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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옛글

貿鹽販粟說

謫寧城數月。囊盡。無以食。 

부령에 유배된 지 몇 달이 지나자 쌀자루가 비어 먹을 것이 없었다.


謀諸居人。居人有曰。

그곳에 사는 사람들과 의논하니,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


海濱貴穀而賤鹽。胡地穀饒而鹽乏。

“바닷가에서는 곡식은 귀하나 소금은 흔하고, 오랑캐 땅에서는

곡식은 풍부하나 소금은 부족하오.


貿海鹽。則其直倍於本穀。

바닷가의 소금을 사다가 오랑캐 땅의

곡식과 바꾸면 그 이문이 밑천으로 들인 곡식보다 몇 갑절은 남을 것이오.


可以糊君口。君無患焉。

그러면 입에 풀칠은 할 수 있을 것이니, 그대는 근심하지 마시오.”


余始聞其言。以爲此商賈所爲。

내가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는 이런 일이 장사치나 하는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吾不忍爲此事。趦趄者久。及其枯腸鳴而僮僕

나는 차마 그 일을 하지 못하여 오랫동안 주저하였는데,

급기야 마른 창자에서 소리가 나고 아이종까지 성을 내기 시작하였다.


欲須臾死。從其計而行之。顔忸怩而心不寧矣。

이에 잠시나마 목숨을 부지하려는 생각에 그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로 하였다.

하지만 부끄러워 낯이 달아오르고 마음이 편치 못하였다.


於是。使小僕握數斗粟。走海濱九十里之地。貿鹽來。鹽可一斛。

결국 아이종을 시켜 몇 말의 곡식을 가지고 90리 떨어진 바닷가로 달려가

소금을 사오게 하니, 소금이 열 말 정도 되었다.


鹽斛。走北關一百二十里之外。販粟來。粟可兩

열 말 소금을 싣고 북관 120리 길을 달려가 곡식으로 바꾸어 오게 하니,

곡식이 스무 말 정도 되었다.


往來貿販。*經半月。我馬矣。我僕矣。而我腹則矣。

이렇게 오가며 소금과 곡식을 사고파는 데 거의 보름이 걸렸다.

내 말은 골병이 들고 내 종은 지쳐버렸지만 그래도 내 배는 굶주리지 않게 되었다.


方其乏食。屋皆慍。見若無人色然。

한창 양식이 부족할 때는 온 집안 사람들이 모두 성을 내어

살아있는 사람의 낯빛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握粟以往也。戒之曰。食已盡。爾其限兩日貿鹽來。

아이종이 곡식을 가지고 떠날 때 이렇게 주의를 주었다.

“양식이 이미 떨어졌다. 너는 이틀 안에 소금을 사오너라.”


載鹽以往也。戒之曰。飢已久。爾其作急販粟來。

그리고 아이종이 소금을 싣고 떠날 때는 이렇게 주의를 주었다.

“굶주린 지가 이미 오래이다. 너는 서둘러 곡식으로 바꾸어 오너라.”


旣往之後。屈指計日。以待其來。

아이종이 떠난 뒤에는 손가락을 꼽으면서 날짜를 헤아리며 돌아올 날만

기다렸다.


逮其貿粟以來。擧室之人。環斛粟以視之曰。得此粟。吾其延朝夕命矣。

곡식으로 바꾸어 오자 온 집안의 사람들이 열 말들이 곡식 섬을

둘러싸고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 곡식을 얻었으니 우리는 아침저녁 잠시 목숨을 잇게 되었구나.”


火而炊之。而口之。則粒粒皆有味。飢腸實而枯骨肉。融然欣欣然

聚首相慶。불을 지펴 밥을 짓고 숟가락으로 떠서 입에 넣으니 밥알

하나하나가 모두 맛이 있었다. 굶주린 창자가 채워지고 뼈만 남은

몸에 살이 붙자 기분이 좋아져서 모두 모여 축하하였다.


此貿販。吾將溝壑中。而自今以後。庶不爲塞外之飢鬼矣。

“이렇게 장사를 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죽어서 구렁텅이에 버려졌을

것이야. 이제는 변방에서 굶어죽은 귀신이 되지는 않겠구나.”


始以行商爲。中焉以業商勞心。終焉以得食爲幸。

처음에는 장사하러 다니는 것이 부끄럽더니 중간에는 장사하느라

마음을 졸이고, 마지막에는 양식을 얻게 된 것이 다행스럽게 되었다.


以爲得之則生。不得則死。日夜望望然冀升米是獲。唯恐商業之不長。

關此心者。양식을 얻으면 살고 얻지 못하면 죽는 처지인지라 밤낮으로

목을 빼고 쌀 한 되라도 얻기를 바라면서 그저 장사를 계속하지 못할까

걱정하였으니, 마음에 걸리는 것은 오직 이 한 가지 일 뿐이었다.


惟此事命所急。喪盡羞恥本心。而遷延成習。終作別樣人。

목숨이 급박하여 수치스럽다는 처음의 마음은 모두 잃어버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습관이 되어 마침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버렸다.


時時發笑自。而笑之極。又自憐且自惜也。

때때로 웃음을 지으면서 스스로를 욕되게 하지만,

실컷 웃고 나면 다시 자신이 가련하고 애석한 마음이 들었다.


夫民於天地間者。惟士農商賈四而已。

천지 사이에서 살아가는 백성은 선비와 농사꾼, 행상과 좌상 네 종류뿐이다.


吾少也。讀聖賢書。惟道是謀。非古。不敢事。是爲士焉。

나는 젊어서 성현의 글을 읽고 오직 도(道)만을 추구하면서 옛것을 살피는

일이 아니면 감히 하지 않았으니, 이는 선비의 노릇을 한 것이었다.


老也。此口腹。惟食是謀。非販賣。無所事。是爲商焉爲賈焉。

이제 늘그막에 이렇게 구복(口腹)이 빌미가 되어 양식을 마련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자, 장사가 아니면 할 수 있는 일이 없게 되었으니,

이는 장사치의 노릇을 한 것이라 하겠다.


此身之所未嘗者。惟農耳。

이제 스스로 몸소 겪어보지 못한 일은 오직 농사뿐이다.


農者。守田畝。事鋤含哺鼓腹。生生樂業之謂也。

농사꾼은 논밭을 지키면서 밭을 갈고 김을 매어 실컷 먹으면 배를 두드리고

대대로 즐겁게 살아가는 사람을 이른다.


白髮殘生。得罪明時。幽荒裔。局形縮影。寸步不得出。雖欲爲農。其可得乎。

백발의 노쇠한 몸으로 밝은 시대에 죄를 짓고 궁벽한 땅에 갇히고 말았으니

구속을 받아 한 걸음도 밖으로 나갈 수가 없다. 농사꾼이 되고자 한들 가능한

일이겠는가?


昔之爲士也。引經史。談道理。妄以身爲學聖人之徒。

예전에 선비 노릇을 할 적에는 경전과 사서를 끌어들이고 도덕과 이치를

이야기하며 내 자신이 성인을 배우는 사람이라고 멋대로 여겼다.


將欲致斯君。澤斯民。庶幾駸駸然入於三代以上之天。

장차 우리 임금을 성군으로 만들고 우리 백성에게 은혜를 베풀어 점점 삼대

이전의 태평시대로 바꾸어보겠노라 생각한 적도 있었다.


唾商賈。農夫。不敢置於齒牙間。

장사치를 보면 침을 뱉고 농사꾼을 보면

눈을 흘기며 그들의 일에 대해서는 감히 입에 담으려 하지 않았다.

而視若天淵然。

선비와 장사치나 농사꾼은 마치 하늘과 땅처럼 차이가 나는 것으로 여겼다.


今則爲商爲賈而甘心焉。至於農則不敢望焉。

이제는 장사치 노릇을 하면서도 달게 여기고, 농사꾼이 되는 것은

감히 바라지도 못하는 처지가 되었다.


人生於世。登靑天。落溝瀆。在轉頭之頃。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푸른 하늘 높이 오르거나

깊은 구렁텅이 어두운 곳에 빠지는 일은 잠깐 사이에 달려 있다.


而身纔屈。心亦屈也。以此身業此商。自慙也。自笑也。自憐也。自惜也。

몸이 굴욕을 당하면 바로 마음도 굴욕을 당하는 법이다. 이 몸이 이와

같은 장사치 노릇을 하고 있자니 스스로 부끄럽고 스스로 우습고 스스로

가련하고 스스로 애석하다.


而私愚成慮。有所希者。聖量如天。若容螻蟻。許作田巷之一農夫。

어리석은 내가 바라는 일은 임금님께서 하늘같이 넓은 아량으로

보잘것없는 나를 용서하여 시골의 농부가 되도록 허락해주시는 것이다.


則手。事耕穫。上之奉祭祀。次之供租稅。下之延軀命。

그렇게만 된다면 손수 씨를 뿌리고 김을 매고 밭을 갈고 추수하여

위로는 제사를 받들고 다음으로 조세를 납부하며 아래로 목숨을

부지할 것이다.


一物之微。亦得其所。可爲淸時頌德之人也。

그리하면 일개 이 몸도 제 자리를 찾게 되어 태평성대에 성덕을

칭송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嗚呼。召公明農。在於治世功成之後。

아, 소공(召公)이 농사에 힘쓰게 된 것은 세상을 다스리고

공업을 이룩한 뒤의 일이었다.


人在拘而生。此計其亦蚩蚩之甚者也。乃敢咄爲之說。

비천한 나는 갇힌 채로 이런 일을 하였으니 그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겠는가? 이에 감히 혀를 차면서 이렇게 말한다.


- 홍성민,〈소금을 팔아 곡식을 산 이야기(貿鹽販粟說)〉《졸옹집(拙翁集)》


[해설]

* 대개 ‘사농공상(士農工商)’을 사민(四民)이라 하는데, 이 글에서는 상인을

행상(商)과 좌상(賈)으로 나누어 ‘사농상고(士農商賈)’를 사민이라 하였다.


홍성민(1536-1594)은 조선 중기의 학자로 벼슬이 판서에까지 올라 서인

(西人)을 영도한 인물이다. 그러나 1591년 서인의 영수 정철(鄭澈)이 실각

하자 함경도 부령으로 유배를 떠나게 되었다. 타고 갈 말이 없었기에 가산

을 모두 정리하고 말 여섯 마리를 사서 길을 떠났다. 가지고 간 식량은 금

방 바닥이 났다.


  그러자 주변 사람들이 변방에서는 말이 귀하지 않으니 말을 팔아 소를

사서 남에게 빌려주면 곡식을 얻을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는 부족하였다. 결국 홍성민은 주위의 권유를 받아들여 바닷가의 소금과

오랑캐 땅의 곡식을 바꾸는 장사를 하여 먹고 살게 되었다.


  직접 장사하러 나서지는 않았지만 물건을 사고팔도록 시켰으니, 선비로

서는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었으리라.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굶는 것에 비

하면 부끄러움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한때 선비로서 고상한 삶을 누리던 홍성민은 장사나 농사가 자신과 아무

런 상관이 없는 일로 여겼다. 하지만 그는 이제 장사로 먹고 살 수 있는 것

을 다행으로 여기고, 농사를 짓는 것은 감히 바라지도 못하는 처지에 놓이

게 되었다.


  이제 그가 임금에게 바라는 것은 고향으로 돌아가 농부로 여생을 마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는 것이라 하였다. 물론 속으로는 선비로 돌아갈

날을 염원하였으리라.


                 번역 및 해설      - 이종묵 서울대학교 국문학과 교수


註 (by 저녁놀)


* 儲 쌓을 저 저축하다  儲米 儲穀       儲蓄 = 貯蓄

  貿 무역하다, 사다 바꾸다    販 팔다, 사다, 장사하다   粟 조 속,= 오곡, 양식

 신 사(시), = 짚신  如脫弊여탈폐사 헌신짝 버리듯 한다,  履사리=신발


庶(서) 여러, 거의, 바라건대,, 支孫 支派 무리, 庶出


머뭇거릴 자,

뒤뚝거릴 저,   趦趄자저...머뭇거림 망설임. 주저(躊躇) 지주(踟)


慍 성낼 온,  慍容 성낸 얼굴, 화난 얼굴,   須臾수유... 잠시

毋  말 무, 없다 아니다.


뉵 忸 부끄러워할 뉵(육)

니 怩 부끄러워할 니(이)


斛 휘 곡,(10말)

馱 실을 타, 실을 태. 싣다, 태우다


***經半月    動 자칫하면 동, 까딱하면. 

   ex)來往皆經月 (皆모두, 다함께) (韓愈)오고 감이 합쳐 자칫 한 달이 넘었다.


앓을 도, 앓다, 말(馬)이 지쳐 나아가지 않다.

앓을 부


빌 효, 속이 빈 모양, 굶주리다.

擧 다, 모든        屋皆慍 온 집안 사람들이 모두 화를 내고


匙 숟가락 시

融  녹다, 녹이다, 성(盛)하다, 화(和)하다, 즐겁다 화락(和樂)하다

欣然 기쁘거나 반가워 기분이 좋은 모양,   欣 기쁠 흔


微 아니다  微此貿販 이렇게 장사를 하지 않았다면


塡 메울 전, 진정할 진, 다할 진(=盡)

溝壑 구학, 구렁. 땅이 움쑥하게 팬 곳. 깊이 빠진 곳


愧 부끄러울 괴

冀 바랄 기

升 되 승/오를 승

軀 몸 구

點 점, 얼룩, 흠 결함, 더럽힐 점

ex)適足以見笑而自點耳(사마천) 마침내는 비웃음이나 당하고 스스로 욕을 취할 뿐이다.

稽 상고(詳考)할 계, 헤아리다, 의논하다


祟 빌미 수     ㉠빌미(재앙이나 탈 따위가 생기는 원인) ㉡빌미 내리다

곰방메 우 (=㉠곰방메(논밭의 흙덩이를 깨뜨리거나 씨를 묻는 데 쓰는 농기구)

               ㉡씨앗 덮다

               ㉢갈다

*含哺鼓腹 함포고복... 음식(飮食)을 먹으며 배를 두드린다라는 뜻으로, 천하(天下)가

                    태평(太平)하여 즐거운 모양(模樣),  먹일 포, 먹다, 먹여 기르다.


맬 집,  맬 집     ㉠매다 ㉡마소를 잡아 매다 ㉢연잇다 ㉣고삐 ㉤굴레

裔 후손 예    ㉠후손(後孫) ㉡자락, 가선, 옷단 ㉢가, 끝, 변방(邊方) ㉣오랑캐 ㉤남다


駸 달릴 침, ㉠달리다 ㉡빠르다    駸駸침침, 나아감이 썩 빠름


睨 곁눈질 할 예    ㉠곁눈질 하다 ㉡노려보다 ㉢엿보다 ㉣기울다 睥睨비예

睥 흘겨볼 비     ㉠흘겨보다 ㉡엿보다 ㉢곁눈질하다

睥睨  비예.......   눈을 흘겨봄. 둘레를 흘겨보고 위세(威勢)를 부리는 것


天淵之差 천연지차... 하늘과 연못 사이처럼 큰 차이(差異)가 있음


溝瀆 구독.... 개천과 수렁

覬 바랄 기 ㉠바라다


螻蟻 누의 (螻 땅강아지 누, 蟻 개미 의)... 땅강아지와 개미라는 뜻으로,

          작은 힘이나 미미한 존재를 비유(比喩)


耔 북돋울 자,  

보습 사 ㉠보습㉡쟁기날㉢따비로 갈다㉣쟁기 손질을 하다


*  耘耔 운자... 김을 매고 북돋움

耘 김맬 운  ㉠김매다 ㉡없애다, 제거하다(除去--) ㉢북돋우다

cf) 耕耘機 경운기


鄙 더러울 비, 마을 비 (鄙陋비루)  (都鄙 서울과 시골)

蚩 어리석을 치

咄 꾸짖을 돌.... ㉠꾸짖다 ㉡놀라 지르는 소리 ㉢어이!

咄咄 돌돌... 괴이(怪異)하게 여겨서 놀라는 모양

咄嗟 돌차... 혀를 차며 애석(愛惜)히 여김

咄嗟間 돌차간... 눈 깜짝할 사이. 순간(瞬間). 순식간

咄嘆 돌탄... 혀를 차며 탄식(歎息)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