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漢詩)의 맛과 멋

옥수수 (玉蜀黍)

겨울모자 2022. 8. 30. 16:43

옥수수 나~무 열매엔 
하~모니카가 들어있네 

니나니 나니나 니나니나  
니나니 나니나 니나니나 

초등학교 때 즐겨 부르던  이 노래가
나는 지금도 옥수수만 보면 생각이 난다. 

이상(李箱)의 수필 <성천기행>에 나오는
<산촌여정山村餘情>중의 다음 구절도 떠오르고.

"옥수수 밭은 일대 관병식(觀兵式) 입니다.
바람이 불면 갑주(甲胄) 부딪히는 소리가 
우수수 납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옥수수를 좋아했는데
외손자 녀석도 옥수수를 무척  좋아하는 것을 보니 

혹시 나의 유전자 때문인가 하여
홀로 웃음을 지어 보기도 한다. 

초여름 시장길에 들어서면
바닥에 옥수수 껍데기가 수북히 쌓여있고
그걸 삶는 김이 푹푹 솟아나는 가게앞에서 

들큼 짭쪼름한 그 냄새를 맡으면
그리운 추억의 맛이 서려있는 옥수수를
한 봉지 사지 않고는 그냥 지나치기가 어렵다.

이렇게 간식으로 사랑받는 옥수수를
모두가 헐벗었던 그 옛날에는 
주식(主食)으로 삼던 때도  있었나보다. 

禿柳一株屋數椽     독류일주옥수연
翁婆白髮兩蕭然     옹파백발양소연
未過三尺溪邊路     미과삼척계변로
玉蜀西風七十年     옥촉서풍칠십년 

두어 칸 초가집에 대머리 버들 한 그루
흰 머리의 노부부 둘이 함께 쓸쓸하구나
석 자도 되지 않는 시냇가 길가에서
옥수수로 갈바람에 칠십 년을 보냈네 

※ 玉蜀옥촉... 옥촉서(玉蜀黍)=옥수수 

말년에 북청으로 다시 유배를 갔다 
돌아오던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가 

강원도 어드멘가의 촌가(村家)에서 묵으며 
썼다는 절구(絶句)에  나온 옥수수이다.


서론이 좀 길었다. 

지난 봄 강원도 진부로 이주한 나의 시벗(詩友) 
우송(旴松)선생으로부터 며칠 전에,
찐 옥수수가 한 상자 배달되어 왔다. 

서울에서의 오랜 사업을 아쉽지만 과감하게 접고
고향인 강릉에 가까운 진부의 전원(田園)에
땅을 마련하여 집을 짓고 즐겨 농부가 된 그. 

생활이 바뀌었으니 몸이 적응하느라 힘들겠지만
남자들의 로망을 이루었으니 나는 매우 부럽다. 

그가 보내온 전원에서의 첫 시는 이렇다.

端陽白日砦鷄鳴     단양백일채계명
一喝山翬萬壑驚     일갈산휘만학경
田老伸腰捫汁汗     전노신요문즙한
香來菜饁醬菠羹     향래채엽장파갱 

단오절 한낮에 울밑에서 장닭이 울고
산꿩의 꿔꿩 한 마디에 온 골짝이 놀라네
들늙은이 허리 펴고 짙은 땀을 닦으니
들밥 나물반찬 시금치 된장국 향기롭네 

※ 端陽단양...단오절, 砦울타리 채, 
   翬꿩 휘, 捫쓰다듬을 문,  饁들밥 엽,
   醬장 장, 된장, 菠시금치 파, 羹국 갱
   醬菠羹장파갱...시금치 된장국.

 

서울 신사(紳士)였던 그가 어느덧 

들일하다가 허리 펴는 '전노(田老)'가 되었으니

이제 삶의 제 2막(幕)이 오른 것인가.

아내와 둘이 마주앉아
우송선생의 노고(勞苦)가 깃든 옥수수를 
말없이 쓰다듬으며 생각해본다. 

수시로 옥수수밭을 오가던  
우송선생 부부의 발자국 소리와
수없이 흘렸을 그의 땀방울을 느끼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전원(田園)에 안겨 살아가는 그에게  
오언율시를 한 수 지어서 바친다. 

     山居                산거

稟受厭喧鬧     품수염훤뇨
深山構草堂     심산구초당
花陰耽澗籟     화음탐간뢰
竹影納蟾光     죽영납섬광
麗日東風暖     여일동풍난
寒天北斗煌     한천북두황
菜魚心事足     채어심사족
物外俗機忘     물외속기망

 

   산에 살며

 

시끄러운 곳 싫어하는 성격이라
깊은 산속에 초당을 하나 엮어서
꽃 그늘에 앉아 물소리를 즐기고
대 그림자 안엔 달빛을 들여놓네
화창한 날엔 봄 바람이 따뜻하고
추운 밤 하늘엔 북두성이 빛나네
나물 반찬 고기잡아 마음 족하니
외딴 곳에 살며 세상일 다 잊었네 

※ 稟受품수...선천적으로 재능이나 성품을 타고남,
   厭싫어할 염,  喧鬧훤뇨...여럿이 마구 떠듦,
   喧떠들썩할 훤, 鬧시끄러울 뇨, 構엮을 구, 짓다,
   耽즐길 탐, 澗籟간뢰..산골물 소리, 澗산골물 간,
   籟소리 뢰, 納들일 납, 들여놓다,  蟾光섬광...달빛,
   蟾두꺼비 섬, 달의 별칭, 달속에 두꺼비가 있다는 
   전설에서,  煌빛날 황, 
   物外물외...세상 물정이 닿지않는 바깥세계,
   俗機속기...세속의 욕심, 世俗之機心의  준말,
   機心기심...순수하지 못하고 속으로 다른 목적을 
   품은    마음.                            (2022. 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