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란했던 옛날
逝而不可返者。年也。去而不可再者。事也。
한번 가면 돌아오지 않는 것이 세월이고,
한번 일어나면 돌이킬 수 없는 것이 일이다.
年不可返而老將至矣。事不可再而懽意日難。
세월을 돌이키지 못하므로 늙음이 닥쳐오고,
벌어진 일을 돌이키지 못하므로 즐겁게 지내기가 갈수록 어렵다.
況復存歿於其間。而有懟於天與神者哉。
더욱이 그 사이에 돌아가신 분과 살아남은 사람이 갈려서
하늘과 신에게 원망할 일이 많아졌으니 말해 무엇 하랴?
憶在癸未歲。家大人解金陵綬還洛。余以數尺童子。
升堂拜諸母諸兄。始展姑姪之禮。
계미년(1643)에 집안 어른께서
금릉(金陵, 금산군)의 원님 자리를 그만두고
서울로 돌아오셨을 때가 생각난다.
키 작은 어린 아이로서 나는 방에 들어가
집안 어른들과 형님들께 절을 하여 조카로서 예를 갖추었다.
爾時兩家子弟無慮數十人。逐隊群居。
朝怡夕嬉。不知人事之易改。而唯幸團會之至樂。
그때에는 두 집안의 자제들이 무려 수십 명에 이르렀고,
무리를 이뤄 많은 사람이 모여 살았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즐겁게 노느라고
사람 사는 일이 손쉽게 바뀌는 것도 모르는 채
단란하게 모여 사는 커다란 즐거움을 다행으로만 여길 뿐이었다.
後二年。客于蓴城。越三年歸來。
則男娶女嫁。各有室家之樂。而昔之所樂則漸鮮。
그로부터 이태 뒤에 순성(蓴城, 태안군)에서
객지생활을 시작하였다가 삼년이 지나 돌아와 보니
남자는 장가들고 여자는 시집가서 제각기 가정을 꾸리고 살았다.
그렇게들 각각 사는 데 재미를 붙이고 있으니
지난날처럼 즐겁게 지내는 일은 갈수록 드물어갔다.
猶幸兩家父母兄弟。無恙無故。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두 집안의 부모형제들이
병도 없고 사고도 없이 살고 있는 것이었다
又二年。自永州還。迄于今八九載間。
또 그로부터 이태가 지나 영주(永州, 영천군)에서 돌아온 뒤로부터
지금까지 8, 9년이 흘렀다.
人事日非。續有存歿之感。遽作後死之悲。噫嘻悲夫。
人事之不常有如是夫。人事之不常有如是夫。
그 사이에 사람 사는 일은 날마다 틀려지고
돌아가시는 분을 애도하는 일이 계속 이어졌다.
그때마다 불현듯 남아있는 자로서 슬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 슬픈 일이다! 사람 사는 일이란 이렇듯이 영원하지 않구나
人生易老。百年草草。奈之何共樂一堂之人。
未及中歲。乃爲先後死歟。
인생은 늙기 쉬워 한 백년을 허둥지둥 보낸다.
어째서 한 집안에서 즐거움을 함께 나누던 사람이
중년의 나이도 되지 않아
이렇게 앞서거니 뒤서거니 죽는단 말인가?
此所以有懟於天與神。
하늘과 신에게 원망하는 마음을 품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而自非達人曠士。不能免深痛永衋。興感於昔日者也。
내 자신이 인생에 달관한, 통 큰 사람이 아니고 보니
깊이 애통해하고 길게 서러워하면서 지난날 사연에 감정이 뭉클해지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
噫嘻悲夫。人世之易感有如是夫。人世之易感有如是夫。
아, 슬픈 일이다! 인간 세상이란 이렇듯이 감정에 휘둘리기 쉽구나!
인간 세상이란 이렇듯이 감정에 휘둘리기 쉬워!
昔之强壯者未甚向老。而襁褓者亦已長成。
지난날 청년 장년이던 사람은 그다지 늙지도 않았건마는
강보에 누워있던 아기들은 벌써 다 자라 있다.
縱有一時之懽。而不忍道往事。恐有存歿之感。始乎方寸中。
설령 잠깐 사이나마 즐거워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날 사연을 차마 입에 올리지 못하는 까닭은,
돌아가신 분들을 향한 남아있는 자의 슬픔이
가슴 속에서 솟아날까봐 걱정돼서다.
嗚呼。人而至此。幾何不有懟於天與神哉。
아! 사람으로서 이런 처지에 이른다면
어떻게 하늘과 신에게 원망하는 마음을 품지 않을 수 있으랴!
今吾之四十五十未可知。而折吾年數十歲。
欲換當時半日之樂。何可得也。
지금 나는 40세를 살지 50세를 살지 아직 알 수가 없지만,
내 나이 수십 년을 잘라내서
지난날의 반나절의 즐거움과 바꾸고 싶다마는,
그런 일이 어떻게 가능하랴?
古人有云。樂莫樂於如意。憂莫慘於不如意。
옛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
“뜻대로 되는 것보다 즐거운 것은 없고,
뜻대로 되지 않는 것보다 시름겨운 것은 없다.”
有味哉言之也。余於是。未嘗不三嘆也。戊戌孟春。書。
정말 음미할 만한 말이다.
그래서 나는 자꾸만 탄식이 새어나오는 것을 금할 수 없다.
무술년 첫봄에 쓴다.
- 신익상(申翼相), 〈감구서(感舊序)〉, 《성재유고(醒齋遺稿)》
해설
나이를 먹어가는 것의 우울함과, 어릴 적 추억을 공유한 가까운 가족이
자기 곁을 떠나는 것을 서글퍼하는 마음을 표현한 글이다.
글을 쓴 신익상(1634~1697)은 소론계(少論系) 사대부로서 숙종 임금 때
에 이조판서와 우의정을 지냈다.
어린 시절 대가족 사이에서 즐겁게 지내던 일을 무한한 감개를 담아 썼다.
이 글을 쓴 때는 의외로, 글쓴이가 밝힌 것처럼, 무술년(1658년)으로 그의
나이 25세 때이다.
한창 청년의 시기에 이렇게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감개에 젖은 이유가 무엇
일까?
글을 쓰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두 누님의 갑작스런 죽음이다. 신익상의 문집
에는 같은 해 여름에 쓴 같은 제목의 글이 한 편 더 실려있는데 직전에 죽은
두 누님을 간절히 그리며 썼다. 젊은 나이에 죽은 누님들의 죽음으로 인해 글
쓴이는 인간 세상에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지를 깨닫는다.
누님의 죽음은 즐거움으로만 기억되는 어린 시절을 자꾸만 떠오르게 만들고,
가족들과 가꾼 추억을 더욱 소중하게 느끼게 한다. 너무도 쉽게 변해가는 세
월의 힘 앞에서 그 시절 추억은 더 아름답게 남아 있다.
글쓴이에게는 8형제가 있었고, 아버지 형제는 모두 넷으로 대가족이었다.
그렇지만 글에도 나오는 것처럼, 아버지 신량(申량[水+亮], 1596~1663)이
구례, 금산, 태안, 영천, 안산, 청송, 담양, 해주 등지에서 지방관을 했고,
그 때마다 나이 어린 글쓴이는 아버지를 따라 다녔다.
그러다가 가끔 본가에 와서 대가족 사이에 묻혀서 마음껏 뛰어 놀았다.
어느 순간 세월이 흐르고 아무 걱정 없이 놀던 형제들이 나이가 들고, 또
죽어서 곁을 떠나기도 하며 인간 세상의 사람 사는 길이 나에게도 어김
없이 찾아온다. 하늘과 신을 원망이라도 하고픈 심경이 일어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이가 들어서 느끼는 어린 시절에 대한 무한한 감회와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이 짙게 묻어난다.
번역 & 해설 : 안대회 -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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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만큼 가슴 아픈 일들이 있을까..
어릴 땐 철없이 부모님이나 형 누나들의 그늘에 뛰어 놀다가, 성장하여
짝을 만나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기르다 보면, 이제 하나 둘 손 위의 혈육
들이 세상을 떠나는 일들을 경험하게 된다.
대개 장년에 이르면 부모님과 그 형제분들과의 이별이 기다리고 있고, 차
차 친 형제 사촌 형제들이 하나 하나 우리 곁을 떠남에 따라, 어릴 땐 ‘세상
은 아름다워라’였던 삶이 기실은 ‘세상은 눈물 날 일 많아라’였다는 것을 알
게 된다.
그럴수록 피붙이들과 함께 어울려 노래하며 지내던 어린 시절의 기억들은
우리에게 더욱 더 소중한 것으로 생각되고, 다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어, 글쓴이는 ‘내 나이 수십년을 잘라 내어 지난 날 반나
절의 즐거움과 바꿀 수 있다면..’ 이라고 소망한 것이다.
여름날 마당 큰 나무 아래서 여럿이 모여 탁구도 치고 노래도 부르던 일,
눈 쌓인 동네 길에서 어둡도록 누나와 둘이서 눈싸움을 하던 일.. 골목을 울
리던 누나와 나의 그 웃음 소리, 어린 내게 자전거 타는 법을 배워주던 형,
큰 형수들 김장하는 곁에서 겉저리 받아 먹으며 유행가 불러드리던 대여섯
살 먹은 나,
새 옷을 입고 떼지어 세배 다니거나 겨울 밤 이불가에 모여 앉아 귀신 이
야기에 머리카락이 솟던 일, 지금은 아주 오래된 팝송들을 그땐 주로 형 누
나에게서 배웠고.... 매일 매일이 그리고 모든 것들이 즐겁고 경이로웠었다.
어느새 세월이 흘러 당시의 집안 어른들은 이제 유명을 달리하신지 오래고,
기둥처럼 우뚝하던 큰 형들 누나들도 하나 둘 씩 떠나가고 있다. 이것은 나의
이야기이지만 이 글을 읽으시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윗글의 작자처럼 신을 원망할 생각은 없다. 오히려 삶의 고해
(苦海)를 건너가는 우리들 누구에게나 즐거웠던 기억들을 언제나 들여다 볼
수 있는 이름표처럼 붙여주신 신에게 감사드릴 뿐이다. 즐거웠던 날들이여!
내 소중한 기억이여! - 미카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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