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울 운명을 타고난 존재들
籠西行 농서행
誓掃匈奴不顧身 서소흉노불고신
五千貂錦喪胡塵 오천초금상호진
可憐無定河邊骨 가련무정하변골
猶是春閨夢裏人 유시춘규몽리인
貂錦 :
담비 가죽 갖옷과 비단을 입은 정예부대 병사
無定河 : 황하의 한 지류의 명칭
농서의
노래
흉노 소탕하겠노라 자신을 돌보지 않더니
무장한 오천 군대 오랑캐 땅에서 죽어갔네
가엾도다! 무정하 강변에
널린 백골들은
봄철 안방에서 꿈에 그리던 사람들이었으니...
당나라 진도(陣陶)라는 시인의 시입니다.
나라를 위해, 변방을 괴롭히던 이민족을 토벌하려고, 몸을
돌보지 않고
열심히 싸운 정예부대 오천 명이 죽어 쓰러졌습니다. 돌보는 이 없는 그
백골들이 무정하 강변에 무수히 널려져 있는
광경... 이보다 더 참혹한
모습이 있을까요?
더구나 이미 죽어서 백골이 되었건만, 멀리 떨어진 그들의 집의
안방에
서 아녀자들은 남편이 죽은 줄도 모르고 꿈마다 그리워하며 돌아올 날을
기다리고 있으니... 참으로 애닯고도 비통한
일입니다!
인간은 왜 싸워야 하는지... 인간의 역사를 투쟁의 역사라고 일찍이 갈
파한 사람도 있습니다만,
전쟁으로 수없는 목숨이 죽고 그에 따라 수많은
비극이 유발되는 일은 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하나도 다르지 않습니다. 입
으로는
끝없이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싸울 운명을 타고난 존재가 바로 인
간이라고 생각하니 그 자가당착(自家撞着)이 비참할
따름입니다.
이라크에 바야흐로 전운(戰雲)이 짙어지고 있습니다. 이제 어느 날 새벽
지 모릅니다. 지도자들의 결정이나 이해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많은 무고한
목숨들이 죽어 가겠지요. 안타까운 일입니다.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전쟁
경험을 가지고 있는 우리들이라 그 안타까움이 더 합니다... (2003. 1.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