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다 개이다...
乍晴乍雨雨還晴 맑다가 비오고 다시 개이니
天道猶然況世情 하늘도 저렇거든 사람에서랴?
譽我便應還毁我 날 기린 이 문득 날 다시 헐뜯네
逃名却自爲求名 이름 숨김 외려 이름 구함이어라
花開花謝春不管 꽃이야 피든 지든 봄은 무심코
雲去雲來山不爭 구름이야 가든 오든 산은 말 없네
寄語世人須記憶 세상 사람들이여 유념하시라!
取歡無處得平生 한 평생 낙 얻을 곳 어디도 없네
김시습(金時習)의 사청사우(乍晴乍雨)라는 시(詩)입니다.
잠깐 맑는 듯 하였으나 이내 흐려 비가 뿌리더니 어느새 구름이 흩
어지고 말짱 햇빛이 듭니다. 날씨가 부리는 변덕은 알아줄 만 하지요.
하늘의 모습도 저러한데 하물며 사람들의 인정이야 오죽 변덕스럽겠습
니까?
어제까지 속이라도 빼어줄 듯 나를 칭찬하던 이가 무슨 일인지 오
늘 문득 나를 욕합니다. 나는 변함없는 나이건만, 세태(世態)에 따라
자신의 이불리(利不利)도 변하여 평생을 같이할 친구 같이 행세하던
이들이 갑자기 나를 몰아 세우고 헐뜯기 시작합니다. 인심의 속절 없
음이여!
명예를 뜬 구름처럼 허망한 것으로 여긴다는 사람들도, 오히려 뒤
로는 은근히 명예를 구하는 이중성을 가진 것이 오늘날 사람 사는 모
습이 아닐까요? 작자가 살던 15세기에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정과 사
는 모습은 오늘을 방불케 했던 것 같습니다.
봄이 오면 꽃이 피고 꽃이 만발함으로써 봄을 느끼는 것이지만, 봄
은 오히려 꽃이 피고 지는 것에 무관하게 그저 시절에 맡기고 있을 뿐
이고, 산 위로 넘나드는 구름의 모양에 따라 산의 얼굴도 달라지게 마
련이건만 산은 오히려 구름의 가고 옴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함이 없이
무심하게 흐르는 대로 맡겨 두고 있는데...
사람들은 오로지 입신 출세(入身 出世)를 위해 무엇이 그리 바쁜지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으며, 모든 일에 대해 무엇이 어째서 어쨌다는 둥
입방아를 찧으며 권세와 영달을 좇아 몰려 다니고 있지만, 그것이 평생
을 바칠만 한 즐거움은 아니라는 것, 평생의 행복이라고 할 만한 가치를
지닌 추구할 대상은 이 세상엔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 만사 모두 부질 없는 것.. 지나고 보면 바람에 날아갈 티끌 같은
것들을 가지고 서로 차지하려고 아둥바둥 하지말고 욕심 없이 자연의 순
리대로 담담하게 살아가야 할 것이라고 작자는 세상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으로 말하는 김시습은, 삼촌이
사랑하는 조카의 왕위를 찬탈하고 죽이기까지하는 참담(慘憺)을 눈으로
보고 겪은 사람입니다. 이 시에는 그러한 작자의 인생관이 확연히 드러나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어제까지는 선왕(先王)을 기리던 이들이 오늘은
바뀐 세상에 재빨리 적응하여 새 권력자의 비위에 맞는 말을 골라내기에
여념이 없는 모습들...오늘날과도 별로 다르지 않은 모습이라 고 할 수 있
겠지요?
세상을 한(恨)하며 명예를 뜬 구름으로 여긴다는 말을 내뱉은 사람들
도 마음속으로는 은근히 등용(登用)을 명하는 권부(權府)의 연락을 기다
리는 세태...김시습은 이런 사람들에게 인생의 진짜 행복은 그런 부질 없
는 것에 있지 않다는 원망(怨望)어린 충고를 붓 끝에 담고 있네요.
흐리다가 비 뿌리고... 싸락눈 까지 내리다가 다시 흐리고...어느새
구름은 흩어져 개었다가 다시 흐리고... 오늘 아침 날씨를 겪으면서 이
시(詩)가 생각나서 몇 자 적어 보았습니다. (2002. 3.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