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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명/살며 사랑하며

양재천의 아침

  일요일 아침, 오랜만에 집 근처 양재천 뚝방엘 나갔습니다.

  아는 분의 글에서 이름을 알게 된 갈색 투스팔트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하얀 토끼풀꽃과 노란색의 붓꽃이 피어 있었고, 야생인 듯한 패랭이꽃
의 아름다운 색깔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요즘은 아름다운 모습을 보면
이것을 카메라로 찍으면 어떻게 나올까를 생각하며 각도를 가늠해 보곤
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제법 맑게 흐르는 양재천 냇물 속에서 무언가 큼지막한 것들의 움직

임이 있어 가까이 쫓아가 들여다보니, 내 팔뚝보다도 더 굵은 잉어들이
떼를 지어 노닐고 있었습니다. 자세히 관찰해 보니 그 수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고, 여기저기 물을 들여다 보는 분들이 잉어를 구경하고 있
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수 년 간 이 곳을 산책해 보지만 잉어떼를 보기
는 처음입니다. 물이 점점 더 맑아지는 모양이지요? 

   흰 해오라기 한 마리가 물 위에 서서 춤 추듯 움직이며 먹이를 찾고
있었습니다. 물가에 어느새 자라난 커다란 버드나무의 굵은 가지 사이
로 숨을 죽이고 해오라기의 아침식사 장면을 바라 보았습니다.

 

   몇 분(分) 사이에 한 뼘이 넘을 물고기 세 마리를 잡아 삼키는 것을

보면서, 이상하게도 저는 동물원의 한 귀퉁이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이었

습니다. 동물들은 늘 동물원에서만 보아와서 그런지... 바로 집 앞에서

이런 장면들을 본다는 것이 좀 낯설었습니다.

   해오라기보다 훨씬 큰 두루미 종류도 두 마리가 있더군요. 활짝 편
날개 아래쪽에 검은 단을 두른 것을 보니 두루미 같기는 한데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조금 놀라는 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두 마리가 서
로 헤어져 한 마리는 개천의 반대 방향으로 까마득하게 사라져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새들은 다시 만날 약속을 하는지, 아니면 자기들 끼리 서로 다시 찾는

수단이 있는 것인지...저는 쓸데없이 걱정되고 궁금해져서 몇 발자국 떼

지 못하고 다시 돌아 보았습니다. 

   강아지를 동반하는 사람이 꽤 많았는데, 어떤 젊은 학생은 자기 강아
지의 배설물을 깨끗이 치우고 있었습니다. 이른 아침인데도 청소아주머
니 한 분이 부지런히 오가며 청소를 하고 있고, 끌고 다니는 박스를 보
니 빈 병이 열댓 개는 되었습니다. 모두 어젯 밤에 와서 놀던 이들이 버
리고 간 양심입니다. 

   집 가까운 곳에 이렇게 아름다운 생명들이 모여 든다는 사실이 참으로
경이롭게 느껴집니다. 일본의 어느 작은 도시의 개천에 비단잉어가 살고
있던 모습이 생각나네요. 아직 그렇게 되려면 갈 길이 멀지만, 노력하면
결실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 같아 희망을 느낍니다. 

   아직도 군데군데 공사중인 것을 보면, 앞으로 점점 더 좋아질 것 같아

요. 몇 해 전만해도 풀만 자라던 뚝방이었는데, 이젠 큼직한 나무들도 많
이 자라고 있습니다. 빽빽하게 내 키를 훨씬 웃자란 갈대의 파란 줄기와
잎에서 싱싱한 숲 냄새가 물씬했습니다. 훼손하려는 나쁜 마음만 없다면
자연은 아직도 이렇게 우리에게 줄 것이 많은가 봅니다. 

   여러분도 꼭 시간을 내시어 양재천을 한 번 걸어 보세요, 카메라 가지

고 가시면 더 좋고.... (2002. 5.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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