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진주만 폭격이 있은 다음 해, 한국의 두 젊은 시인이 경주 근처의 건천(乾川)역에서
처음 만나게 된다. 그들은 22세의 조 지훈과 26세의 박 목월이었다. 후일 목월이 시집 <산도
화(山桃花)>를 발간할 때, 지훈은 그 서문(序文)에서 다음과 같이 두 사람의 첫 만남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내가 목월을 처음 만난 것은 1942년 이른 봄이었다. 그 전 해 가을에 나는
절간에서 일본의 진주만 공격 소식을 들었고...... 이듬 해 봄에...... 나는
그 목월에게 편지를 썼다..... 목월에게서 답장이 왔었다. “경주박물관에는
지금 노오란 산수유꽃이 한창입니다. 늘 외롭게 가서 보곤 하던 싸느란 옥적
(玉笛)을 마음속에 그리던 임과 함께 볼 수 있는 감격을 지금부터 기다리겠
읍니다. 오실 때 미리 전보(電報) 주시압”
이 짧은 글을 받고 나는 이내 전보를 쳤었다. 철에 이른 봄 옷을 갈아 입고
표연(飄然)히 경주(慶州)에 내린 것은 저녁 어스름-- 분분(紛紛)한 눈송이와
함께 봄비가 뿌릴 때였다. 목월은 초면의 서울 나그네를 맞으려「朴木月」이
란 깃대를 들고 건천(乾川)까지 마중을 나왔었다는 것이다.
그 밤 여사(旅舍)에서 목월이 나에게 보여 준 시는「밭을 갈아 콩을 심고」
란 시였다.「장독 앞에 모란 심고 장독뒤에 더덕 심고」의 구절(句節)과「꾹
구구구 비둘기야」라는 후렴구(後斂句)는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외롭고
슬픈 내 노래의 마음을 세상에 알아주는 이가 목월이라는 처음 보는 눈이 크
고 맑은 시인 밖에 없는 상 싶어 미덥고 서럽던 생각!
목월이 출장 다닐 때 걸어가는 길가에서 들은 비둘기 울음, 혹은 살살 날리
는 어스름과 산 그늘도 그의 소개로 나는 듣고 보았다. 석굴암(石窟庵) 가던
날은 대숲에 복사꽃이 피고 진눈깨비가 뿌리는 희한(稀罕)한 날씨였다. 불국
사(佛國寺) 나무 그늘에서 나는 찬 술에 취하여 떨리는 봄옷을 외투로 덮어
주던 목월의 체온(體溫)도 새로이 생각난다.
그리하여 나는 보름 동안을 경주에서 머물었고 옥산서원(玉山書院)의 독락
당(獨樂堂)에 눕기도 하였으며「완화삼(玩花衫)」이란 졸시(拙詩)를 목월에
게 보내기도 하였다. 목월의 시「나그네」는 이 「완화삼」에 화답(和答)하여
보내준 시이다. 압운(押韻)이 없는 현대시에는 이렇게 더 절실한 심운(心韻)
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 시였다. 붓을 꺾고 떠돌며 살던 5년간은 우리는 이렇
게 편지로 서로의 마음을 하소연하며 해방(解放)을 맞았던 것이다.......
일제의 식민지 탄압이 극에 달했던 당시, 땅과 재화(財貨)는 물론 말과 글마저 빼앗긴 채 어
디를 둘러 보아도 희망이 보이지 않던 시기에 젊은 시인들의 절망은 얼마나 깊었을 것인가.
시를 쓰고 발표하는 일도 자유롭지 못했을 것이니 그들의 슬픔과 갈등은 자연히 방랑(放浪)과
향수(鄕愁)와 기다림의 정서로 기울게 되었다. 목월에게 주었던 지훈의 <완화삼(玩花衫)>을
읽어 보자.
차운 산 바위 우에 하늘은 멀어
산새가 구슬피 울음 운다
구름 흘러가는
물길은 칠백 리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
술 익는 강 마을의 저녁 노을이여
이 밤 자면 저 마을에
꽃은 지리라
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인양하여
달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가노니.....
멀어, 흘러가는, 흔들리며, 가노니 등의 용언(用言)들과, 구름, 물길, 칠백리, 나그네등의 체
언(體言)들이 시 전체를 방랑(放浪)의 이미지로 구성하고 있다. 이 시를 헌정(獻呈)받은 목월
로 하여금 화답시인 <나그네> 를 탄생시키게한 동력(動力)이 된 3연의 2구 <술 익는 강마을
의 저녁노을이여>에서는 슬픔과 한(恨)을 아름다움으로 승화(昇華)시킨 젊은 시인의 심미안
(審美眼)을 엿볼 수 있다.
불타는 듯한 저녁 노을의 시각적 색감이 불러 일으키는 열감(熱感)이 술이 잘 익어가는 후각
적 이미지와 어울리면서 한 장의 잘 찍은 강마을 저녁 풍경 사진을 보여주는 듯한 명구(名句)
라고 아니할 수 없다.
목월의 화답시 <나그네>를 보자.
강나루 건너서
밀밭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 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지훈의 <완화삼>에서 나그네는 ~ 이여, ~ 지리라, ~ 가노니 등의 종결형 어미를 사용하여 독
백(獨白)하는 듯한 표현을 썼으나, 목월의 <나그네>는 각 연(聯)이 모두 밀밭길, 나그네, 삼백
리, 저녁놀 등의 명사(名詞)로 간결하게 끝냄으로써, 마치 슬라이드 쇼를 보듯 장면이 하나 둘
넘어가는 시각적 효과가 돋보인다. 그래서 나는 목월의 이 <나그네>를 한시(漢詩)로 바꾸어 보
고 싶었다.
목월의 <나그네>는 5 연(聯)으로 이루어진 바, 마지막 연은 2연을 반복한 것이다. 즉 A-B-C-
D-B 의 구조를 이루고 있으니, 이를 어떻게 하면 4구로 이루어진 한시로 바꿀 것인가. <완화삼
>에 대해 <나그네>를 화답하였듯이, 그 이미지만을 옮겨와 새로운 한시(漢詩)를 만든다면 몰라
도, 내가 하려는 바는 우리 시를 한시로 직역(直譯) 또는 번역(飜譯)하는 작업에 가깝기 때문에,
마지막에 다시 나오는 B를 없애고 A-B-C-D 로 바꾸어 다음과 같은 7언 절구(絶句)를 만들어 보
았다.
旅人 나그네
過渡麥田江路長 강나루 건너 밀밭 길 멀리
雲中如月獨羇行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一條南道暮天畔 한 줄기 남도 길 저무는 하늘가
酒酵水村炎夕陽 술 익는 강마을에 타는 저녁놀
한 수(首)의 시가 씌여진 시대적 환경이나 사상적 배경은 그 시를 감상하는데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요소이지만, 시는 시 자체만으로서도 의미가 있어야 한다. 특히 서정시의 경우라면 후
세(後世) 사람들이 읽어도 시 자체로서의 아름다움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좋은 시는 세월과
국경이라는 시공간(時空間)을 뛰어 넘어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지훈이나 목월의 시에 나오는 <술 익는 강마을>이라는 표현에 대한 논란에 대해서 이야기하
려는 것이다. 지훈이 목월의 시집 <산도화>의 서문에서 “붓을 꺾고 떠돌며 살던 5年間은 우리
는 이렇게 편지로 서로의 마음을 하소연하며 해방을 맞았던 것이다” 라고 적고 있듯이, <완화
삼>이나 <나그네>는 1946년에 청록집에 처음으로 발표된 시이지만 실제로 씌여진 시기는 해
방 몇 해 전이다.
당시 일제의 수탈이 극에 달했던 때라 먹고 살기도 바빴던 궁핍했던 시기에 <술 익는 강마
을> 또는 <술 익는 마을마다>라는 표현은 현실과 동떨어진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라는 논란이
었다. 이에 대해 신 경림 시인은, 실제로 지훈이 살던 고향 마을을 찾아가 생가와 주위를 살펴
보면 이러한 정서가 넘쳐 흐른다고 말하였다. 이는 지훈이 경북 영양의 주실 마을이라는 비교
적 풍족한 마을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랐음을 말한 것이다.
그러나 당시의 일반적인 정서가 그렇지 못한 상태에서 그런 표현을 썼다고 해도 그게 어떤가.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아름답던 기억을 건져 올리는 것이 시인의 눈이다. 빼앗긴 들에 서서도
다시 찾아올 봄을 그려내듯이, 저녁놀이 불타는 강마을을 보며 술이 익어 가던 아름다운 시절
을 떠올리므로써 우리들에게 지워지지 않을 원형질같은 향토미(鄕土美)를 선사해 준 시인들에
게 오히려 감사해야 할 일이다.
이 글을 시작하여 써 가면서 한편으로는 자료를 계속 찾아가다가, 지훈이 어려서는 한학(漢
學)을 배웠으며, 그가 쓴 34편의 한시(漢詩)가 <유수집(流水集)>이라는 이름으로 전해지고 있
고, 그 중에 <완화삼>의 내용을 한시로 쓴 <여회(旅懷)>라는 제목의 한시가 있음을 알게 되었
다. 그 시를 보자.
旅懷 여회 완화삼
千里春光燕子歸 가이없는 봄빛속 제비들 찾고
雲心水性動柴扉 굴레 벗은 마음일래 삽짝을 여니.........구름 흘러가는 물결은 (칠백 리)
苔封路石寒山雨 이끼 낀 돌길에는 차운 뫼의 비...........차운 산 바위 우에 하늘은 멀어
酒熟江村暖夕暉 술익는 강마을엔 따뜻한 노을.............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노을이여.
客窓殘燭思今古 나그네로 촛불 앞에 옛적 헤이니
故國遺墟論是非 옛 나라 허문 터전 가슴 아프다
多恨多情仍爲病 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인양하여..........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인 양하여
惜花愛月拂征衣 지는 꽃에 달을 그려 걸친옷 터네........나그네의 긴 소매 꽃잎에 젖어
<완화삼>의 8줄 서술(敍述) 중에서 5줄에 해당하는 부분이 한시와 같거나 비슷한 이미지인
것으로 보면, 지훈은 젊은 시절부터 우리 시와 한시를 같이 써오고 있음을 추측할 수 있다. 한
시에 취미가 있는 나로서는 지훈의 한시가, 더구나 완화삼의 내용과 같은 한시가 있다는 사실
이 매우 반가웠다.
지훈의 이 한시를 보면, 근체시(近體詩) 작법에 충실한 수작(秀作)임을 알 수 있다. 3-4구 와
5-6구가 각각 대(對)를 이루어야 하는 까다로운 규칙에도 잘 맞는 기분 좋은 작품이다.
내가 이 글을 우리 시 <나그네>를 한시로 번역하다가 쓰게 된 것이니, 나는 지금 지훈이 한
시 <여회(旅懷)>를 먼저 지었을까 아니면 우리 시 <완화삼>을 먼저 지었을까 하는 점이 또한
대단히 궁금하다. 공부할 항목이 또 하나 추가되었다. 조 지훈(趙 芝薰)의 한시(漢詩) 34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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