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당(爲堂) 정인보(鄭寅普) 선생에게는 어머니가 두 분 계셨다. 아들이 없는 큰댁에
양자(養子)로 간 후, 두 분에게서 극진한 사랑을 받고 자란 선생은 젊은 나이에 생모와
양모를 차례로 여의고 36세가 된 1926년에 어머니를 생각하는 사모곡인 <자모사(慈母
思)>를 제목으로 우리 시조 연작 40수를 지었다.
다소 편수(篇數)가 많아 보이는 시조들을 찬찬히 읽어 보면, 한 수 한 수가 어찌 그리
도 읽는 사람의 마음을 찌르는지 탄식(歎息)을 금할 수 없다. 그는 조선 명종(明宗) 때의
대제학 정유길(鄭惟吉)의 후손다운 문재(文才)를 타고나기도 했지만, 어머니를 그리워
하는 마음을 시조에 담아내다 보니 무려 그 수가 40에 이를 정도로 깊고 살가운 마음을
소유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가까이 곁에 가면 말로 못할 무슨 냄새
마시어 배부른 듯 몸에 품어 봄이 온 듯
코끝에 하마 남은가 때때 맡아 봅니다 (제 27수)
아기에게 젖을 적신 천 냄새를 맡게 하면 어머니를 떠올린다고 한다. 인간의 오감(五
感) 중에서 제일 둔한 것이 후각이라지만, 사람이 사람을 기억하는 데 있어서는 이 후각
이 제일 오랫동안 작용을 한다고 한다. 나를 키워준 젖 냄새이고 내가 부비던 살 냄새이
니 평생 잊지 못하겠지. 나는 아직도 다섯 살 때의 겨울 온돌방에서 뜨개질하시던 어머니
곁으로 당겨 앉으며 나누던 대화 몇 마디까지도 생각이 나는 것 같다.
안방에 불 비치면 하마 님이 계시온 듯
닫힌 창 바삐 열고 몇 번이나 울었던고
산 속에 추위 이르니 님을 어이 하올고 (제 16수)
어머니를 산 속에 장사지내고 나서 시인은 한 달 여를 정신이 나간 듯 헤매었다고 했
다(제 15수). 또한 내가 분명히 여기 있으니 어머니도 계실 것 같은 착각 속에 네 해를 보
냈다고 했다(제 28수). 집에 들어올 때도 어머니가 혹시 계신가 서둘러 중문(中門) 턱을
넘었고(제 10수) 안방에 불이 밝아 어머니? 하면서 문을 열어 보고 수없이 울었다는 제
16수.
6년 전 늦은 가을, 나의 어머니도 나를 떠나셨다. 미국에 오래 사시던 어머니가 병환
이 위중하여 나는 어머니의 병상으로 급히 가서 떠나시는 어머니를 눈물 속에 보내드렸
다. 그 해 겨울 어머니 사시던 미국 뉴저지에는 유난히 춥고 눈도 많아 독감으로 사람들
이 죽어갔다. TV 뉴스에서 미국 소식을 듣던 나는 찰나 오래된 버릇대로 어머니 걱정을
하려다가 그만 아! 하며 눈을 감아버렸다.
위의 제 16수를 읽으니, 어머니가 누워계신 차가운 묘지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던 그
때가 떠올라 다시 눈시울을 적신다. 내 마음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이 시조가 마음에서
떠나지 않아서 여러 번을 고쳐 읽다가 한시(漢詩)로 다시 써본다.
內室燈明疑母在 내실등명의모재 안방에 불이 밝아 어머니 혹시 계신가
遑開無影淚垂多 황개무영루수다 급히 문을 열어보고 얼마나 울었던가
秋深木落山孤寂 추심목락산고적 가을 깊어 낙엽지고 산은 고적한데
泣慮墳寒奈妣何 읍려분한내비하 차가운 땅에 계신 어머니를 어이할고
(2018. 6,4.)
* 內室내실...안방, 疑의심할 의, 遑開황개...다급히 열다, 遑다급할 황, 泣慮읍려...흐느
끼며 걱정하다, 墳寒분한...묘지가 차갑다, 奈妣何내비하...돌아가신 어머니를 어이할까,
妣돌아가신 어머니 비, 奈何내하...어이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