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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漢詩)의 맛과 멋

일출 (日出)

지난 11일 새해 아침,

 

나의 카톡방에 친구들이 올린

일출 사진이 연속 올라왔다.

 

부지런한 친구들은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시간에

 

가깝고 또는 먼 산으로

또는 시야가 넓은 강으로 나가

 

떠오르는 붉은 해를

찍은 사진들을 올렸다.

 

나는 내 집 창문으로

 

친구들의 사진에서보다는

조금은 붉은 기가 가신

새해 첫 해()를 보며

 

또 한 해를 지내보라고

주신 분에게 감사를 드렸다.

 

그런데 곧 이어 카톡방에

또 올라오는 사진들은

 

서산에 지는

동그란 달을 찍은 것들인데,

 

떠오르는 첫 해()

작년 마지막 달()

 

한 하늘에

잠시 공존했던 일을 두고

 

한 친구가, 이는 마치

두보(杜甫)와 이백(李白)

석문(石門)에서 이별을 하는 듯하다고

그야말로 한 줄의 시 같은 글을 올렸다.

 

아하,

경자년(庚子年)의 달이

신축년(辛丑年)의 해와

한 하늘에서 아쉬운 이별을 하였구나

 

흔치 않은 일일 텐데

기록해두자는 의미에서

 

나는 즉시 한시(漢詩)를 한 수 썼다.

 

 

新年初日壯昇東  신년초일장승동   

昨月西山惜落中  작월서산석락중   

辛丑日逢庚子月  신축일봉경자월   

吉祥元旦上帝功  길상원단상제공   

 

새해 첫 아침 해가 장엄하게 떠오를 때

지난 밤의 달이 아쉽게도 막 서산에 지네

신축년 첫 해가 경자년 막 달을 만났으니

상서로운 새해 아침 하느님의 조화일세

 

몇 시간 후에

()를 읽은 친구가 톡을 보내왔다.

 

여보게, 아직은 경자년일세,

 구정날 아침에 쓸 법한 시를

 신정 아침에 올렸구려

 

아뿔싸, 그렇구나!!

어찌 그것을 모르고 시까지 썼단 말인가

 

 

조선 선조 때 대사헌을 지낸

채유후(蔡裕後)라는 분이

친구와 동호(東湖)에서 뱃놀이를 계획하고

 

집에서 미리

그날 쓸 시()를  구상하면서

 

시를 드라마틱하게 하기 위해

자신이 실수로 뱃놀이 중에

물에 빠지는 일을 생각해 냈고

 

실제로 그날이 오자

뱃놀이를 하면서

 

미리 구상한 시에 맞는

상황을 만들려고

일부러 실수를 가장해서

물에 빠진 일이 있었다.

 

미리 시를 써놓고 

상황을 그 시에 맞춘 것이라고 할까.

 

나도, 자신도 모르게 시를 미리 써놓고

흐뭇이 감상하던 중

친구의 톡을 받고 나서

 

조금 민망한 기분을 뒤로 하고

이리저리 자료를 찾아보니

 

구정 날도 이런 현상이

있을 것이라는 예상이 들었는데

 

멀리 갈 계획은 없고

친구가 석문의 이별을 감상한

한강가로 나가야겠다.

 

다행히 이별 장면을 본다면

나의 시는 살아나는 것이고

 

그렇지 못하다면

어렵사리 쓴 시를 묻어야 한다.

 

글피가 그 아침,

구정날 신축년의 첫 날이니

모래는 일찍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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