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어디서? 청계천에서! 누구와? 그와 나 단 둘이!
나는 지난 2년간 어디에 있는지 모를 그를 늘 찾아 헤맸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도무지 모습을 나타내지 않아서.. 이제는 그를 찾을 수가
없으려나.. 어지간히 마음에 포기 비슷한 기분도 들었던 요즘이었는데..
드디어 만난 것입니다.
그의 이름은 '당시감상대관(唐詩鑑賞大觀)' 김원중 평석(金 元中 評釋)
1993년 도서출판 까치 발행, 칠백 페이지가 넘는 두툼한 책입니다.
자투리 시간이 날 때 즐겨하는 일이 헌책방에 들르는 일입니다. 서가에
가득한 책 제목들을 눈으로 섭렵하며 보내는 시간이 내게는 즐거운 시간
입니다. 비록 원하던 책을 발견하진 못하였더라도 그 시간을 헛되이 보냈
다는 느낌은 전혀 없습니다.
간혹은 횡재를 한 기분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신간 서점에는 없는 흥미
로운 책을 발견하고는 쑤욱 뽑아 들고 펴볼 때의 그 득의감(得意感)! 말이
헌책이지 책은 여전히 새 책이고 더구나 값마저 매우 저렴하니 그 기분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빈손으로 돌아가는 날도 많지만, 운 좋은 날은 쉽게 구할 수 없는 책
서너 권을 포장마차 소주 한잔 값도 안되는 돈으로 건질 수 있으니 그런
날은 노래라도 부르고 싶어지는 날입니다. 나의 작은 행복이지요.
2년 전에 '송시감상대관(宋詩鑑賞大觀)'이라는 책을 얻은 날도 그랬었
지요. 그 책을 읽고 저작(咀嚼)하느라고 이후 몇 달이 즐거웠건만, 그 책
보다 1년 먼저 같은 저자가 지어낸 '당시감상대관'이라는 책이 있음을 알
고 열심히 구하게 되었습니다.
교보문고에 신청을 하였으나 이미 절판이 되었다 하고, 도곡동 홍대앞
금호동 몇몇 헌책방에도 일부러 시간을 내어 들러 보았으나 찾을 수 없었
으며, 전국의 크다는 헌책서점의 홈페이지도 여러 곳을 수시로 들어가 보
았으나 있는 곳이 없었습니다.
인천의 금창동 헌책방 거리에 가면 혹시 있을까.. 청계천 헌책방에도
가보아야지.. 하다가 이번 추석 긴 연휴의 어느 아침에 홀로 청계천으로
나섰습니다.
10시가 넘었는데.. 조금 일찍 나왔나.. 열 몇 군데 서점 중 몇몇 곳이
막 문을 열고 있었습니다. 하릴없이 물가를 거닐다가 전태일 동상이 있는
곳에 이르러 사진도 찍고.. 마치 청계천을 처음 본 관광객처럼 이리저리
기웃거렸습니다.
이처럼 한가하게 빈 도심을 거니는 맛도 괜찮군..하며 돌아오는 길에
보니.. '인문서적 고서' 라고 간판을 단 상현서림이라는 곳이 문을 열고
있기에 온 김에 한 번 들어가서 보자.. 서가 앞에 딱 서는 순간 바로 눈
앞에 보이는 굵은 글씨의.. 아.. '唐詩鑑賞大觀'!
그렇게 찾던 녀석이 여기 이렇게 버티고 있을 줄이야! 먼저 뺏어갈 손
님도 없으니 나는 오~래(실제론 몇 초 안되었겠지만^^) 그 제목만 쳐다보
고 그 자리에 서 있었지요. 내 몸의 백두대간을 훑어 올라오는 어떤 짜릿
한 느낌을 즐기며....
한 번도 본적 없이 말만 듣던 친척을 만난 느낌이랄까, 집나간 애견을
어느 모퉁이에서 우연히 만난 느낌이랄까...
집으로 돌아와 가족들에게 자랑을 늘어놓은 다음 제일 먼저 한 일은,
사야할 책 목록의 당시감상대관 여섯 자의 허리로 긴 줄을 긋는 일이었습
니다. 입에도 한일자로 힘이 들어갑니다. 만남은 많을수록 좋습니다. 앞
으로도 나에게 많은 만남이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