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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漢詩)의 맛과 멋

음악 (音樂)

   모차르트는 1786년에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을 작곡하였는데, 그가 죽

은 다음 해에 태어난 로시니가 23세 때 스토리상으로 <피가로의 결혼>의 전

편인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를 작곡하여 발표하였다. 이 순서가 왜 뒤바

뀌게 되었을까. 


  프랑스의 보마르셰라는 극작가가 <세비야의 이발사(1775)>, <피가로의

결혼(1781)> <죄 많은 어머니(1792)>라는 희곡 3부작을 발표하였는데, 이

세 희곡은 내용이 연결되는 것으로서, 1부 <세비야의 이발사>에서는 총각

알마비바(Almaviva) 백작이 피가로의 도움으로 로지나와 결혼을 하는 내용

이고, 2부 <피가로의 결혼>에서는 피가로의 은혜를 잊은 백작이 피가로의

약혼자인 수잔나에게 눈독을 들여 그 초야권(初夜權)을 행사하려는 이야기

이다.


  이를 오페라로 제일 먼저 만들어 발표한 사람은 이탈리아의 작곡가 파이

지엘로(Giovanni Pasiello)였다. 그가 제일 처음으로 오페라 <세비야의 이

발사>를 작곡하여 1782년에 상페테르스부르크에서 초연하였고, 그로부터

4년 후에 빈에서 모차르트가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을 초연한 것이다.


   그런데 모차르트 사후 25년이 지난 1816년에 23세의 젊은 로시니가 로마

의 아르헨티나 극장에서 <세비야의 이발사>를 새로 만들어 초연하였다. 이

때 아직도 생존해 있던 76세나 된 대선배 파이지엘로의 <세비야의 이발사>

를 무시하고 새파란(?) 로시니가 새로운 <세비야의 이발사>를 상연한다고

하여, 파이지엘로의 지지자들은 극장 무대에 고양이를 풀어 놓고 소동을 벌

이며 공연을 방해하여, 로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초연은 결국 실패로 끝

났다.


   그러나 대본의 내용이 워낙 풍자적이고, 로시니 특유의 재치 있는 선율이

인기를 끌게 되어 그 후 <세비야의 이발사>는 로시니의 작품이 대표하게 된

것이다.


  내용이 연결되는 오페라들인지라 때로 좀 헷갈릴 수도 있는데, 로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에 나오는 바리톤 배역의 피가로가 부르는 ‘나는 이 거

리의 만능 일꾼’ (Largo al factotum della citta)를 들어보면, 속사포처럼

내뱉는 파를란도(parlando)창법이 재미있다.


  로시니는 <세비야의 이발사>를 3주 만에 완성하느라고 서곡을 준비하지

못해서, 넉 달 전에 나폴리에서 초연되었던 자신의 오페라 <영국여왕 엘리

자베타>의 서곡을 그대로 옮겨서 재사용했는데, 그러나 이 <영국여왕 엘리

자베타>의 서곡 또한 1813년에 초연한 자신의 오페라 <팔미라의 아우렐리

오>의 서곡을 역시 통째로 옮겨 재활용한 것이었으니, 자신의 세 오페라의

서곡이 모두 동일한 곡이 된 것이다. 다행히 이전의 두 오페라는 그 이후 잘

상연되지 않아서 별 문제는 없었던 듯하다.


  이러한 일련의 피가로 이야기들은 부조리한 귀족들의 횡포 아래서 억압

받는 서민들의 의식을 일깨워, 훗날 프랑스 혁명의 불을 지피는 불쏘시개

가 되었다. 이럴 줄도 모르고 <세비야의 이발사>희곡이 처음 나왔을 때,

프랑스 루이16세의 궁정에서는 피가로 역을 루이16세의 동생이, 로지나 역

을 그 유명한 왕비 마리 앙트와네트가 맡아서 연극을 공연했다고 하니, 이

후에 일어날 일들을 생각하면 참으로 딱한 일이다.


   사족 하나, 세월이 흘러 20세기 말에, 프랑스 보르도의 유명 와인가(家)

인 로쉴드가의 딸인 필리핀 여사는 보마르셰의 후손과 결혼을 하고, 칠레

의 와이너리 콘차이또로(Concha y Toro)와 합작으로 와인 <Almaviva>를

생산하기 시작하였다. 와인 레이블에 필기체로 쓴 ‘알마비바’라는 글씨는

일찍이 피가로와 알마비바를 창조해 낸 극작가 보마르셰의 친필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 *                * *                 * *


  음악 이야기는 항상 흥미진진하다. 요즈음은 인터넷의 발달로 모든 자료

와 음원(音源)을 접하기가 손쉬워져서, 누구나 아름다운 음악의 혜택을 골

고루 누리는 세상이 되었으니 참 고마운 일이다.


  슈베르트의 <음악에 부침, An die Musik>이라는 가곡의 가사에는 음악의

아름다움과 고마움이 잘 나타나 있다. 이 가사는 슈베르트의 친구이자 당대

의 시인이었던 프란츠 쇼버(Franz Schober)의 시이다. 말미의 한시는 쇼버

의 시를 어줍잖게 소생이 한시로 바꾸어 본 것인데 좀 무리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An die Musik


        Du holde Kunst, in wieviel grauen Stunden

        Wo mich des Lebens wilder Kreis umstrickt

        Hast du mein Herz zu warmer Lieb entzünden

        Hast mich in eine beßre Welt entrückt!


        Oft hat ein Seufzer, deiner Harf' entflossen

        Ein süßer, heiliger Akkord von dir

        Den Himmel beßrer Zeiten mir erschlossen ,

        Du holde Kunst, ich danke dir dafür!


        삶의 거친 현실이

        나를 옥죄어 힘들게 할 때,

        그대 사랑스러운 예술이여,

        그대는 내 가슴을 덥혀주고

        더 좋은 세상으로 인도하였네


        가끔은 그대의 하프에서

        한숨이 흐르기도 하지만

        달콤하고 신성한 그대의 화음은

        내게 천국을 열어 주었으니

        아, 사랑스런 예술이여

        그대에게 감사하노라.



           音樂頌                  음악이여


       世事縈紆難解繩        세상 일 얼크러져 풀기가 어려워

       煩愁暗暗欲塡膺        걱정거리 남몰래 가슴에 스밀 때

       雅君施展緩旋律        그대는 부드러운 선율을 베풀어

       落膽心中張愛燈        어두운 마음에 사랑의 불을 밝히네


       時有咨嗟一曲琴        때로는 그 소리에 한숨도 섞이지만

       溫柔神聖子和音        부드럽고 신성한 그대의 화음은

       向人聽輒開天國        때마다 우리에게 천국을 열어주니

       獻上吾懷感謝心        가슴 속 감사함을 그대에게 바치리



      *  縈紆영우...얽힘, 휘감김, 縈얽힐 영, 紆굽을 우,

         難解繩난해승...엉킨 실을 풀기 어렵다, 解풀 해, 繩노끈 승

         煩愁번수...마음을 괴롭히는 근심,

         欲塡膺욕전응...가슴을 채우려하다, 塡채울 전, 膺가슴 응,

         雅君아군...그대, 여기서는 음악을 우아하게 이르는 말,

         施展시전...펼치어 베풀다. 緩旋律완선율...부드러운 멜러디

         張愛燈장애등...사랑의 불을 켜다, 張燈장등...등불을 켜다

     

      * 咨嗟자차...한숨 쉬며 한탄함, 聽輒청첩...들을 때마다,

         輒번번이 첩, 때마다 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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