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무렵
설악(雪嶽)에 도착하였다.
초겨울 해는 일찍 떨어지고
어스름 산마을에 등불 하나 반짝인다.
넓은 창으로 산을 바라보며
한참을 서성인다.
어느새 금년도 저물어 가는구나.
정신없이 달려온 한 해.
이 겨울 지나면 어김없이 봄이 오듯이
생(生)의 사계도
영원히 반복되면 좋으련만...
쉽사리 감상(感傷)에 빠져
버릇처럼 시어(詩語)를 골라 나열하는 중
손자 녀석은 놀자고 사정없이 덮쳐오고
아내는 또 시를 짓느냐고 힐난(詰難)을 하니
그나마 간당대던 시상(詩想)은
무참히 끊겨버린다.
한밤중에 미련이 일어
다시 일어나 몰두(沒頭)해 보니
허리가 꺾인 시상은 일어날 줄 모르고
밤도 늦었으니 이제 포기할까 하다가
있는 그대로 쓰기로 했다,
이것도 시는 시이니까.^^
雪嶽 설악에서
山村日落一燈寒 산마을에 해 지고 등불 하나 차가운데
活計奔忙歲又闌 바쁘게 살아온 한 해가 또 저무네
獨坐苦吟今夜盡 홀로 앉아 읊조리니 이 밤도 새려는데
遲遲覓句作詩難 좋은 구절 얻기 힘들어 시가 되질 않는구나
* 活計(활계)... 살아갈 방도나 형편
* 奔忙(분망)... 매우 바쁨, 바쁘게 달리다, 奔 달릴 분, 忙 바쁠 망
* 歲又闌(세우란)... 해가 또 저물다, 又 또 우, 闌 저물 란, 다할 란
* 遲遲(지지)... 매우 더디다, 遲 더딜 지, 늦을 지
* 覓句(멱구)... 시구를 찾음, 覓 찾을 멱, 句 글귀 구
* 作詩難(작시난)... 시 짓기가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