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꿈속에서
한시(漢詩)를 짓고 있었다.
끓인 죽(湯粥)과 찬 물(冷水)로
대구(對句)를 짓는 꿈이었다.
여러 해 전에 꿈속에서
한시 짓는 꿈을 꾸고서
꿈속에서 한시를 짓는
선인(先人)들의 이야기가
거짓이 아님을 알고 신기했었는데
오늘 또 다시 그런
꿈을 꾸고 자리에서 일어나
빙긋 웃음 지으며
급기야는 자전(字典)을 펴고
끓인 죽과 찬 물의
평측(平仄)을 확인하며
어렵사리 대구를 완성하였다.
蔬糜充餓腹 (소미충아복)
澗水淨渾神 (간수정혼신)
나물 죽 한 그릇에 주린 배를 채우고
석간수 한 모금에 흐린 정신 맑아지네...
산 속에 초옥(草屋)을 짓고
홀로 소박한 삶을 사는 사람들.
그런 TV 프로그램을 즐겨 보다보니
그런 꿈을 꾸게 되었나,
한 세상 무난히 살아내는 것이
누구에게나 쉬운 일은 아닌 듯
병(病)으로, 실패로, 갈등으로
어긋나 버린 사연들도 많지만
월든(Walden) 숲 속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Thoreau)와
비교하긴 어렵다고 해도
아무도 없는 산 속,
나름대로 외로움을 이기며
허허롭고 건강하게
남은 시간을 살아가는
모습들이 안쓰럽고
또 한 편으로는
대견하기도 하다.
山居 산거
鳥聲甘夢起 조성감몽기
窓外曉光新 창외효광신
往嶺樵薪子 왕령초신자
臨溪浣繲人 임계완해인
蔬糜充餓腹 소미충아복
澗水淨渾神 간수정혼신
夕景望西坐 석경망서좌
胸無一點塵 흉무일점진
산에 살며
새소리 들으며 단잠에서 깨어나니
창밖의 새벽빛은 오늘도 새롭구나
고갯마루 넘어서 땔나무를 해 오고
냇가에 나가서 헌 옷을 빨아 오네
나물 죽 한 그릇 주린 배를 채워주고
석간수 한 잔에 흐린 정신 맑아지네
저녁볕을 쬐면서 서쪽으로 앉아보면
가슴 속에 세속 먼지 한 톨도 없구나
* 往갈 왕, 嶺고개 령, 樵나무할 초, 薪땔나무 신,
浣빨래할 완, 繲헌 옷 해, 蔬채소 소, 糜죽 미,
餓주릴 아, 腹배 복, 澗산골물 간, 渾흐릴 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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