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漢詩)의 맛과 멋

시인 가도(賈島)

겨울모자 2006. 6. 2. 15:42
  맑은 날인데도 해는 보이지 않는 낮 시간입니다. 잠시 또 짬을 내어
오늘도 당(唐)나라의 시인 가도(賈島)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당대(唐代)의 시인들 중에서 시작(詩作)에 골몰하기로 맹교(孟郊)에
못 지 않은 사람이 바로 가도(賈島)입니다. 그 역시 생의 목표를 시에
둘 만큼 시작에 몰두하며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는 자기가 짓고 있던 어떤 시의 한 부분을 무려 3 년 간 생각해 오며
좋은 싯구를 지으려 고심하다가 어느 날 문득 마음에 드는 구절을 얻었
다고 합니다.

             獨 行 潭 低 影 (독 행 담 저 영)
             數 息 樹 邊 身 (수 식 수 변 신)

             홀로 걸어가는 연못 아래 그림자
             자주 쉬어가는 나무가의 몸

  이라는 구절 이었는데, 이 부분에 알맞은 싯귀를 얻으려 무려 3 년 간
을 고심하였는데, 마침내 마음에 꼭 드는 구절을 얻고서 그는 스스로 감
격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이 시구를 얻기까지의 사연을 또 한 편의
시로 표현하였는데,

             兩 句 三 年 得 (양 구 삼 년 득)
             一 吟 淚 雙 流 (일 음 루 쌍 류)
             知 音 如 不 賞 (지 음 여 불 상)
             歸 臥 故 山 秋 (귀 와 고 산 추)

             두 구절을 삼 년 만에 얻고서
             한 번 읊으매 눈물 주룩 흐르네
             벗들이 훌륭하다 기리지 않으면
             고향 산 가을에 돌아와 묻히겠노라

  친구들이 읽고서 훌륭하다고 칭찬하지 않으면, 고향으로 돌아가 옛 산에
그대로 묻혀 버리겠다고 할 정도로, 자기가 공들여 쓴 시귀에 대한 자부심
이 대단합니다.

  그에 대해서 잘 알려진 이야기 하나... 그는 걸어 다니면서도 시만을 생
각했나 봅니다. 한 번은 그가 옛 친구의 무덤을 찾아가다가 문득

            鳥 宿 池 邊 樹 (조 숙 지 변 수)
            僧 推 月 下 門 (승 퇴 월 하 문)

            새들은 연못가 나무에 깃들고
            달빛 아래 중이 작은 문을 민다

이라는 싯구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둘 째 구절의 둘 째 글자인 推(밀 퇴
혹은 밀 추)를 "작은 문을 밀다"의 밀 퇴(推)로 그냥 둘 것이냐, 아니면 두
드릴 고(敲)로 바꿀 것이냐를 두고 고민 고민하며 걷다가, 당시 경조윤(京兆
尹) 벼슬에 있던 한유(韓愈)의 행차를 보지 못하고 그만 수레를 가로 막고
말았습니다.

  벼슬아치의 수레를 막았으니 부하들이 그를 한유 앞에 꿀리고 한유가 자
초지종을 물었습니다. 가도의 사연을 듣고는 그 역시 유명한 시인인 한유는
밀 퇴(推)보다도 두드릴 고(敲)가 좋겠다고 고쳐 주었습니다.

  어두워진 숲 속 연못가의 작은 집에 새들도 잠들은 늦은 시간에 도착한 것
을 보면 아마도 마음먹고 약속하여 찾아온 것이 아닐 테니, 문을 대뜸 밀고
들어간다는 표현 보다는, 친구가 있는지 혹시 자는지... 조심스레 문을 두드
린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는 뜻에서 였으리라는 생각입니다.

  올바른 시 좋은 시를 쓰려는 시인들의 집념을 잘 보여주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날 글 쓴 원고를 다시 고치는 것을 "퇴고"라고 하는 것이
이 고사(故事)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이죠. 무슨 일에서든지 철저히 노력하는
일의 아름다움이 느껴집니다. (2002. 9.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