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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배우다

신묘년 기사의 주어(主語)는? (7)

百殘新羅 舊是屬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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由   來    朝  貢       而  倭   以  辛  卯  年    來  渡  海  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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百  殘  ◯  ◯  ◯  羅    以  爲  臣  民   .......


  이것이 현재 제일 널리 읽히고 있는 소위 광개토대왕 비문의 신묘년 기사(辛卯年 記事)입니다. 

비석 1면에는 모두 11행(줄)의 글이 있는데,  그 중 9번째 줄 즉 9행의 첫 글자부터 번호를 써 놓

것입니다. 즉 由 는 9행 첫 번 째 글자이고, 海 는 9행 13번째 글자입니다.


  해석을 살펴보면.. <(8행: 백제와 신라는 예로부터 우리의 속민이어서) 오래 전부터 우리에게

조공해 왔는데, 신묘년에 왜(倭)가 바다를 건너와서 백제, ◯◯, 신라를 파(破)하고 신민으로

삼았다> 이것이 현재 제일 널리 통용되는 해석입니다. 널리 통용되는 이유는 다음 회에 말씀드

리겠습니다.


  1955년 정 인보가 而倭以辛卯年來 渡海破 百殘 로 끊어서 ‘신묘년에 왜(倭)가 왔고

(고구려가) 바다를 건너 백제를 파하다’ 로 해석하여 渡海破의 주어가 고구려이며 이는 문장에

서 생략되어 있는 것으로 해석한 이후로, 이런 해석이 한국학계의 주류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고구려가 서해 바다로 수군을 출동시켜 백제를 파(破)했다는 뜻이지요.


  이는 북한 학계에도 받아들여져 김 석형 박 시형등도 渡海破의 주어를 고구려로 하는 해석문을

내어 놓았으며, 연변대학의 박 진석도 이를 수용하였습니다. 4세기 말에 왜(倭)는 일본 야마토

방에 국한되어 성립된 초기 고대국가로서, 선진국인 백제와 신라를 파(破)할 형편이 될 수 없다

것입니다. 1972년 일본 사학자 佐白有淸은 ‘신묘년에 왜가 바다를 건너 와 백제와 신라를 파하여

신민으로 삼았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로 고려해볼 때 불가능한 일이다. 도해파의 주어는 고구려일

것이다’ 라고 발표했습니다.


  1984년 중국학자 왕 건군은 주 운대를 시켜 새로이 비문 탁본을 만들고 그것에 입각하여 <백제

와 신라는 원래 고구려의 속민으로 죽 계속해 조공해왔는데, 그러나 신묘년 이래로 왜인이 바다를

건너 백제와 신라를 깨뜨리고 그들을 굴종시켜 (다시는 우리에게 조공을 못하게 했다) 병신 6년에

왕이 몸소 수군을 인솔하여 가서 백제를 쳤다.>라고 해석하면서 고구려를 주어로 한다면 문법상

매우 어색하다는 견해를 밝혔습니다.


  즉, 渡海破의 주어는 어법상 왜(倭)가 맞으며 이는 고구려가 병신 6년의 백제 정벌의 이유를 대기

위해, 백제와 신라가 왜에 굴종하여 조공을 끊었다고 과장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왜인(북구

해적)이 내침하여 살인과 약탈 후 돌아간 것이지, 진정한 臣屬관계를 맺었다거나 더우기 통치기구

를 설치했다거나 주둔군을 파병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즉, 신묘년에 왜가 백제 신라를 파했다는

을 일시적으로 괴롭히고 갔다는 것으로 해석을 하는 것입니다.


  역사학자는 아니지만 저의 견해는 이렇습니다.  위에서 말한 비문 건립자(고구려)의 과장 표현은

설득력이 약합니다. 일본은 7세기 초까지도 통일국가를 형성하지 못하고 야마토 지방의 왜(倭)를

위시한 여러 개의 소국으로 나뉘어 있었고(수서<隋書>), 따라서 당시 왜의 국력은 백제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미미했는데, 비석 건립자인 장수왕의 자존심이 ‘왜가 백제 신라를 파하여 신민으로 삼

았다’는 과장이 아닌 허구를, 부왕(父王)의 훈적비에 써 넣도록 허용하였을까?


  또한, 渡海破의 주어를 고구려로 보는 것도 아무래도 좀 어색한 구석이 있습니다. 주어인 고구려를

생략한다면, ‘왜가 신묘년에 바다를 건너와 백제 신라를 파하였다’ 라고 오독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문장에서 왜 굳이 주어인 고구려를 생략했을까... 이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문제의

체(要諦)를 비문 글자 판독의 부정확성으로 보는 것입니다. 즉,  원래 새겼던 글자가 아닌 다른 글자

판독 해석하였기에 이런 일이 생긴 것으로 생각합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