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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漢詩)의 맛과 멋

모란 (牧丹)


  일본의 시마네(島根)현에 다녀왔다. 마쓰에(松江)시의 외곽에 유시엔(由志園)

이라는 정원을 구경하러 갔다가 나로서는 괄목(刮目)할만한 경험을 하였다. 상

강(霜降)도 지나서 활짝 핀 모란꽃을 본 것이다. 순백색, 붉은색, 분홍색, 자주색,

각가지 색의 모란꽃들이 이 깊은 가을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여기서는 일 년 내내 모란꽃을 볼 수 있다고 설명해 놓았는데, 실내(室內)이기

는 하지만 특별한 온실 장치도 아니고 문을 열어 놓아 휑하니 바깥 공기와 통하는

곳에, 봄에 피었다가 가을에 지는 모란꽃을 어떻게 그렇게 흐드러지게 피워 놓았

는지, 무슨 특별한 비결이 있을 것 같았다.


   활짝 핀 꽃송이를 만져보면서, 내가 이제까지 모란꽃을 실제로 이렇게 본 적이

있었나를 생각해 봐도 도통 기억이 나지 않으니, 아마도 내가 모란꽃의 실물을 처

음 본 것이라고 생각이 되어 그 감동이 컸었다. 평소에 친구와 둘이 모란꽃에 관한

한시(漢詩) 명편(名篇)들과 그것에 얽힌 이야기들을 주고받던 시간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중국 당(唐)나라의 태평 시절, 문화가 발달하고 사치도 극에 달했던 때, 사람들의

취미 중에서 모란꽃을 키우고 자랑하고 거래하는 일들이 성행(盛行)하였다. 정월

대보름의 등불 축제 기간엔 밤이면 모두들 성장(盛粧)을 하고 등불을 들고 밤새 장

안(長安)의 거리를 거닐며 놀고 들어간 후 새벽에 빈 거리를 걸어보면 떨어진 금붙

이가 수두룩했다고 하니, 당시의 모란꽃에 대한 호사(好事) 취미도 미루어 짐작할

만하다.


  “당시 장안의 모란꽃이 피는 시기는 음력 3월 15일을 기점으로 전후 약 20일 간이

다. 꽃이 피고 지는 20일간 온 성의 사람들은 미친 듯했으며, 도성의 대로마다 수많

은 말과 수레가 모란을 보러 간다. 으뜸으로 평가되는 모란은 한 포기에 중농(中農)

열 집의 세금에 해당되는 돈으로 사고팔았다.” 일본의 작가 이시다 미키노스케(石田

幹之助)가 지은 <장안의 봄>이라는 책에 나오는 구절이다.


   다시 유시엔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눈앞에 있던 모란꽃들의 직경은 약 15cm에 달

하고, 하늘거리는 아름다운 꽃잎들을 보면서 저절로 선녀의 옷자락이 바로 이럴 것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라의 선덕여왕은 당태종이 보낸 모란꽃의 자수(刺繡) 그림

을 보고 ‘벌 나비가 따르지 않으니 모란은 향기가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지만 실제

로 맡아보니 은은하고 점잖은 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후 잊어버리기 전에 실제로 본 모란꽃을 한시로 적어보면서, 앞으로

는 조금 부지런을 떨어서 국내의 모란들도 구경하러 다녀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

다.


        牡丹                모란


日本松江由志園 (일본송강유지원)

牡丹霜降綻花繁 (모란상강탄화번)

何偸造物開花訣 (하투조물개화결)

賞客歎聲不止喧 (상객탄성부지훤)


일본 마쓰에시 유시엔 정원에

상강에 모란꽃이 활짝 피었네

조물주의 비결을 어찌 알아내었나

보는 이들 탄성 소리 크기도 하다


純白眞紅與淡紅 (순백진홍여담홍)

芳姿豊滿艶於虹 (방자풍만염어홍)

目前仙女自天降 (목전선녀자천강)

身必巫山歡夢中 (신필무산환몽중)


흰 모란 붉은 모란 분홍색 모란

풍만한 그 자태 무지개보다 곱네

선녀들이 눈앞에 내려왔으니

나는 지금 무산꿈을 꾸고 있구나

                   (2017. 10. 30)


* 牡丹모란, 혹은 목단, 霜降상강, 금년은 10월23일이 상강,

   綻터질 탄, (꽃이)피다, 繁번화할 번, 많을 번,

* 何偸하투...어찌 훔쳤나, 偸훔칠 투, 造物조물...조물주,

    開花訣개화결...꽃 피우는 비결, 訣비결 결, 喧시끄러울 훤,

* 芳姿방자...향그런 자태, 艶於虹염어홍...무지개보다 곱다,

   艶고울 염, 於어...~보다, 虹무지개 홍,

* 巫山仙女무산선녀...중국 전설의 매우 예쁘고 아름다운 선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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