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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옛글

游統營記 이 인상 (안 대회 역)

游統營記 통영을 노닐고 쓴다

 

自固城縣南。山勢奔馳入海。

고성현 남쪽부터는 산세가 내달려서 바다로 들어간다.

5리를 가서 서편을 바라보았다.


始行五里。西望有山參差。拖碧百餘里。橫斷海門者。爲蛇梁島。

올망졸망 솟은 산이 나타나 백여 리에 푸른 빛을 풀어놓고 바다를

가로로 끊어놓았다. 바로 사량도(蛇梁島)였다.


山行人指點上峰名爲玉女云。

산길을 가노라니 사람들이 제일 높은 봉우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옥녀봉(玉女峰)이라고 불렀다.


自此夾路三十里皆長松。虬枝偃蓋。蔽虧雲日。海色片片隱映。

여기부터 삼십 리나 뻗은 길 양편은 모두 키 큰 소나무로 덮여 있다.

가지는 꿈틀대는 이무기처럼 가로 눕고 하늘을 덮어서 구름과 해를 가렸다.

그 사이로 바다가 조각조각 어리비쳤다.


島嶼點綴。有時望如行舟焉。

又行數里。倚山際海而有小城。上起層樓。號爲統制使轅門。

이따금 바라볼 때마다 점점이 떠 있는 섬들은 마치 배가 가는 듯했다.

또 몇 리를 가다보니 산에 기댄 채 바다를 바라보고 세운 작은 성이 나타났다.

성 위에는 층루(層樓)를 세웠는데 통제사(統制使) 원문(轅門)이라고 불렀다.


又行五里。山勢忽迤而西馳。而左右陡起。北山尤高。

또 5리를 가자 산세가 갑자기 꺾여 서편으로 내달리다가 좌우로 불쑥

솟아올랐다. 특히 북쪽 산이 높게 솟았다.


腹背受海水。截岡環城。而洗兵館在其中央。

산의 배와 등은 바닷물을 받아들이는데 묏부리를 잘라서 빙 둘러 성을 쌓았다.

세병관(洗兵館)은 성의 중앙에 자리 잡았다.


南臨衆峰。沓拖如屯雲。吐納波浪。滙爲平湖。

남쪽으로 뭉게구름이 이어진 듯 수많은 산봉우리는 파도를 토했다가

다시 받아들이고, 물이 모여 넓은 호수를 이룬 바다를 세병관은 내려다보았다.


而東西譙樓。縹緲空光中。與晏波淸南二樓。八戰艦帆檣森列在前。

동편과 서편의 초루는 햇볕 속에 안파루(晏波樓)와 청남루(淸南樓) 두 누각과

더불어 아스라이 솟아 있었다. 앞에는 전함 여덟 척의 돛과 돛대가 빽빽하게

벌여 있었다.

凡洪濤巨巒。畵樑雕檣。盡入洗兵館簾間。

거센 파도와 큰 산, 화려한 들보와 아로새긴 돛대들이 모두 다 세병관의

주렴 사이로 들어왔다.


卽館之大無對焉。連楹數十。而夾以彩樓。深嚴尊重。中可容人千數。

이 세병관은 그 크기가 상대할 짝이 없다. 연달아 선 기둥 수십 개에 채색한

다락으로 곁을 채워 깊숙하고 장엄하며 드높고 둔중하였다.

그 내부는 사람 천 명이 들어갈 만했다.


海防財力。蓋殫於此。不知創於何人也。

바다를 수비할 재력을 여기에 다 쏟았는데

누구의 손에 창건되었는지를 알 수 없다.


上北譙樓。望閒山島。出西城讀李忠武戰功碑。至晏波樓下。觀八戰艦。

북쪽 초루에 올라가 멀리 한산도를 바라보았다. 서쪽 성으로 나가서 이충무공

전공비(戰功碑)를 읽고서 안파루 아래에 이르러 여덟 척의 전함을 구경하였다.


艦皆高壯如山。一作層榭複檻。其大幾敵洗兵館。

전함은 모두 산처럼 크고 장대하였다. 한 척은 여러 층의 다락과 겹겹의 난간을

만들어 그 크기가 거의 세병관에 맞먹을 만했다.


而入海便同浮梗。風水之力。儘大矣。

배가 바다로 들어가면 물 위에

뜬 나무 인형 같으니 바람과 물의 힘이란 참으로 위대하다.


然運使者在于人力。而以之制敵决勝者。又在于智力。爲將之責。尤大矣。

그러나 배를 운행하고 부리는 것은 사람의 힘에 달렸고, 그 배를 이용하여

적을 제압하고 승부를 결판내는 것은 또 지략과 힘에 달렸다. 장수가 된 책임은

그보다 훨씬 위대하다고 하겠다.


自數百年以來。國家昇平。邊疆無事。高館巨艦。便爲游客流連之所。

淸吹長袂。日以爲樂。

수백 년 이래로 나라는 태평스럽고 변방에는 일이 없다. 그래서 드높은

세병관과 큰 전함을 곧잘 유람하는 자가 머물러 노니는 장소로 삼아서

청아한 음악에 긴 소매로 날마다 즐긴다.


而水卒終歲暇逸。編竹爲網漁利以爲業。

수군 병사들은 한 해 내내 편안하게 쉬면서 대나무를 엮고

어망을 만드는 부업을 제 직업처럼 여긴다.


雖有良將。將無所施其智勇矣。

아무리 훌륭한 장수가 나타난다고 해도

지략과 용맹함을 발휘할 방법이 없을 것이다.


仍坐舵檻。搴篷四望。

배의 키에 있는 난간에 앉아서 뜸을 걷어올리고 사방을 둘러보았다.


秋日澄霽。海波淸蕩。島山聯綿生愁。

가을 햇볕은 맑게 빛나고 바다의 파도는 잔잔하여 굽이굽이 이어진

섬의 산이 시름을 자아낸다.


忽令人思見公孫娘之舞劒器。伯牙之奏水仙。悄然忘返焉。

그 때 문득 공손대랑(公孫大娘)이 검무(劍舞)를 추고, 백아(伯牙)가

수선조(水仙操)를 연주하는 것을 보고 싶어져 초연히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조차도 잊어버렸다.


       - 이인상(李麟祥), 〈유통영기(游統營記)〉, 《능호집(凌壺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