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있자… 내가 지금 몇 살이지?
서른 다섯인가 여섯인가,
올해가 몇 년이니까, 출생한 해를 빼면…
아, 서른 일곱이구나!
내게도 이러던 때가 있었다.
내 나이가 몇이라도 상관 없고
더 먹어도 좋고 덜 먹어도 좋고..
늘 사지(四肢)와 몸에 힘이 있어
무엇도 두렵지 않고,
밤늦게까지 자주 일해도
아무렇지도 않던 그런 때가 있었다.
그런데 요즈음은 거의
나이를 머리에 떠올리며 살고 있다.
일주일이 왜 이리 빠르게 가는지
주말이라고 아내와 밖에서 식사한 것이
꼭 그저께 같은데 내일이 또 토요일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 모두
속으로만 생각하고 아내와만 토로한다.
말해봤자 젊은 사람들이
제일 식상(食傷)해 하는 이야기일 뿐,
나 역시 그땐 그랬으니까..
그런데 나만 그런 것이 아닌가보다.
경주에 내려가 사는 벗이 글을 보내왔다.
鬱寂 (울적)
세월은 흘러가도 아직 할 일은 남아 있는데
몸은 약해져 마음을 못 따라가니 어이할꼬
창 밖의 매화는 봄마다 새 꽃을 잘도 피우니
해마다 점점 노쇠해가는 나 여기 탄식하노라
기-승-전-결이 잘 이루어져 있어
한시(漢詩)로 바꾸어 보내드렸다.
春愁 봄 수심
奔流日月事猶餘 분류일월사유여
心綠耆身弱不舒 심록기신약불서
歲歲春梅新萼綻 세세춘매신악탄
咨嗟羨爾坐窓虛 자차선이좌창허
세월은 빨리 흐르고 할 일은 남았는데
마음은 푸르건만 몸은 늙어 약해지네
봄이면 해마다 새 꽃을 피우는 매화야
허전한 창가에서 너 부러워 탄식하노라
* 奔달릴 분, 耆늙을 기, 늙은이 기, 舒펼 서, 편안할 서,
新萼신악…새 꽃받침, 새 꽃, 綻터질 탄, 꽃필 탄,
咨嗟자차…탄식하는 소리, 羨부러워할 선, 爾너 이.
이번엔 시장 보궐 선거가 있던 날,
또 다른 벗이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새벽에 투표를 하고
그 너저분한 생각들 떨쳐 버리려
강변에 산책을 나오니
복사꽃이 화사하게 만개하여
그 아름답고 센슈얼한 모습에
감탄 또 감탄을 하면서도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곧 떨어질 꽃들과 사라질 봄을 생각하니
마음속에 수심이 깃든다.
살아온 날, 기억나는 일이 많으니
남은 날은 그 얼마인가…“
이것이 바로 ‘춘수(春愁)’다.
옛 시인들은 왜
아름답기만한 봄 경치에
근심 수(愁)가 붙였을까 했었는데
봄 경치를 보는 것만으로
수심(愁心)을 느끼던 그 연유를
이제사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春愁 춘수
不識人間多雜事 불식인간다잡사
桃花艶冶漢江邊 도화염야한강변
哀嗟未幾韶華盡 애차미기소화진
似老愁身獨自憐 사노수신독자련
봄 시름
인간 세상 잡다한 일 모르는듯이
한강 변에 복사꽃은 예쁘게 피었네
머잖아 사라져 갈 아름다운 봄이여
나도 너와 같은가 홀로 서글프다네
* 艶冶염야…아름답고 매혹적인 모습,
哀嗟애차…애닯아 탄식하다, 未幾미기…얼마 안가서,
韶華소화…봄의 화창한 경치, (사람의)젊은 모습,
似같을 사, 憐불쌍히 여길 련.
이렇게 번역해서 올렸더니
이 시(詩)를 보고 또 다른 벗이
시(詩)중에 들어 있는
‘소화(韶華)’라는 말을 좋아한다며,
제목도 같은 ‘춘수(春愁)’로 하고
운자(韻字)도 내가 사용한 선운(先韻)을 써서
다음과 같이 또 한 수를 지어올렸다.
春愁 춘수
櫻花爛漫惚嬋娟 앵화난만홀선연
風雨宵晨散忽然 풍우소신산홀연
我亦韶華消瞬息 아역소화소순식
不爲如爾爾年年 불위여이이년년
봄 시름
벚꽃 흐드러지게 피어 눈부시게 고왔는데
밤새 새벽까지 비바람 불어 홀연히 져버렸네
생각하니 내 젊은 날도 순식간에 사라졌는데
벚꽃 너처럼 해마다 다시 피어날 수는 없구나
* 爛漫난만…꽃이 만발하여 볼만함,
嬋娟선연…자태가 곱고 아름다움,
宵晨소신…밤부터 새벽까지,
韶華소화…봄의 화창한 경치, 젊은 시절, 청춘
爾…(1)너 이, (2)꽃이 활짝 핀 모양.
시를 주고 받고 하는 사이에
이 짧은 봄도 속절없이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