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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漢詩)의 맛과 멋

춘 설 (春 雪)

봄인데 눈이 내렸다.


꽃샘추위로 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서

때마침 밀려온 습한 구름이 눈으로 내린 것이다.


잔디에도 나무에도 정원에도 차에도 눈이 쌓인 겨울 정취에

잠시 시간이 뒤로 물러난 듯한 착각이 인다.


뒷자취도 안보이게 이미 가버린 겨울이

좀 아쉬웠던지 주위를 잠깐 하얗게 덮었다.


그러나 경칩도 이미 지나고

춘분이 며칠 앞이라 아침 기온이 올라가면서


나뭇가지에 얼었던 눈들이 작은 얼음 알맹이가 되어

내 걸어가는 앞길에 따가따각 떨어진다.


내 머리와 어깨 위로도

녹두알만한 투명한 얼음덩어리들이

성긴 우박처럼 따각따각 떨어진다.

 

고것들을 일부러 밟으며 걷는 발밑에서 나오는 까드득 소리가

상쾌하게 가슴 속을 긁는다.

 

일렬로 늘어선 향나무들은

눈 녹은 물방울들을 똑똑 흘리고 있으니

 

겨울이 잠깐 와서 봄을 목욕 시킨 느낌.


햇빛은 이미 춘색이 완연한데

겨울 풍경으로 살짝 바뀐 주위 모습이 기분 좋게 낯설다.


나이들면서

계절의 변화에 더 민감해졌지만

이제껏 이렇게 봄 속의 ‘순간 겨울’은 처음 느껴보는 것 같다.


마음이 매우 맑아지면서..


살아있음이,

살아서 이런 광경을 느낄 수 있음이 감사하게 느껴진다.


이런 느낌을 ‘존재의 기쁨’이라고 했나.


늦가을 어느 한 때 갑자기 잠시 찾아오는

봄 같은 화창한 날씨를 인디언 썸머라고 한다는데


나는 오늘 아침 같은 순간을

‘살짝 겨울’ 아니면 ‘윈터 스프링’이라고 부르고 싶다.

 

하여, 떠오르는대로  한 수(首) 긁적여 본다.

 

      春 雪                        봄 눈


春分近到却寒來    춘분이 가까운데 추위가 찾아 와

早出路傍逢雪梅    아침 길 길섶에 설중매를 만났으니

淸節世閑今日是    맑은 계절 세상 일 한가로운 오늘사 

祐生欣喜笑如孩    살아있는 기쁨에 아이처럼 웃는다

                                                  (2010. 3.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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