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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漢詩)의 맛과 멋

아호(雅號)와 별호(別號)

 

 

 

 

  조선시대 신 숙주의 손자인 신 종호(申 從護)는 호(號)를 삼괴당(三魁堂)이라 하였다.

괴(魁)는 ‘우두머리’ 혹은 ‘으뜸’을 뜻하는 것이니 ‘삼괴’라 함은 세 가지의 으뜸을 이룬

일을 말한다. 성균관 진사시, 식년문과 그리고 문과중시에 6년 간격으로 모두 장원급제

함으로서 칭송이 자자하였으니 스스로 삼괴당이라는 호를 지어 자부할 만하였다.

 

 

  조선 전기 사림파 학자의 한 사람인 정 여창(鄭 汝昌)은 일두(一蠹)라는 호를 사용했다.

두(蠹)는 좀벌레를 말하는 것이니 한 마리의 좀벌레라는 뜻이다. 자신을 좀벌레라고 부

르는 겸손한 마음가짐이 엿보이기도 하고, 좀벌레가 오랜 시간을 나무나 책을 갉아먹듯

이 꾸준히 학문을 연구하겠다는 각오가 느껴지기도 하는 재미있는 아호다.

 

 

  시경(詩經)의 대아(大雅) 증민(蒸民)편에 보면,

 

 

           夙夜匪懈    숙야비해      새벽부터 밤까지 게으름없이

           以事一人    이사일인      천자 한 분 만을 섬기네

 

 

라는 구절이 나온다. 세종대왕은 그 셋째 아들 안평대군이 집을 새로 지었을 때, 게으르

지 말라는 뜻으로 비해당(匪懈堂)이라는 당호를 내려주었다. 그 집터는 지금의 종로구

옥인동 옥인아파트 자리라고 하는데, 아무튼 안평대군은 대왕의 뜻을 받들어 이를 당호

뿐 아니라 자신의 아호로 삼았다. 맏형인 병약한 태자(문종)를 다음 임금으로 잘 섬겨

왕통을 보존하라는 대왕의 속뜻이 담겨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고려 말 이 감(李 敢)이라는 분은 고려가 망하자 이를 치명사(致命事)라고 하여 이름을

이 치(李 致)라고 바꾸고 낙향하여 두문불출하고 살았다는데, 이 분은 일찍이 첨정자(添

丁子)라는 호를 사용하였다. 정(丁)은 남자를 뜻하니 첨정(添丁)은 ‘아들 낳는 일’을 말하

는 것이다. 아들 낳은 기쁨이 얼마나 컸으면 호를 첨정자라고 하였을까. 아마도 그 자신

이 8대 독자나 9대 독자쯤 되지 않았을까...

 

 

  예로부터 중국이나 우리나라 같은 유교문화권에서는 이름을 소중히 여겨 함부로 부르

지 않는 관습이 있어, 본 이름 대신에 따로 지어서 부르던 이름을 자(字)라고 하였고, 나

이 든 후에는 호(號)를 지어서 부를 때 사용하였다. 호는 스스로 짓기도 하고 혹은 다른

사람이 지어주기도 한다. 흔히, 그 사람이 거처하는 장소에서 따오거나, 그 사람이 인생

에서 지향하는 바나 원하는 바 혹은 얻은 것에서 그 의미를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

 

 

  성당(盛唐)의 시인 원 결(元 結)은

 

 

           顧吾漫浪久     고오만랑구        나는야 오랫동안 자유로운 몸

           不欲有所拘     불욕유소구        구속 받는 것을 원치 않도다

 

 

라는 자신의 시구(詩句)에서처럼 만랑수(漫浪叟)라는 아호를 지어서 사용하였다. 만랑

(漫浪)은 세상의 구속을 받지 않으며 자신이 하고 싶은대로 하면서 사는 것을 말한다.

 만랑수(漫浪叟)는 자유롭게 사는 늙은이라는 뜻이니 얼마나 로맨틱한가! 그러나 그는

53세의 생애를 살면서 지방의 관직을 전전하며 전란과 세금의 질곡에 허덕이는 민초들

의 아픔을 시로 읊었다. 세금을 줄이라는 건의로 조정 권신들의 미움을 사자 벼슬을 버

리고 은거하였으니, 그의 ‘만랑(漫浪)’은 자기 한 몸보다는 고통 받는 민초들의 자유로

움을 소망한 것에 더 무게를 두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고려의 대문호 이 규보(李 奎報)는 평생 술과 거문고와 시를 매우 좋아하였다. 그래서

 ‘세 가지를 매우 좋아한다’는 뜻의 ‘삼혹호(三酷好)선생’을 아호로 삼았다. 이는 아마도

스스로보다는 주위 사람들이 더 자주 불러준 별호(別號)가 아닐까 한다. 그는 자신이 거

문고를 잘 타지도 못하고 시를 잘 짓지도 못하고 술도 잘 마시지 못한다는 말로 한 걸음

물러서며, 대신 백운거사(白雲居士)라는 호를 또 만들어 즐겨 사용하였다.

 

 

          醉睡仙家覺後疑      취수선가각후의       선가에서 취해 자다 깨어보니 의아해

          白雲平壑月沉時      백운평학월침시       흰 구름 잠긴 골에 달 지는 새벽이라

          翛然獨出長林外      유연독출장림외       재빨리 홀로 긴 숲 밖으로 나오는데

          石逕笻音宿鳥知      석경공음숙조지       돌길에 지팡이 소리 자던 새가 알겠네

 

 

  시를 한 수 감상해보자. 이 시는 내가 참 좋아하는 시로서, 선조(宣祖) 때 영의정을 지낸

사암(思庵) 박 순(朴 淳)이 지은 ‘조처사의 산집을 방문하여/訪曺處士山居’라는 시다. 친

한 벗이 사는 산속 집을 오랜만에 방문하여 반갑게 이야기하며 술을 나누다보니 거나하게

취하여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아무렇게나 쓰러져 잠이 들었다. 선뜻한 새벽 기운에 눈을

떠보니, 여기가 어디인가?

 

 

  아! 반가움에 술이 과했나보군, 창밖을 보니 새벽 골짜기마다 그득한 안개구름 속으로

새벽달이 숨으려 하고, 벗은 아직도 곤히 자고 있으니 조용히 빠져 나가야지, 주섬주섬

챙겨서 살살 문을 밀고 긴 숲길로 나서는데, 좀 서둘렀는가, 돌길에 부딪히는 지팡이 소

리에 새벽잠 자던 새들마저 놀라 깨겠네....

 

 

  이 시의 묘미는 마지막 4구에 있다. ‘석경공음’은 우리말 발음도 새벽 숲길에 돌을 찍는

지팡이의 깡깡 울리는 소리를 연상하게 하며, ‘숙조지’에서는 (실은 친구가 깰까봐 걱정

이면서도) 자던 새를 깨울까 걱정이라는 혼잣말을 짐짓 내뱉는 노시인의 입매가 코믹하

게 떠오르지 않는가.

 

 

  술을 좋아하고 친구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이런 경험 한 두 번은 있을 것이다. 산속에 사

는 친구를 일부러 찾아갔으니 뜻이 맞는 가까운 친구일 것이고, 주위에는 맑은 숲과 바람,

맛난 술까지 있으니 취흥(醉興)은 얼마나 도도(滔滔)할 것이며, 서로의 안부는 물론 세상

사와 우주의 이치에까지 이르렀을 담론(談論)은 또 얼마나 호탕(浩蕩)할 것인가.

 

 

  새벽에 깨고 보니 아직 술기운이 좀 남아 어리둥절... 어젯밤 두 사람이 지었다 허물었다

한 세상은 기억도 아스라이 우주 속으로 흩어져갔고, 술 탓인지 명치 속도 텅 빈 듯 모든

것이 허허롭기만 하다. 친구는 아직도 곤히 자고 있으니 이럴 땐 우선 슬그머니 사라지는

것이 정답이다. 하루 이틀 지나 술 한 동이 들고 다시 찾아와 나눌 뒷이야기를 남겨야지....

 

 

  위의 시 스물여덟 글자로 이루어진 작은 사각형 속에 시트콤 드라마 1회분 정도 쯤 의 이

야기가 담겨져 있다. 1, 2구는 방안에서 벌어진 이야기와 새벽 창밖의 풍경을 그렸고, 3, 4

구는 화자(話者)가 급히 빠져 나가는 모습을 그렸다. 1, 2구의 정(靜)이 3, 4구의 동(動)으

로 이행(移行)하는 모습을 보고 역시 대시인의 솜씨로구나 하는 감탄을 하게 된다.

 

 

  이 시는 당대와 후대의 사람들에게 널리 회자(膾炙)되어, 사암(思庵) 박 순(朴 淳)은 이 시

로 인해 ‘숙조지(宿鳥知)선생’이라는 별호(別號)를 얻게 되었다.

 

 

  이와 비슷한 경우를 살펴보자면, 고려 말 행촌(杏村) 이 암(李 嵓)은 원나라에 가면서 ‘獨

鳥暮歸遼/ 독조모귀요/ 외로운 새 저물녘 요양으로 돌아가네’ 라는 시를 지어서 사람들에게

모귀요선생이라고 불렸고, 조선 초 김 반(金 泮)이라는 분은 명나라에 가서 ‘若爲燒斷尾 攀

附在天龍/ 약위소단미 반부재천룡/ 꼬리를 태워 끊는다면 위로 올라 하늘의 용 되리라’ 라

는 시를 지어서 ‘소단미선생’ 이라고 불렸으며, 역시 조선의 이 제신(李 濟臣)이라는 분은

한강 가에서 놀면서

 

 

          東西野闊稻香熟      동서야활도향숙      동서로 넓은 들에 벼 향기 무르익고

          上下江深魚老肥      상하강심어로비      깊은 강 오르내리는 물고기 살쪘네

 

 

라는 시를 지은 후로 ‘어로비선생’ 이라고 불렸다. 시도 잘 지으면 주위 사람들이 이렇게 새

이름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이름이란 참 이상하다. 선행(先行)하는 것은 존재(存在)요, 이름은 그 후에 붙인 것이련만,

우리는 대개 이름부터 보고 그 존재를 상상한다. 소설가가 등장인물의 이름부터 잘 지으려

고 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충청도 어느 해수욕장에 ‘충청집’이라는 이름의 횟집이 있었

는데 장사가 안 돼서 문을 닫으려는 것을 한 지인(知人)이 충고하여 간판을 ‘물새집’으로 바

꾸어 달았더니 갑자기 장사가 매우 잘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같은 횟집이건만 물새집이라고 하면 무언가 더 아기자기한 이야기가 깃들여 있을 것 같지

않은가. 손님이 많아지면 더 깨끗하게 꾸미려 할 것이고 서비스도 더 좋아지고 얽힌 이야기

도 더 다양해져서, 이름 그대로 물새의 꿈이 깃든 집으로 바뀔 법도 하다. 개구쟁이를 반장

으로 임명해 놓으면 당장 점잖아지는 이치와도 같은 것이겠지...

 

 

  사람이나 장소에 이름을 지어 놓으면 이름이 그 사람이나 장소를 이름답게 하는 것이니,

사람이나 집이나 이름부터 잘 지어놓고 볼 일이다. 사람의 본명은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태어날 때부터 얻는 것이지만, 아호나 별호는 성장한 후에 얻어지는 것이니 자신의 의지와

관계가 깊다. 지루하기만한 장마가 뜻밖에 매우(梅雨)라는 예쁜 이름을 가지고 있으니 재

미있지 않은가. 마음에 드는 아호 한 개쯤은 지어 얻어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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