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화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
무릉도원(武陵桃源)과 무이구곡(武夷九曲),
그리고 소상팔경(瀟湘八景)등을
꿈속을 헤매듯이 둘러보다가
드디어 맨 마지막 벽에
마치 주인처럼 자리 잡고 있는
강산무진도(江山無盡圖) 앞에 섰다.
폭(幅)은 44cm
길이는 무려 856.6 cm 에 달하는 긴 화폭에
조선의 화사(畵師) 이 인문(李 寅文)이
도도히 이어지는
강산과 바다를 그려낸 대작이다.
기암괴석이 이루어낸 절경,
먼 도시와 항구 풍경,
굽이진 강물로 고깃배 돌아오고
나귀 방울 소리 딸랑대는 길
마을과 포구의 많은 사람들이
마치 꼬물꼬물 움직이는 듯
지금도 또렷이 세세(細細)한 필치가
2백여 년 전의 것으로 믿기지 않는다.
안 견(安 堅)의 <몽유도원도>에서도
나무에 달린 복숭아들이
어제 찍은 듯이 영롱하더니...
또 나는
이 긴 파노라마 앞에서
움직일 줄을 모른다.
두꺼운 시멘트와 인공물들이
컴퓨터 그래픽처럼 벗겨져 나간
옛날로의 시간 여행
어둑한 전시실,
밝은 그림 속 옛 세상으로
나도 작은 사람이 되어 들어가면
끝없이 이어지는
이 강산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
다만,
집과 다리의 모습들이
중국 스타일이 아니었다면
더 좋았을 것을...
江山無盡圖 강산무진도
長江曲逝入遙灣 긴 강은 구비 흘러 멀리 만으로 들어가고
數隻漁帆欸乃還 고깃배 몇몇 척 뱃노래 싣고 돌아오네
噦噦驢鈴橋畔路 다리 길에 나귀 방울 딸랑딸랑 울릴 제
老曹松下笑談閑 솔 그늘 노인들 이야기꽃 한가롭네
巖山屹崒仰天嵬 바위산은 험준하게 하늘로 솟아 있고
石路逶蛇十步回 돌길은 이리저리 열 걸음에 구부러지네
閭閈多喧繫馬歇 마을 동구 매인 말들 쉬느라 시끄러우니
誰家應有慶筵開 틀림없이 어느 집에 잔치가 열렸으리
寅文描寫好風光 이인문이 좋은 풍광 그려냈으니
此是先人理想鄕 이런 곳이 선인들의 이상향일진대
却惜家橋中國樣 애석해라, 집과 다리 모습 중국풍이니
心中一事我煩腸 이 한 가지 내 마음속 꺼림칙한 일
* 曲逝(곡서)... 구부러져 흐르다, 逝 갈 서,
* 欸乃(애내)... 어부가 노를 젓거나 고기를 잡으며 부르는 노랫소리
* 噦噦(홰홰)... 말방울 소리
* 驢鈴(여령)... 나귀 방울, 驢 나귀 려, 鈴 방울 령
* 老曹(노조)... 노인들, 曹 무리 조
* 屹崒(흘줄)... 산이 험준한 모양
* 仰天嵬(앙천외)... 하늘을 보며 솟다, 仰 우러러볼 앙, 嵬 높을 외
* 逶蛇(위이)... 구불구불한 모양
* 閭閈(여한)... 閭 마을 려, 閈 이문 한
* 多喧(다훤)... 떠들썩하다, 喧 떠들썩할 훤
* 繫馬歇(계마헐)... 말을 매어 쉬게하다. 繫 맬 계, 歇 쉴 헐
* 應有(응유)... 아마도 ~이 있을 것이다. 應 응당 응
* 慶筵(경연)... 경사스런 잔치, 慶 경사 경, 筵 자리 연
* 寅文(인문)... 화원 이인문
* 却惜(각석)... (생각밖에) 애석하다, 却 도리어 각, 惜 애석할 석
* 中國樣(중국양)... 중국 스타일, 樣 모양 양
* 煩腸(번장)... 속을 끓이다, 꺼림칙하게 생각하다,
煩 괴로워할 번, 腸 창자 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