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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漢詩)의 맛과 멋

김정희 (金正喜)

   ‘붓글씨’라고 하면 우선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가 떠오른다. ‘추사체’라고 불리는 서체를 

창안해 냈을 만큼 그의 붓글씨는 우리나라에서 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서도 매우 유명하다. 

붓글씨는 동양 삼국의 문화유산이니 추사야말로 세계적인 서예의 대가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추사는 단순히 붓글씨의 대가일 뿐만이 아니라, 19세기 청조학(淸朝學) 연구의 거두

(巨頭)로서 경학(經學), 금석학(金石學) 고증학(考證學)에 있어서도 당대 최고의 석학이었다. 

소위 문사철(文史哲) 시서화(詩書畵)를 아우르는 학예사(學藝史)의 흐름에서 19세기 전반에 

동아시아에서 가장 우뚝 솟은 거봉(巨峰)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추사는 실제로 저술하기를 좋아하지 않아서 젊은 시절에 엮어놓은 것들을 두 차례에 

걸쳐 태워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현재 전해지는 <완당선생전집>에 논문다운 논문보다는 시나 

서신(書信)등의 잡저가 많다. 아직까지도 세상에 드러나지 않고 묻혀 있는 추사의 작품이 국내와 

외국에 몇 백 편이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나마 추사의 작품과 유물들이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

진 데는 놀랍게도 일본인 학자인 후지츠카 지카시(藤塚鄰)의 공이 크다.


   북경에서의 교편에 이어, 1926년 경성제국대학에 중국철학과 교수로 부임한 후지츠카 지카시

는, 조선의 학자 박제가(朴齊家)가 북경의 학계에서 한류 열풍을 일으켰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

고 박제가의 제자로서 ‘조선 500년 역사에서 보기 드문 영물(英物)’ 추사 김정희가 청나라의 옹방

강과 완원을 비롯한 명현들과 교류함으로써 조선의 학계가 실사구시의 학문에로 빠른 진전을 보

인 일을 파악하고는 추사에 관한 자료를 열성적으로 모으기 시작하였다.


   그가 북경과 서울에서 열심히 수집한 추사의 진적(眞迹) 중에는 <세한도(歲寒圖)>도 들어 있

었다. <세한도>는 고미술품 소장가였던 손재형이 일본으로 건너가 후지츠카 지카시에게 애써 공

을 들인 끝에 대가없이 돌려받아 광복 전에 고국의 품으로 돌아왔고, 현재 국보 180호로 지정되어 

다.


   후지즈카 지카시의 의 아들인 후지즈카 아키나오(藤塚明直) 역시 선친의 영향으로 추사의 연구

에 매진하여 세계적인 추사 전문가가 되었고, 2006년에는 부친의 유언에 따라 과천시에 추사의 간

찰(簡札)과 유물 등 2,700점과 연구비로 200만 엔을 기증하였고, 그 결과 과천시는 이를 토대로 추

사박물관을 개관하였다. 그 뿐이 아니라 후지즈카 아키나오는 ‘사후에 모든 추사의 자료를 한국에 

넘기겠다’고 약속함에 따라 지금까지 모두 일만 점이 넘는 진적과 유물이 기증되어 건너왔다고 한

다.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두 사람의 일본인 부자(父子)가 대를 이어 일생을 바쳐 해 낸 것이

다. 더구나 넉넉지 못하게 살면서도 현실적인 금전 가치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한 귀중한 자료

들을 잘 보관하고 연구하여 우리나라에 기증한 그 선의(善意) 앞에 고개가 숙여진다.



         金正喜                                        김정희


    燕行弱冠師翁阮    연행약관사옹완     약관에 연행하여 사-옹 스승 모시고

    硏究淸朝稍不休    연구청조초불휴     청조학 연구를 쉬지 않고 이어 갔네

    實事緣源求是學    실사연원구시학     사실을 바탕으로 진리를 탐구하여

    碑文考證作龍頭    비문고증작용두     비석학과 고증학의 우두머리 되었네


    磨穿十硏禿千筆    마천십연독천필     “갈아 버린 열 벼루에 몽당 붓 천 자루”

    書藝畢生全力傾    서예필생전력경     서예에 일생동안 온 힘을 기울이니

    大靜北靑風雪裏    대정북청풍설리     대정과 북청의 풍설 속에 살면서도

    有終秋史體完成    유종추사체완성     끝끝내 붓글씨 추사체를 완성했네


    天才酷秀當多敵    천재혹수당다적     천재 하도 뛰어나니 적도 많아서

    絶險流刑至十年    절험유형지십년     험한 곳 유형살이 십년을 보냈으나

    却做工夫尤猛進    각주공부우맹진     오히려 더욱 더 용맹정진 공부하여

    名文書畵寶財傳    명문서화보재전     훌륭한 글, 글씨, 그림 보물로 전하네


    濟州海際圍籬屋    제주해제위리옥     제주의 바닷가 위리 안치된 집에서

    接報妻亡泣賦詩    접보처망읍부시     부인 죽은 소식 듣고 울면서 시를 썼네

    來世夫妻爲易地    내세부처위역지     “다음 세상 부부 역할 반대로 태어나

    使君知我此心悲    사군지아차심비     내가 죽고 그대 살아 이 내 슬픔 알도록”


  * 燕行연행...연경(북경)에 감, 弱冠약관...20세, 師翁阮사옹완...옹방강과 완원에게

    배우다. 稍不休초불휴...잠시도 쉬지 않다, 稍조금 초, 잠깐 초,

    磨穿十硏禿千筆...갈아서 뚫은 벼루가 열, 써서 닳은 붓이 천 자루,

    大靜...유배지 제주 대정읍, 北靑...유배지 북청, 酷秀혹수...대단히 뛰어나다,

    海際해제...바닷가, 泣흐느낄 읍, 賦詩부시...시를 짓다,

    來世夫妻爲易地 使君知我此心悲...추사가 지은 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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