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야 (雪夜)
겨울이 한창이다.
쇼팽의 <겨울바람>보다
더 센 바람이 쌩쌩 불어오면
자연히 몸이 움츠러 들고
따뜻한 방(房) 안이 그리워지며
눈 덮힌 사직공원에서
아내와 둘이서
두어 시간을 노닥거리던
먼 옛날 연애시절이 생각난다.
그 야릿야릿하던 아내가
지금까지도 옆에 있어주는 게 고마워
저녁 식탁에 둘이 앉아
고기 몇 점에 와인 서너잔을 마시니
마치 그 시절로 돌아간 듯
기운이 솟고 흥(興)이 솟는다.
마침 창밖엔
눈이 하얗게 내려 있는 밤
밖에 나가
시린 손 마주 잡고 뽀드득 뽀뜨득
일부러 눈 쌓인 곳을 걸으며
꿈속인 듯
옛날로 다시 돌아가 본다.
雪夜 설야
乙夜耽吟子美詩 을야탐음자미시
吹風枯葉打窓時 풍취고엽타창시
把燈遣興推門出 파등견흥퇴문출
滿地鋪銀忽夢疑 만지포은홀몽의
늦은 밤 두보선생 시를 즐겨 읊는데
바람 불어 마른 잎이 창문을 두드리네,
흥 달래려 등불 들고 문 밀고 나서니
사방에 온통 눈이 덮혀 꿈속인가 하네
* 乙夜을야… 밤 9시~11시,
子美자미… 시성(詩聖) 두보의 자(字),
遣興견흥… 흥을 달래다.
推門퇴문… 문을 밀다, 推밀 퇴,
鋪銀포은… 눈(은)으로 덮히다, 鋪덮을 포.
나와 함께 한시(漢詩)를 토론하며
작시법을 배운지 두 해도 채 안 된 벗
연준(燕俊)에게 이 시를 보냈더니
곧이어 같은 운자(韻字)를 쓴
화운시(和韻詩)를 보내왔다 !!
和懷仁雪夜韻 회인의 '설야'에 화운하다
向晩依窓誦詠詩 향만의창송영시
佳人遠來酌交時 가인원래작교시
忽看戶外銀花降 홀간호외은화강
雪夜朋談却夢疑 설야붕담각몽의
저물녁 창에 기대 시를 읊조리는 때
귀한 벗 멀리서 와 함께 술잔 나누네,
문득 창밖을 보니 은꽃이 내리는데
눈 오는 밤 벗과 함께 꿈속인 듯 하구나
* 向晩향만, 날 저무는 때, 저물녘.
겨울밤, 눈(雪)의 추억도 즐겁지만
벗이 이런 훌륭한 화운시를
보내준 일이 더욱 즐겁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