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그림은 김 홍도(金 弘道)의 주상관매도(舟上觀梅圖)입니다.
봄 물에 배를 띄우고 절벽 위의 매화를 바라보는 노인... 그림을 감상하는 우리의 시선(視線)도
배를 띄운 찰랑이는 물에서 절벽으로 그리고 그 위의 하늘로 이어지는 수직 구조의 공간 배치에
서 무언가 범상치 않은 느낌이 드는 그림입니다.
중간에 보면 ‘老年花似霧中看’ 이라는 제시(題詩)가 보이는데, 이 싯귀는 중국의 시성(詩聖)
두보(杜甫)가 늙고 병든 몸으로 배를 타고 고향의 가족을 찾아가다가 배 위에서 죽기 전 그 여행
길에서 쓴 시의 한 구절입니다.
즉, ‘春水船如天上坐 老年花似霧中看 봄 물 위에 띄운 배는 하늘 위에 앉은 듯하고, 늙은이
되어 보는 꽃은 안개 속에 보는 듯하네’ 라는 뜻으로, 앉은 곳이 물인지 하늘인지 이승인지 저
승인지.. 시력은 또렷하지 않아 꽃도 안개 속인 듯 흐릿하고... 늙고 병든 몸으로 노년을 맞은
회한이 서린 구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중인(中人)인 화원(畵員)의 신분으로 정조대왕의 총애를 받으며 그 곁에서 생활하기도 하고
현감 벼슬까지도 누린 김 홍도.. 그러나 정조대왕의 갑작스런 승하 후 몰락의 길을 걷다가 6년
후 죽고 마는 김 홍도의 노년도 그리 행복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주상관매도’라는 그림이 아
마도 이 시기에 그려진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은 두보의 그러한 싯귀를 제시로 쓴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김 홍도는 미남으로 풍채와 언행이 신선 같고 또 그는 그림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글씨와 시
(詩) 심지어는 악기의 연주에도 뛰어나 소위 시서화악(詩書畵樂)의 재주꾼이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들이 조선 동시대인들의 글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1728년에 김 천택이 편찬한 <청구영언>의 이본으로서 1814년에 이 한진이 편찬한 <청구영
언>에서는 김 천택이 수록한 232 수 이외에 25수가 더 추가 되어 있는데, 그중에 김 홍도가 지
었다고 친절한 설명이 붙은 시조 2 수가 있습니다.
먼 데 닭 울었느냐 품에 든 님 가려 하네
이제 보내고도 반 밤이나 남으리니
차라리 보내지 말고 남은 情을 펴리라
이것은 연애시조로서 김 홍도의 풍류를 짐작해 볼 수 있으나, 여기서는 언급하지 않기로 하고
나머지 한 수를 보면,
봄 물에 배를 띄워 가는대로 놓았으니
물 아래 하늘이오 하늘 위가 물이로다
이중에 늙은 눈에 뵈는 꽃은 안개 속인가 하노라
이 시조의 종장(終章)은 두보의 老年花似霧中看 바로 그대로이고, 초장(初章)과 중장(中章)은
바로 전구(前句)인 春水船如天上坐를 멋지게 늘어뜨려 그려낸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두보의 칠
언구 두 줄을 우리의 고유한 시조로 만들어낸 그 점화(點化) 기법이 매끄럽습니다. 김 홍도의 그
림에 올라 있는 글들을 보면 중국 유명 시인들의 시들이 심심치않게 나옵니다. 이로써 우리는 그
가 한시와 시조에도 능한 예술인(藝術人)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노년에 들어 생사를 넘나들 만큼 큰 병(病)을 오래 앓았으면서도 이런 작품을 생산해 낸 그의
예술혼을 높이 사고 싶습니다. 뱃전에 남실남실 작은 물굽이들이 보이고 그것들을 따라 시선을
넓히다 보면, 어디가 물인지 어디가 안개인지 하늘인지.. 그것은 중병으로 정신마저 쇠약해져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헤아리며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생애를 의미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백에 표류하던 시선이 절벽 위에 매달린 매화를 만납니다. 매화가 피었으니 이제 봄이 오고
희망도 따라..... 긴 세월 해마다 새로 품어도 늘 새로운 희망.. 병고 속에서도 그가 품었던 희망
또한 새로웠을 것입니다.
* 참고 : 오 주석 지음 < 김 홍도 > 솔,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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