원심무객사선거
晝永春眠樂有餘 주영춘면낙유여
拋盡萬緣高枕卧 포진만연고침와
燒香時讀古人書 소향시독고인서
깊은 집에 손님이 없어 절간 같은데
긴 봄날 낮잠을 넉넉히 즐기노라
모든 인연 다 던지고 높이 베고누워
향 피우고 때론 옛 사람의 책을 읽네
서교수의 정성이 깃든 한 글자 한 글자에
그동안의 땀과 노력이 느껴져
한참을 부러운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서예 이력이 있는 만큼 서교수는
평소 한시(漢詩)를 많이 공부한 사람이다.
그러나 이제 본인의 시(詩)도
써보고 싶어 작시(作詩)공부중이라더니
드디어 며칠 전에
칠언 절구를 한 수(首) 보내왔는데
처음 썼다는 분이
참 매끄럽게도 잘 쓴 것 같아서
놀라고 있는 중이다.
夏日登雪嶽 하일등설악
連峰峽谷白雲流 연봉협곡백운류
滿麓奇花興趣優 만록기화흥취우
突兀烟穿巖嶺秀 돌올연천암령수
深山忘暑似仙遊 심산망서사선유
여름날 설악에 올라
연봉 사이 협곡으로 흰 구름이 흐르고
산록가득 기묘한 꽃 흥취가 가득하구나
안개 뚫고 우뚝 솟은 바위 산봉우리들
깊은 산에 더위 잊고 신선처럼 노니네
2구에 꽃을 사랑하는
작자의 마음을 엿볼 수 있고
주말이면 자주 별장에 가서
꽃과 나무를 가꾸면서
자연의 품에 안기는 그가 연상된다.
나의 시(詩) 친구가 또 하나 생긴 기쁨을
그의 운자(韻字)에 화운시(和韻詩)를 써서 답한다.
그의 아호(雅號)는 명재(明齋)이다.
和明齋夏日登雪嶽韻
祥雲洞壑似江流 상운동학사강류
不可峰峰品劣優 불가봉봉품열우
身在紫宮疑夢裏 신재자궁의몽리
忘機自適任遨遊 망기자적임오유
명재의 ‘여름날 설악에 올라’에 화운함
상서로운 구름 골짜기 따라 강처럼 흐르고
봉우리마다 아름다워 우열을 가릴 수 없네
이 몸은 꿈속에서 신선궁에 온 게 아닌가
세상만사 다 잊고 느긋하게 마음껏 노니네
* 品품...등급을 먹이다, 평가함.
紫宮자궁...신선이 사는 곳
忘機망기...세상일을 잊다. 機心을 잊다.
(機心...기회를 보고 움직이는 마음, 책략, 욕심),
自適자적…얽매이지 않고 편안함, 任마음대로 임.
遨遊오유…재미있게 놂, 遨놀 오,
(아래 사진도 서교수의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