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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漢詩)의 맛과 멋

봄밤(春夜)

아침 출근길에 보니

양지쪽의 목련 꽃송이들이

 

이제 막

하얗게 피어나기 시작한다.

 

다음 주쯤 되려나

화려한 봄꽃들의 시즌 오픈이

 

세월은 하 수상하건만

자연의 순리는 정확히 돌아오느니

 

머잖아

훈훈한 봄밤들이 이어지겠지

 

어느 책에 보니

<춘야음(春夜飮)>이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5언 절구(絶句)가 쓰여 있다.

 

春夜遇知音   춘야우지음   

銜杯語笑笑   함배어소소   

酒婦晨欲眠   주부신욕면   

昨月照歸路   작월조귀로   

 

봄 밤에 친구를 만나

술 마시고 이야기하며 즐겁게 웃었다

술집 주모는 새벽잠이 와서 졸고

집으로 오는 길을 어제 달이 비추는구나

 

()자는 재갈또는

입에 물다라는 뜻이니

銜杯(함배)술을 마시다라는 뜻이다.

 

5언 절구는 2구 끝자와

4구 끝자만 운()을 맞추는 법이니

 

드물게도 측성(높은 소리)으로

웃을 소()와 길 로()자를 운자로 썼다.

 

중국 발음으로 소()는 쌰오(xiao)

()는 루(lu)가 되니까

 

이 두 글자를 함께

운자로는 쓸 수가 없다.

 

그러나 이 시가 그려진

정경(情景)이 재미있고

작가의 재능이 돋보여서

 

나머지 여기저기 좀

틀린 부분들을 다 고쳐서

 

작법에 딱 들어맞는

근체시 오언절구를 만들어 보았다.

 

가급적 작가의 의도를

그대로 살리려고

운자도 드물지만 측성운을 써서.

 

春夜遇知音    춘야우지음   

銜杯歡笑嗑    함배환소합   

斜窓昨月窺    사창작월규   

酒母垂頭瞌    주모수두갑   

 

봄 밤에 마음 맞는 친구를 만나

술마시고 수다 떨며 즐겁게 웃었네

비낀 창엔 어제 그 달이 와서 엿보는데

주모는 꾸벅꾸벅 졸고 있구나

 

* 知音지음뜻이 맞는 친한 친구,  歡기쁠 환,  嗑말 많을 합,

  窺엿볼 규,  垂頭수두머리를 늘어뜨리고, 여기서는 꾸벅꾸벅,

  瞌졸 갑,  (嗑합 과 瞌갑은 같은 合韻目합운목에 속함)

 

여기까지의 글을

친구들에게 보냈더니

 

그 중 한 분이

다시 이 시의 운자(韻字)

 

작가들이 늘 하는대로

평성운을 써서

다음과 같이 새로 지어 보냈다.

 

春宵遭故友    춘소조고우   

談笑數傾卮    담소삭경치   

酒母垂頭睡    주모수두수   

斜窓昨月窺    사창작월규   

 

봄 밤에 오랜 옛 친구를 만나

담소하며 함께 술잔을 기울였네

주모는 꾸벅꾸벅 졸고 있고

비낀 창에 어제 달이 와서 엿보네

 

* 遭만날 조,  故友고우오랜 벗,  數자주 삭,  傾기울일 경,  

  卮술잔 치,  數傾卮삭경치연방 술잔을 기울이며,

  睡잘 수, 졸 수,  窺엿볼 규.

 

 

누구나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반듯한 시가 되었다.

 

원시(元詩)는 작가가

18년 전에 지은 작품으로서

 

누구신지 모르는 그 분은

18년 후에 나와 내 친구가

 

자신의 이 시를

이렇게 첨삭(添削)하여

다듬고 감상한 줄을 모르실 것이다.

 

지금쯤 그 분의 시도

많은 발전을 하였겠구나

하면서 미소를 지어 본다.

 

다음 주에 친구들과

() 이야기를 하며

잔을 기울일 약속이 있는데

 

날씨가 더 풀려

봄밤의 정취를 느낄 수 있을지

 

* 添削(첨삭)…글이나 시의 내용 일부를 덧붙이거나

             삭제하여 고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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