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여, 때가 왔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길었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얹으십시오.
들에다 많은 바람을 놓으십시오.
마지막 과실들을 익게 하시고
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주시어
그들을 완성시켜, 마지막 단 맛이
짙은 포도주 속에 스미게 하십시오.
- 릴케, <가을날> (부분)
1875년 프라하에서 태어난 릴케의 이름은 르네 마리아 릴케였다.
첫 딸을 잃은 어머니는 그에게 이런 여성적인 이름을 지어주고, 여자
옷을 입히고 소꿉장난을 하게 하였다. 이것이 릴케의 마음에 상처가
되었겠지만, 22살이 된 릴케는 14살 연상의 연인 루 살로메를 만나
그녀의 충고대로 프랑스식의 여성적인 이름 ‘르네’를 독일식의 남성
적인 이름 ‘라이너’로 바꾼다.
살로메의 지적(知的)인 매력에 푹 빠진 릴케는 그녀와 함께 한 러
시아 여행에서 그녀의 소개로 알게 된 푸쉬킨이나 톨스토이와도 교
감하며 마음껏 문학과 지식의 세계를 넓혀나간다. 하지만 2년쯤 후에
둘은 헤어지게 되고, 이어 로댕의 제자와 결혼하고 아이를 둔 릴케는
출판사의 의뢰를 받아 파리로 가서 로댕을 만나 그의 전기<로댕론>
을 쓴 후, 로댕의 비서가 되어 생활하며 소설 <말테의 수기>를 집필
한다.
이후 이탈리아의 아드리아 해변의 두이노 성에 머물며 역작 장편시
<두이노의 비가>를 집필하기 시작하고, 1차 대전 후에는 스위스에
갔다가 뮈조성(城)에 그대로 정착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두이노의
비가>를 완성한다.
뮈조성은 바닷가에 지어진 13세기의 저택이었다. 이곳에서 릴케는
끊임없이 솟아나는 시상으로 계속 작품을 쓴다. 이때 얻어진 <오르페
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 55편은 장편시 <두이노의 비가>와 더불어
릴케 문학의 걸작품이 되었다.
그런 릴케에게 죽음이 너무 일찍 찾아온다. 그 죽음에 대해 흔히 릴
케가 사랑하는 여인에게 정원의 장미꽃을 따서 주다가 가시에 찔려 사
망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지만, 그전에 이미 그는 백혈병을 앓고 있
었고, 그로 인해 장미 가시에 찔린 상처가 덧나서 두 달 후에 51세의
삶을 마감한다.
그가 미리 써놨던 자신의 묘비명(墓碑銘)은 “오 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 기쁨이여, 그 많은 눈꺼풀 아래서 그 누구의 잠도 아닌 잠이
여”였다.
Die Rose hier, die gelbe, 여기 이 장미, 노란 장미를
gab gestern mir der Knab, 어제 그 소년이 내게 주었지,
heute trag ich sie, dieselbe, 오늘 나는 그 장미를 들고
hin auf sein friches Grab. 파릇한 그의 무덤으로 간다.
An ihren Blättern lehnen 그 꽃잎들 위엔 아직도
noch lichte Tröphchen,-schau! 반짝이는 아름다운 방울들,
Nur heute sind es Tränen,- 오늘, 눈물인 이것들이
und gestern war es Tau ... 어제는 반짝이는 이슬이더니...
20대 초반에 낸 그의 <첫 시집, Die Erste Gedichte >에 있는
<노란 장미>라는 시를 한시로 바꾸어 보았다. 느낌이 많이 다른 것
같다.
薔薇一朶黃 장미일타황 노란 장미 한 송이를
投我昨孩郞 투아작해랑 소년이 어제 내게 주었지,
可惜其花執 가석기화집 슬퍼라, 그 꽃을 들고
渠眠向綠邙 거면향록망 그가 잠든 묘지로 가네
薔薇墓下加 장미묘하가 장미를 묘비 아래 놓으니
滴滴閃晴霞 적적섬청하 방울져 밝게 빛나는 것들,
昨露凝黃瓣 작로응황판 어제는 꽃잎의 이슬이더니
今零淚點花 금령루점화 오늘은 떨어져 맺힌 눈물.
* 朶가지 타, 꽃이 달린 가지, 投던질 투, 줄 투,
孩郞해랑...어린 남자, 소년, 渠그 사람 거,
綠邙녹망... 파릇한 무덤, 邙망...산 이름 망, 묘지가 있는 땅,
滴滴적적... 방울방울, 閃빛날 섬, 晴霞청하...맑은 기운,
黃瓣황판...노란 꽃잎, 꽃잎 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