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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漢詩)의 맛과 멋

행복 (幸福)

  밤새 봄비가 내리더니 차 유리창에 예쁜 벚꽃 송이가 내려와 붙었다.

쓸어버리지 않고 며칠간 운전하며 벚꽃과 함께 다녔다. 요염한 흰 꽃잎

에 앙증맞은 수술과 암술이 바람에 찌리릿 흔들린다.


  FM 라디오에선 내가 방금 신청한 곡이 대뜸 나온다. Largo al facto-

tum della citta! 나는 이 거리의 만능 일꾼이라는 피가로의 속사포 파를

란도(parlando)에 내 마음도 덩달아 들뜬다. 이어지는 쇼스타코비치의

왈츠, 춘수(春愁)가 느껴지는 이 곡도 이 봄에 어울리는 선택이다.


  집에는, 그동안 마시지 않고 받는 대로 모아둔 차(茶)가 적잖이 쌓였다.

스리랑카의 세코 티, 다르질링의 Famous Tear, 하루이찌방(春一番), 하

늘거리는 차 연기 위로 노란 저녁 빛이 따사로우니 공연히 마음이 여유로

워진다.


  아파트 창으론 까마귀 소리가 크게 들려온다. 까치와 달리 양발을 엇

갈려 디디며 엇박자로 뛰어가는 까마귀, 나는 까마귀 소리가 좋다.


  나의 하루 중에 제일 몰두하는 시간은 시구(詩句)를 찾는 시간이다. 송

나라의 구양수(歐陽脩)는 시가 제일 잘 써지는 장소를 마상(馬上), 침상

(枕上), 측상(廁上)이라 했는데, 밤에 침대에 올라 노란 불을 켜고 베개 

높이 기대고 시구를 찾는 시간이야말로 나의 사랑하는 시간이다.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는 일상에서 느끼는 소소하지만 

실한 행복을 일컬어 ‘소확행(小確幸)’이라 했는데, 한 마디로 행복은 크

기가 아니라 빈도(頻度)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사람들은 불행보다는 행복에 적응이 빠르

고 이후의 초기화 또한 빨라서, 큰 행복 한 번보다도 작은 행복을 여러 번 

는 것이 더 행복하다고 한다.


  취직도 어렵고 경기도 바닥인데 화려하고 멋진 삶을 고통스럽게 추구하

보다는 일상적인 작은 행복을 두루 찾아보자는 것이다. 요즘 새로 나온 

트렌드 같지만 사실은 늘 있어 온 일이다.


  내가 먹고 남은 씨를 심었던 태국 귤나무는 벌써 키가 나만큼 자라, 내 

락만큼 굵어진 밑동을 두드리면 고수(鼓手)가 북각을 두드리는 소리

가 난다. 자칫하면 세상에 없었을 생명이니 이 또한 행복하지 않은가!



     幸福                행복


福祥欲得不須爭    (복상욕득불수쟁)

微事周圍却有情    (미사주위각유정)

橘木窓邊春氣暖    (귤목창변춘기난)

茶煙卓上夕暉明    (다연탁상석휘명)

愛詩覓句花間酌    (애시멱구화간작)

探鳥聽音樹裡行    (탐조청음수리행)

幸福本無關大小    (행복본무관대소)

頻逢小幸愈心平    (빈봉소행유심평)


행복을 얻으려고 다툴 필요 없으리니

주위의 작은 일에 오히려 정이 가네

창가의 귤나무에 봄빛이 따뜻하고

탁자 위 차 연기에 저녁 빛이 밝구나

시가 좋아 글귀 찾아 꽃 보며 술 따르고

새 소리 들으려고 숲속을 걸어보네

행복이란 본래부터 크고 작음 상관없어

작은 행복 많은 것이 더욱 행복하도다


* 福祥복상... 복, 행복, 不須爭불수쟁...다툴 필요 없다,

  却오히려 각, 夕暉석휘...저녁 빛, 覓句멱구...시구를 찾다,

  覓찾을 멱, 頻逢빈봉.,..자주 만나다, 愈心平유심평... 마음이

  더욱 평화롭다. 愈더욱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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