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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漢詩)의 맛과 멋

가을날

가을이 되면

무성했던 나무들도 잎을 떨구고

 

차가운 바람이 불어 오니

마음도 따라 슬쓸해진다고들 말한다.

 

모든 것이 얼어붙을 겨울을 생각하면

더욱더 움츠러들기 마련이다.

 

그러나 마음 속에 늘

고상한 기운을 간직한 사람들은

가을에 쓸쓸해할 틈이 없다.

 

외롭지만 고고(孤高)한 한 마리 학()처럼

시인의 마음은 맑고 정갈한 시정(詩情)

펼치기에 맞는 계절이 가을이다.

 

秋詞                               추사

                 

自古逢秋悲寂寥    자고봉추비적요

我言秋日勝春朝    아언추일승춘조

晴空一鶴排雲上    청공일학배운상

便引詩情到碧霄    편인시정도벽소

 

 가을에 

 

예부터 사람들 가을이면 쓸쓸해하는데

나는 가을의 햇볕이 봄날보다 좋다네.

해맑은 하늘에서 학 한 마리 구름 제치고

마음의 시정 끌고 푸른 하늘로 날아오른다.

 

() 시인 유우석(劉禹錫, 772-842)

작품 가을에(秋詞, 추사)’라는

연작시 두 수()중의 첫 수이다.

 

곧 엄동(嚴冬)의 매서운 겨울이 오더라도

시인은 조금도 움츠러들지 않고

 

삶의 의미를 찾아

안으로 안으로 채찍질하며 분발할 뿐이다.

 

나의 벗 J

친구에게서 이 시()를 받아보고

 

운자(韻字)인 소 운목(蕭 韻目)

()-()-()를 그대로 받아쓰되

순서를 조()-()-()로 바꾸어

다음과 같은 화운시(和韻詩)를 써 보냈다고 한다.

 

誰言秋日勝春朝   수언추일승춘조

凉雨凄凄夜寂寥   양우처처야적요

社燕寒鴻臨遇別   사연한홍임우별

依稀蟾魄掛雲霄   의희섬백괘운소

 

가을날이 봄 아침보다 낫다고 누가 말했나

가을비 쓸쓸히 내리고 밤은 적요한데

제비와 기러기는 만나자마자 헤어지고

달은 구름낀 하늘에 걸려 희미하구나

 

 * 社燕秋鴻사연추홍봄 제비와 가을 기러기,

   즉, 잠깐 만났다 곧 헤어지는 이별.

   여기서는 추() 대신 한()을 사용.

   依稀의희희미함,  蟾魄섬백달의 별칭.

 

어떤 시에 대해 화운시를 쓸 때

원래 시의 운자를 순서도 그대로 가져와

쓰는 것을 차운(次韻)이라고 한다.

 

이때 J 처럼 운자를 그대로 쓰되

그 순서만 바꾸어 쓸 경우를

용운(用韻)’이라고 한다.

 

또한 원래 시의 운자가 속한 운목의

다른 운자를 섞어 쓰는 경우를

의운(依韻)’이라고 한다.

 

나는 J의 시에 의운(依韻)하여

()-()-()를 운자를 쓴

다음과 같은 시를 써 보냈다.

 

      秋日                        추일

 

雙鴉相伴下林朝    쌍아상반하림조

査査和鳴破寂寥    사사화명파적요

夕霧凉風聞雨滴    석무양풍문우적

單衾控被睡深宵    단금공피수심소

 

가을날

 

까마귀 두 마리 쌍지어 숲에 내리는 아침

까악까악 화음소리 적요함을 깨는구나

저녁 안개 서늘 바람에 빗소리 들리더니

한밤중 잠결에 홑이불을 당겨 덮네

 

* 査査사사..까악까악, 單衾단금홑이불

  控당길 공, 被덮을 피,  宵밤 소.

 

 

상대방이 쓴 시의 운자를 사용해서

비슷한 내용의 다른 시를 써서 보내는

한시(漢詩) 유희(遊戱)가 참으로 재미있어서

 

는 비록 고상한 사람은 아니지만

가을이 와도 쓸쓸할 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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