彩禽飛匿白花陰 예쁜 새 날아와 흰 꽃그늘에 숨더니
呼伴嚶鳴似亂琴 제 짝을 부르는지 요란하게 울어대네
朝市煙流三月暮 서울은 연기 속에 춘삼월이 저무는데
縈愁不却獨孤斟 얽힌 시름 못 떨치고 홀로 잔을 따르네
‘춘수’(春愁, 봄 시름)라는 제목으로 한 달 전에 이 시를 써서 블로그에 올려 놓고,
나는 틈만 나면 첫 구(句)를 끄집어내 이리저리 곱씹어보곤 하였다. 이렇게도 고쳐
보고 저렇게도 고쳐보면서.
彩禽飛匿白花陰(채금비익백화음)이라, 날아와 숨는다는 飛匿(비익)보다 좀 더 시
적(詩的)인 표현이 없을까, 그러나 한시에는 평측(平仄)을 맞추어야 하는 고약한(?)
규칙이 있어서 글자를 그 뜻만 가지고 마음대로 골라 쓸 수 가 없으므로 고심하였다.
늘 버릇처럼 저녁 잠자리에서 우리나라 옛 시화집을 읽다가 어느 순간 나의 눈이
점점 더 커졌다. 양경우(梁慶愚 1568~1638)란 분이 쓴 <제호시화(霽湖詩話)>라는
책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나라 옛 시인 중에 정사룡(鄭士龍)이란 분이 중국의 항주(杭州)를 읊은 시에
湖舫客歸花嶼暝 호방에 놀던 이들 돌아가자 꽃섬에 어둠 내리고
蘇堤鶯擲柳陰濃 소제에 꾀꼬리 날아들자 버들그늘 푹 덮었네
호방이란 항주 서호(西湖)에 띄운 배이고, 소제란 소동파가 항주 서호 호숫가에
축조한 둑을 말한다. 2구의 둘째 셋째 글자 鶯擲(앵척)에서 擲은 '던질 척'이니 꾀꼬
리가 마치 던지듯이 버들 그늘로 날아든다는 뜻이다. 이 시를 읽은 어떤 사람이 상기
양경우에게 던질 척자를 이런 뜻으로 쓴 예가 혹시 있었나를 물었다.
양경우가 대답하기를,
鶯飛柳上擲金梭(앵비유상척금사) 꾀꼬리가 버들에 날아들어 금사를 던진 듯하다.
사(梭)는 베를 짜는 기구인 ‘북 사’이니 늘어진 버들가지 사이로 노란 꾀꼬리가 날
아 드나드는 것이 마치 베를 짜는 금북이 왔다 갔다 하는 듯하다는 이 구절은 어린이
들이 배우는 연구집(聯句集)에 있고, 당시(唐詩)에도 林明露擲猿(임명로척원)/숲이
환하니 뛰는 원숭이가 보인다, 라는 구절이 있다.
또한 두보(杜甫)의 시에도
織籠曹其內(직농조기내) 닭장을 결어 많은 닭을 몰아넣으니
分入不得擲(분입부득척) 들어가고는 다시 뛰어나오지 못하다
라는 구절이 있으니 擲(척)이라는 동사는 대체로 ‘새나 짐승이 뛰어 드나드는 것’
으로 생각하면 되겠다,
이상이 양경우의 대답이었다.
이 글을 읽는 순간, 나는 ‘아, 이 글은 나를 가르치는 글이구나’ 하는 생각에 만사
를 잊고 내 시 속으로 몰입하였다.
彩禽飛匿白花陰 예쁜 새 날아와 흰 꽃그늘에 숨더니
呼伴嚶鳴似亂琴 제 짝을 부르는지 요란하게 울어대네
朝市煙流三月暮 서울은 연기 속에 춘삼월이 저무는데
縈愁不却獨孤斟 얽힌 시름 못 떨치고 홀로 잔을 따르네
이 시를 써서 올려놓고, 무언가가 흡족하지 않았었는데, 던질 擲(척)자를 써야겠
구나 라고 생각하고 이왕이면 5언시(五言詩)로 바꿔서 좀 더 압축미도 불어 넣어보
자고 도모하여 다음과 같은 오언절구(五言絶句)로 만들어 보았다.
彩鳥擲花陰(채조척화음) 예쁜 새 꽃그늘에 숨어들더니
嚶鳴似亂琴(앵명사난금) 어지러운 소리로 울어대누나
漢城三月暮(한성삼월모) 서울엔 춘삼월이 저물어가고
愁淦又孤斟(수감우고짐) 시름 고여 또 홀로 잔을 따르네
4구(句)의 淦(감)자는 ‘배 밑 바닥에 고인 물’을 뜻하는 ‘감’자이니, 이 시를 쓰는
‘나’의 가슴 속에 배 밑바닥에 물이 자꾸 고이듯 시름이 차 올라온다는 느낌을 묘사
하려고 새로 골라본 글자이다.
봄은 저렇게도 바쁜 가야금 소리처럼 화사하기만 한데, 탐욕스러운 열강(列强)에
포위된 우리의 머리 위를 정신 나간 동족(同族)은 핵무기로 짓누르며 위협하고 있으
니, 배가 가라앉으려나, 스물스물 배 밑바닥에 물이 차오르듯이 근심이 가슴속에 차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