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퇴근길은 25년째, 압구정로에서 시작하여 청담동을 거쳐 대치동 언덕을 넘어가는
길이다. 러시아워에 자동차로 30분 걸리는 이 길을 이제 눈 감고도 갈 수 있을 정도가 되었
으니 어지간히 오래도 되었다.
대치동으로 들어가는 동구(洞口)에는 포항제철의 높다란 사옥(社屋)이 자리 잡고 있는데,
유리로 된 그 빌딩 안에 설치되어 있는 백남준의 TV 작품이 밖에서도 보인다. 저 안에 들어
가서 제대로 한 번 감상해보리라 다짐만하다가 25년 세월을 보냈으니, 작은 여유도 없이 시
간에 쫓겨 게으르게 살아온 것을 반성하게도 된다.
대치동은 이름 그대로 동구에 언덕이 있어서 그 마루턱에 올라서면, 방금 달려온 청담동
길도 그리고 반대쪽 대치동과 개포동까지도 잘 보인다. 한쪽으로는 지하철 2호선이 또 한쪽
으로는 3호선과 분당선이 땅속으로 분주히 달리고 있고, 어둠이 내린 거리는 양쪽 멀리까지
끝없는 불빛의 물결을 이루고 있다.
1960년대까지도 이곳은 한적한 시골 마을이었는데, 그 후 서울이 강남으로 벋어오면서 줄
기차게 개발이 거듭되어 오늘날 이렇게 번잡한 도심을 이루게 된 것을 모르는 이는 없다. 우
리가 젊을 때부터 ‘한강의 기적’이란 말을 들어왔지만, 그 말의 진면목이 바로 이 모습이 아
니고 무엇이겠는가! 그야말로 상전(桑田)이 벽해(碧海)가 되어가는 모습을 우리 세대는 줄곧
지켜보며 살아온 것이다.
江南夜岸步遊看 강남의 밤 언덕을 거닐며 바라보니
地鐵奔馳晃火瀾 지하철이 달리고 거리는 불빛의 물결
五十年前玆僻鄙 오십년 전 이곳은 궁벽한 시골
桑田碧海夢中觀 뽕밭이 바다 됨을 꿈속에서 보는 듯
이런 나라를 부정(否定)하고 뒤집어엎겠다는 사람들과 그 편을 드는 사람들은 도대체 그
속이 어떻게 생긴 사람들인지 대단히 궁금하다. 자손 대대로 발전의 과실(果實)을 즐길 수
있어야 할 텐데, 휴전선 넘어 도사리고 있는 세력들과 이웃 강대국들의 행동거지도 참으로
수상하여 불안하기만한 요즈음이다.
대치동 언덕에서 밤에 남쪽을 바라보면, 멀리 대모산으로 올라가는 산책길을 밝히는 가로
등이 마치 애인의 목걸이처럼 검은 산에 걸쳐 빛나고 있다. 주말에 저 길을 올라가 보아야지!
내 나라 내 땅에서 마음대로 즐길 수 있는 이 자유가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우리가 자주 잊어
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퍼온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