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만에 다시 와보는 곳인가
숙소의 넓은 창(窓)으로,
선친(先親)이 어린 시절을 보낸
옛 고산(故山)과
그 아래 마을이 아스라이 보이고.
그 앞바다의 작은 등대도 보인다.
거의 100년 전
내가 닮은(?) 예닐곱 살 아이(죄송)가
저 마을에서 뛰어놀던 장면 속으로
생각은 빛의 속도로 달려간다.
그리운 그 얼굴이여
생(生)의 유한(有限)함이여,
덧없음이여...
거제(巨濟) 고현시장 앞의
식당에 들어가
멸치쌈밥과 회무침을 시켰는데,
여사장님의 주머니에서
내 핸드폰 소리가 울리기에
밥을 먹다가 깜짝 놀랐다.
여사장님의 벨소리가
나의 벨소리와 같은
차이코프스키의
‘소중한 날의 추억’이었던 것이다.
이도 흔치 않은 일인데
더구나 세례명이 ‘마르티나’인
카톨릭 신자라 하시니
더욱 반가워서
다음날도 그 식당에 다시 찾아갔다.
저녁이 되니 둥근 보름달이 떴다.
몽돌 해안을 아내와 걷자니
자그락 자그락 몽돌 밟는 소리에
도시에 두고온 근심이
부서져 떨어져 나가는 듯하다.
내 사랑하는 가족들과 벗들의
다정한 눈빛을 떠올리니
내가 세상 일에 더 바랄 것이 무엇인가
매사에 감사하며 겸허하게
살아갈 일만 남지 않았는가.
보름이라 달이 밝아
몽돌밭에 희미한 내 그림자가
여기까지 나를 따라와
함께 자그락 자그락 걷고 있다.
巨濟島
朝烟鋪海故山迷 조연포해고산미
島受千濤削擺齊 도수천도삭파제
日暖燈臺無恙瞌 일난등대무양갑
松林鳥雀惜春啼 송림조작석춘제
거제도
아침 안개 바다를 덮으니 옛 고향 산 희미한데
천년 파도에 깎인 섬은 아랫단 가지런하구나
외로운 등대 하나 따스한 햇살에 졸고 있고
소나무 숲 새들은 가는 봄 아깝다고 지저귀네
玉輪晃朗海香浮 옥륜황랑해향부
傾耳潮波欲洗愁 경이조파욕세수
忽憶情人靑眼在 홀억정인청안재
水邊從影忘機遊 수변종영망기유
둥근 달 휘영청 비추고 바다 냄새 스쳐 오니
파도소리 들으면서 두고 온 근심 씻어 보려고
홀연히 사랑하는 이들 따스한 눈빛 떠올리며
욕심 잊고 내 그림자 따라 바닷가를 거니네
* 鋪海포해…바다를 덮다, 鋪덮을 포,
千濤천도…천년 파도, 削擺齊삭파제…(파도가)섬
밑부분을 깎아, 섬 밑단의 바위가 가지런히 보임.
削깎을 삭, 擺옷의 아랫단 파, 齊가지런할 제,
無恙무양…아무 나쁜 일 없이, 瞌졸 갑,
惜春석춘…봄을 아까워 함, 惜아낄 석,
玉輪옥륜...달, 둥근 달, 晃朗황랑…휘영청 밝은 모습,
靑眼청안…반가워하는 눈빛, 忘機망기…기심을 잊다.
機心기심…기회를 보고 움직이는 마음, 간교하게 속이거나
책략을 꾸미는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