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모자 2023. 1. 28. 11:22

겨울이 한창이다.

 

쇼팽의 <겨울바람>보다

더 센 바람이 쌩쌩 불어오면

 

자연히 몸이 움츠러 들고

따뜻한 방() 안이 그리워지며

 

눈 덮힌 사직공원에서

아내와 둘이서

 

두어 시간을 노닥거리던

먼 옛날 연애시절이 생각난다.

 

그 야릿야릿하던 아내가

지금까지도 옆에 있어주는 게 고마워

 

저녁 식탁에 둘이 앉아

고기 몇 점에 와인 서너잔을 마시니

 

마치 그 시절로 돌아간 듯

기운이 솟고 흥()이 솟는다.

 

마침 창밖엔

눈이 하얗게 내려 있는 밤

 

밖에 나가

시린 손 마주 잡고 뽀드득 뽀뜨득

일부러 눈 쌓인 곳을 걸으며

 

꿈속인 듯

옛날로 다시 돌아가 본다.

 

 

         雪夜                  설야

                 

乙夜耽吟子美詩    을야탐음자미시

吹風枯葉打窓時    풍취고엽타창시

把燈遣興推門出    파등견흥퇴문출

滿地鋪銀忽夢疑    만지포은홀몽의

 

늦은 밤 두보선생 시를 즐겨 읊는데

바람 불어 마른 잎이 창문을 두드리네,

흥 달래려 등불 들고 문 밀고 나서니

사방에 온통 눈이 덮혀 꿈속인가 하네

 

* 乙夜을야9~11,

  子美자미시성(詩聖) 두보의 자(),

  遣興견흥흥을 달래다.

  推門퇴문문을 밀다, 推밀 퇴,

  鋪銀포은()으로 덮히다, 鋪덮을 포.

 

 

나와 함께 한시(漢詩)를 토론하며

작시법을 배운지 두 해도 채 안 된 벗

연준(燕俊)에게 이 시를 보냈더니

 

곧이어 같은 운자(韻字)를 쓴

화운시(和韻詩)를 보내왔다 !!

 

和懷仁雪夜韻    회인의 '설야'에 화운하다

 

向晩依窓誦詠詩     향만의창송영시

佳人遠來酌交時     가인원래작교시

忽看戶外銀花降     홀간호외은화강

雪夜朋談却夢疑     설야붕담각몽의

 

저물녁 창에 기대 시를 읊조리는 때

귀한 벗 멀리서 와 함께 술잔 나누네,  

문득 창밖을 보니 은꽃이 내리는데

눈 오는 밤 벗과 함께 꿈속인 듯 하구나

 

* 向晩향만, 날 저무는 때, 저물녘.

 

겨울밤, ()의 추억도 즐겁지만

 

벗이 이런 훌륭한 화운시를

보내준 일이 더욱 즐겁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