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조선일보를 보니
버지니아에 사는 게일 허(85세) 여사가
소치(小癡) 허 련(許 鍊)의 자손인
시아버지에게서 물려받아 보관해오던
조선 회화 13점을 한국에 기증하였다고 한다.
신문에 실린 사진은 송도대련(松圖對聨).
한 그루의 노송을 각각 그린
두 장의 소나무 그림에는
만당(晩唐)의 이산보라는 시인의 시구가 쓰여 있다.
平生相愛應相識 평생상애응상식
誰道脩篁勝此君 수도수황승차군
“내 평생 소나무를 사랑하여 왔으니
누가 대나무가 이 분(소나무)보다 낫다고 했는가“
시인은 소나무를 한갓 나무로 보지 않고
이 분(=此君, 차군)이라고 쓰고 있다.
그런데
이 ‘차군’이라는 말은 원래 4 세기 동진(東晉)의
서예가 왕휘지(王徽之)가 대나무를 사랑하여
何可一日無此君耶
하루라도 이 분이 없이 어찌지내랴, 라고 했고
저 유명한 소동파의 시(詩)에
可使食無肉 不可居無竹
無肉令人瘦 無竹令人俗
人瘦尙可肥 士俗不可醫
傍人笑此言 似高還似癡
若對此君仍大嚼
世間那有楊州鶴
식사엔 고기가 없더라도
집에 대나무가 없으면 안돼
고기 없인 사람이 마르지만
대가 없인 사람이 속되어 지네
사람이 마르면 살찌울 수 있지만
선비가 속되면 고칠 수 없네
옆 사람들은 이 말을 비웃으며
고상한 것 같아도 바보같다고 하네
만약 ‘이 분‘을 대하고도 많이 먹는다면
세상에 양주학이란 말이 어찌 생겼겠는가
라고 나오는 바,
‘차군(此君)‘을 이렇게
소나무에도 존중하여 쓴 분이 있다.
며칠 전 압구정동의 골목을 지나다가
공간을 재활용하려는지
그곳에 멋지게 자라던 푸른 대나무를
마구 베어 바닥에 쌓아 놓은 것을 보고
대나무보다 더 멋진 데코레이션이 있을까
하며 홀로 아쉬워한 적이 있다.
한자(漢字) ‘군(君)‘은 임금, 존경하는 사람, 친구,
또는 아내를 예(禮)스럽게 부르는 말인데
흔히 차군(此君)이라고 하면
대나무의 아칭(雅稱)으로 알려져 있지만
당나라의 어느 시인은 자기가 좋아하는
노송(老松)도 차군이라고 불렀음을 알고
몇 자 적어 본 것이다.
대문 앞에 키 큰 푸른 대나무들이
서걱서걱 흔들리며 자라는 친구의 집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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