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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배우다

고고학적인 증거 (5)

  1982년 일본 야마토 지방의 4~6세기 고분 60 기(基)에서 출토된 도검,

화살촉, 마구, 갑옷등의 철제품 106점을 과학적 방법으로 조사한 결과,

철제품들은 한반도 가야 지방의 출토 철제품들과 아주 흡사하다는

론이 나왔습니다. 이 철제품들은 일본의 다른 지방에서 나온 출토품

의 성분과 다르며, 4세기 때의 것이 제일 품질이 좋고 5, 6세기로 갈수록

점점 품질 이 나빠진다고 하였습니다.(김달수, 1986)


  일본은 5세기 말까지도 철을 생산하지 못하다가 6세기 초부터 비로서

철을 생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즉, 고분시대 전기의 왜국이 철제품을

입하다가 고분시대 후기인 6세기에 이르러서야 자체적으로 철(鐵)을

산하기 시작했기에, 5, 6세기 고분의 출토 철제품의 품질이 전기 고분

대의 수입품에 비해 조악(粗惡)하였던 것입니다.


  왜(倭)의 철제품 수입은 백제-가야-왜 로 이어지는 동맹 교역 구도를

통하여 이루어졌습니다. 한반도 남부의 가야는 2, 3 세기부터 왜(倭)에

게 철을 비롯한 물적 자원을 수출하면서, 왜로부터는 주로 인적자원(군

사력)을 받아 들이는 교역 구도를 이루고 있었던 것입니다. 고구려-신라

동맹에 대항하는 백제-가야 동맹은 자연히 백제-가야-왜 로 이어진 것

입니다.(김태식, 2005.  임 기환, 2005)


  일본의 저명한 역사 교과서의 하나인 상설일본사(詳說日本史)’에 보면,

<야마토 조정은 4~6세기에 생산 기술과 철자원을 확보하기 위하여 조선

반도로 진출, 아직 소국가군이었던 한반도 남부의 변진제국(弁辰諸國)을

세력하에 두었다. 그것이 임나(任那)이다. 그들은 변진이었던 가야에 ‘임

나일본부(任那日本府)’를 설치하고 약 200년간 한반도 남부를 식민지배

였다....운운> 으로 되어 있습니다.


  군사력 면에서 비교도 되지 않는 왜국이 백제-가야-왜 의 교역 축을

이용하여 선진 철제품을 받아들이던 일을, 마치 그들이 한반도 남부를 식

민 지배하면서 선진 문물을 가지고 간 것으로 호도하고 있는 것이 소위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인데, 이는 당시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일

(日本)’이라는 이름을 억지로 갖다 붙인 낯부끄러운 주장인 것입니다.


  현재 일본의 여러 학자들도 이러한 주장의 허구성을 인정하는 분위기이

지만, 교과서 문제에 이르면 잘못을 바로 잡으려는 노력은 찾아보기 어렵

고, 오히려 그 왜곡이 더 공고해지고 있는 느낌입니다.


  서두에서 말씀드린 것 이외에도 고고학적인 증거는 물론 많습니다. 어떤

일을 역사적인 사실(史實)로 판명하자면, 그 일이 자국의 역사서와 주위

나라들의 역사서의 내용과 맞아 들어가야 할 뿐 아니라, 다양한 고고학적인

증거로서 증명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문제가 되는 일본의 주장들은 역사

서들의 내용에 비추어 볼 때에도 너무 무리한 것들일뿐이 니라, 고고학적

인 증거에 역행하는 것들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