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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漢詩)의 맛과 멋

청우 (聽雨)

오랜만에 S교수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동영상(動映像) 하나 보내신다고.

 

몇 달 전에 손수 집박(執拍)하여

제주도에서 찍은 국악 연주 영상이었다.

 

탐라풍류도ㅡ미리내라는 이름을 가진

10명으로 구성된 국악 실내악단에

피아노와 콘트라베이스도 들어가 있다.

 

이 곡의 모티브인 수제천(壽齊天)

원 곡명은 옛 백제의 정읍사(井邑詞)이다,

'어져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가 나오는.

 

연주가 진행되다가 중간에

정가(正歌국악의 성악 부분)가 나온다.

 

S 교수님은 이 연주 그룹의 리더로서

영상에서도 집박(執拍)을 맡았다.

 

집박이란, ()이라는 악기를 들고

연주의 시작과 끝을 알리며

전체적으로 연주를 지휘하는 사람을 말한다.

 

7분여의 짧은 연주이지만 들어보면

나처럼 국악을 잘 모르는 사람도

그 아름다움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오래된 인연으로 S교수님을 알지만

비교적 자주 만나던 한 때가 그리워진다.

 

20년이 넘었는지 안 넘었는지 가물가물한데

우리는 서초동의 한 음식점의 방에 모여앉아

저녁식사와 담소를 즐기며 술잔을 나누고 있었다.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풍류를 아는 식당 주인이 S교수님을 알아보고

장고(杖鼔=장구)를 가져다 주었다.

 

예술대학의 국악과 교수이시니

그 분이 가만히 계실 리가 있나.

 

불콰해진 얼굴로 장고를 잡고

굿거리 장단에 이어 세 마치 장단으로

 

창부타령과 노들강변을 이어 부르는데

우리 노래가 그리도 흥겨운 줄을 새삼 알았고

 

앙코르 몇 곡을 더 추가하여

그날을 영영 잊지못하도록 해 주었다.

 

매우 인상적인 그날 저녁의 기억은

지금도 장고소리만 들으면 퍼뜩 떠올려진다.

 

 

비가 하도 자주 오는 이번 여름

밤에 눈을 감고 잠속으로 들어가는데

 

베란다 밖으로 설치한 실외기(室外機) 위로

똑똑 또로록 계속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의

공명(共鳴)영락없이 장고 소리와 같아서

 

비몽사몽 그 옛 저녁식사 현장을

떠올리며 한껏 추억속을 헤매는데

 

갑자기 우르릉 쾅쾅쾅~!! 천둥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뜨고 휴~ 한숨을 내쉬어 본다.

 

즐거웠던 시간은 우연의 산물이다,

억지로 다시 조합한다고 올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추억 속에서 그리움만 더할 뿐이지

 

    聽雨                           청우

 

夜雨淋如杖鼓鳴     야우임여장고명  

追懷酒肆唱歌聲     추회주사창가성

打令長短興高調     타령장단흥고조

震突佳夢    진돌가몽

 

빗소리 들으며

 

밤비 소리 똑똑 또로록 장고소리 같아서

그 옛날 술자리에서 노랫가락 생각나네

노들강변 세 마치 장단 잘 넘어가다가

우르릉 쾅 천둥소리 깜짝 놀라 눈을 뜨네

 

* 淋임방울져 떨어지다, 杖鼓장고장구의 원 이름,

  追懷추회나중에 예전을 회상함,

  천둥소리,  震천둥소리 , 벼락 진,

  갑자기,  佳夢가몽좋은 꿈, 즐거운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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