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고속도로에서 내륙고속도로를 달려 달려.. 달리다 보니 앞으로 문경 새재의 주흘산이 그 장엄한 모습을 드러냅니다. 언제 한번 꼭 맨발로 걸어보고 싶은 문경 새재길이 저 안에 있겠지요.
평지에는 가는 곳마다 익은 벼의 황금 물결.. 산지(山地)가 많을 것 같은 이 고장에 의외로 논이 넓어, 남부의 곡창지대 못지않은 풍요를 볼 수 있습니다. 노란 들을 가로 지르는 가로수길을 보니 마음마저 산뜻해집니다.
문경의 마원(馬院)성지에 먼저 도착했습니다.
<마원에는 일찌기 1801년 신유박해 이후 충청도 지역의 교우들이 박해를 피해 모여 들면서 복음이 전해지기 시작했다. 한실, 문경, 여우목, 건아기 등과 함께 마원은 교우들이 화전을 일구며 모여 살았던 유서 깊은 교우촌이다. 그러던 중 이곳에 박해의 회오리가 불어온 것이 1866년 병인년 마을의 교우 30여 명은 충주, 상주, 대구 등지로 압송돼 갖은 고문과 혹형을 당한 끝에 순교했다. 특히 30세의 젊은 나이로 장렬하게 순교한 박상근 마티아의 묘가 이곳에 남아 있다.>
마침 대구의 한 성당에서 단체 순례오신 교우들의 미사가 진행되고 있어서, 뒤에 같이 서서 미사를 마저 봉헌하고 돌아보니 바로 옆에 아! 먹음직한 사과들이... 성지는 과수원에 붙어 있었습니다. 평화로운 한낮입니다.
기념 촬영 한 컷. 제가 다니는 성당의 봉사팀입니다. 맨 오른 쪽이 저 윤병일 미카엘입니다.
박해 당시 고문과 처형에 쓰였던 형구돌입니다. 못에 밧줄을 걸고 그 줄을 저 구멍으로 넣어서 잡아다녔니... 우리 조상님들 어찌 그리 잔인하셨나요...ㅠㅠ 사람 마음을 숙연하게 만드는 물건입니다.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하는 오늘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알게하는 유물입니다.
약간 배가 고파올 즈음 드뎌 하회마을에 도착!
우리 일행중의 한 분 안토니오님의 고향(안동) 선배이신 인간문화재 이상호 선생이 하회마을 입구에서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덕분에 입장료니 뭐니 다 무료로 통과 통과.. 공연장 깊숙히 있는 특별 주차장까지 안내해주셨지요. 황송하게도....
공연이 시작되고..
이 사진의 백정 역을 맡으신 분이 바로 이상호님입니다. 이어서 등장할 황소를 도끼로 때려 잡는 장면이 좀 우왁스러워서 흠칫 놀라게 됩니다.
공공연을 마치고 인간문화재 이상호님과 기념 촬영 한 컷, 연세가 지긋하신데도 몸놀림이 유연하십니다.
볼 것은 많고 시간은 모자라고.. 훌쩍 자리를 옮겨 인근의 병산서원(屛山書院)으로 갔습니다.
<서애 유성룡의 학문과 업적을 기리기 위한 곳으로, 안동에서 서남쪽으로 낙동강 상류가 굽이치는 곳에 화산(花山)을 등지고 자리하고 있다. 유성룡은 도학·글씨·문장·덕행으로 이름을 날렸을 뿐만 아니라, 임진왜란 때에도 성곽 수축·화기제작을 비롯하여 군비확충에 힘써 많은 공을 세운 인물이다.
원래 풍악서당으로 풍산 유씨의 교육기관 이었는데, 유성룡이 선조 5년(1572)에 이곳으로 옮겼다. 그 후 광해군 6년(1614)에 존덕사를 세워 그의 위패를 모시고, 1629년에 그의 셋째 아들 유진의 위패를 추가로 모셨다. 철종 14년(1863)에는 임금으로부터 ‘병산’이라는 이름을 받아 서원이 되었다. 서원내 건물로는 위패를 모신 존덕사와 강당인 입교당, 유물을 보관하는 장판각, 기숙사였던 동·서재, 신문, 전사청, 만대루, 고직사가 있다.
병산서원은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을 담당해 많은 학자를 배출한 곳으로, 186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에도 남아 있었던 47개의 서원 중 하나이며, 한국 건축사에 있어서도 중요한 유적이다. (문화재청)>
이름 그대로 병풍처럼 두른 산밑으로 물(낙동강 상류)이 흐르는 만대루(萬臺樓)에서.............
다시 차로 좀 달려서 날 어둡기 전에 봉정사(鳳停寺)라는 절에 도착했습니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방문하셨다는 이 절.
<682년(신문왕 2) 의상(義湘)이 창건하고 화엄강당을 지어 신림(神琳)을 비롯한 제자들에게 불법을 전했다고 한다. 6·25전쟁 때 경전과 사지(寺誌)가 모두 소실되어 창건 이후의 역사는 자세히 알 수 없다. 현재 극락전(국보 제15호)·
대웅전(보물 제55호)·화엄강당(보물 제448호)·고금당(古今堂:보물 제449호)과, 승방인 무량해회(無量海會)·만세루(萬歲樓)·우화루(羽化樓) 등의 당우, 고려시대의 3층석탑(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82호) 등이 있다.
봉정사에 있는 고려 중기·후기의 목조건물. 국보 제15호. 앞면 3칸, 옆면 4칸의 단층맞배지붕 건물이다. 부석사 무량수전보다 이른 시기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972년 해체수리시 발견된 상량문은 1625년(인조 3) 중수하면서 쓰여진 것인데, 1363년(공민왕 12)에 중창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어 늦어도 13세기에는 이 건물이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현존하는 목조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며 주심포계의 건축양식을 보여주는 귀중한 건물이다.
(백과사전)>
봉정사 극락전입니다. 마침 옆 건물들을 보수중이었습니다. 무량수전 보다도 더 오래된 한국 최고의 목조건물이라니... 앞쪽의 고색창연한 석탑을 중심으로 양 옆의 창문이 두 눈처럼 천년의 눈길로 우리를 쳐다보는 것 같아... 사람의 평생이란 얼마나 덧없이 짧은가...를 다시 느낍니다.
옆 모습도 단아(端雅)합니다.
극락전 옆 마당의 불상. 우리 옛 화강암 불상들은 볼 때마다 편안함을 느낍니다. 정수리의 넉넉한 육계(肉髻), 과(過)하지 않게 도톰한 얼굴의 살집, 무표정한 듯하나 단호하게 다문 입 매무새, 그리고 앞가슴 아래의 속옷 끈 묶음새 등의 모습에... 드러내지 않게 멋을 낸 우리의 아주머니 같은 친근한 편안함이 있습니다.
땅거미가 지는 시간, 조용한 절 뒷녘에 감도는 고즈넉함이 너무 좋아.. 일행과 떨어져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계절은 스님의 손끝에서 익어가고 있습니다.
산이 내어주는 선물은 그대로 말려 간수되었다가, 긴 계절 수도자들의 마음속 영양분으로 고스란히 남을 것입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굴뚝이 언제 세워졌는지..
머리에 족두리를 얹은 새색씨 같기도 하고.. 한입 가득 음식을 물고 앙증맞게 쳐다보는 어린 신랑의 눈망울 같기도 합니다.
오랜 세월 스님들의 근심을 받아 덜어주던 해우소(解憂所)가 오히려 제 어깨 위에 근심의 더깨를 꽤나 쌓았습니다....
하나 둘 보이던 연인들의 모습도 계단 너머로 사라지고.. 이제 돌아가.. 그야말로 근심 어린 우리들의 배(腹)을 채울 시간입니다.^^ 산기슭의 식당에서 향이 진한 국화차를 한 잔씩 맛본 후에 안동댐의 야경을 눈에 담은 후에.. 우리를 안내하신 안토님오님의 단골집이라는 생갈비집으로 갔습니다... 하루 종일 봉사와 관광에 바빠 매우 시장하던 차에... 정신없이 고기를 굽다 보니.. 식사 사진을 못 찍었습니다. 안동 한우... 고기는 부드럽고 값은 왜 또 그리 싼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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