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시(漢詩)의 맛과 멋

도불원인(道不遠人)

흔히 43(四書三經)이라 불리는

책 중에서 <中庸중용>13장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子曰 道不遠人 人之爲道而遠人 不可以爲道.

자왈 도불원인 인지위도이원인 불가이위도

 

(공자 왈, 道는 사람과 멀리 있지 않으니

道를 행한다고 하면서 사람을 멀리하는 것은

진정한 道를 행함이 아니니라)

 

여기서 ‘道’는 도리(道理) 또는

진리(眞理)쯤으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조선 선조(宣祖)때

백호(白湖) 임 제(林 悌)라는 분이 있었다.

 

스승인 성 운(成 運)이 속리산에 은거하자

그 밑에 들어가 공부하였다.

 

이때 그는 <中庸>을 800번이나 외웠다고 한다.

 

이후 과거에 급제 했으나

당쟁(黨爭)에 휘말리기 싫어

방랑생활을 하다가 길지 않은 생을 마쳤다.

 

 

그가 속리산에 있을 때

위의 <중용> 13장에 나오는 구절을

속리산(俗離山)과 엮어서 지었다는

다음과 같은 시구(詩句)가 전해진다.

 

道不遠人人遠道  도불원인인원도

山非離俗俗離山  산비이속속리산

 

(道는 사람을 멀리하지 않는데

사람이 道를 멀리하며,

산은 속세를 떠나지 않는데

속세가 산을 떠나는구나)

 

구(句)마다 첩자(疊字)가

세 쌍(雙)이나 들어 있고

 

더구나 상하 구(句)가

서로 대(對)를 잘 이루었으며

 

그 내용도 가볍지 않고

재치가 돋보이는 구절이다.

 

볼 때마다,

그가 이 두 구(句)에 이어지는

두 구(句)를 더하여 7언 절구를 썼다면

 

그는 과연 어떻게 썼을까…

늘 생각해 오다가

 

제2구의 끝자인 山과

같은 운자(韻字)를 써서

완성해보고 싶은 마음에

 

어렵사리 환(寰)자를 운자로  정하여

다음과 같이 써 보았다.

 

道不遠人人遠道    도불원인인원도

山非離俗俗離山    산비이속속리산

罰無生罪罪生罰    벌무생죄죄생벌

寰勿厭人人厭寰    환물염인인염환

 

도가 사람을 멀리하는 게 아니라 사람이 도를 멀리하니

산이 세속을 떠난 게 아니라 세속이 산을 떠난 것이고,

벌이 죄를 생겨나게 하지 않고 죄가 벌을 낳는 것이니

세상은 사람 싫어하지 않는데 사람이 세상을 싫다 하네.

 

온갖 죄는 사람이 스스로 지으면서

모두 세상 탓을 하는 세태를 그려본 것인데

 

뭔가 좀 부족한 듯하고 마음에 차지 않아서

친구에게 보시라고 詩를 보냈더니

 

얼마 안 가 다음과 같은 詩가 내게 날아왔다.

 

道不遠人人遠道    도불원인인원도

山非離俗俗離山    산비이속속리산

月無明日日明月    월무명일일명월

顔未作心心作顔    안미작심심작안

 

도가 사람을 멀리하는 게 아니라 사람이 도를 멀리하고

산이 세속을 떠난 게 아니라 세속이 산을 떠난 것이네,

달이 해를 비추는 것이 아니고 해가 달을 비추는 것이고

낯빛이 마음을 만드는 것이 아니고 마음이 낯빛을 만드네.

 

하아~! 걸작이로고.

 

나는 운자(韻字) 고르기가 그리 어려웠는데,

친구는 어찌 저리도 딱 맞는 운자인

안(顏, 얼굴 안)자를 고르셨는가!

 

日月과 心顏의 대(對) 또한 기가 막히고

그 품은 뜻마저 심오하구나!

 

역시 친구는 나보다 한 수(手) 위다.

 

이런 친구를 두었으니

나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한시(漢詩)의 맛과 멋'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창(酬唱)  (0) 2021.09.14
가을날  (0) 2021.09.06
죽설헌 (竹雪軒)  (0) 2021.06.15
고향 (故鄕)  (0) 2021.05.12
어린이날 (兒童節)  (0) 2021.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