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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漢詩)의 맛과 멋

산사 (山寺)

친구 L은 홀로 여행을 좋아하였다.

 

대학시절 방학을 하면

어느 샌지 행방을 알 수 없었다.

 

얼마 후 설악산 산사(山寺)에서

상큼한 공기가 묻은 것 같은

엽서가 날아들곤 했다.

 

아하 이 친구 또 소식도 없이

산사에 숨었구나.

 

투우장(鬪牛場)에는 소들이 대기하는 곳,

즉 케렌시아(Querencia)가 있다고 한다.

 

싸우러 나갈 소들이 쉬고 있거나

힘써 싸워 지친 소들이 쉬며 힘을 얻는 곳,

 

돌이켜보면 그는

쓸쓸하지만 혼자만의 케렌시아에 숨어

 

가지고 있는 고민거리(?)에 대해

이리저리 결론을 얻으려

사고(思考)하고 있었던 것이다.

 

반면에 그에 비해 철없던 나는

혼자 여행하는 것을 싫어하여

 

어딜 가나 친구들과

어울려 가는 것을 좋아했었고

 

나이든 지금까지도

왜일까 나는 일부러 홀로 여행을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는 사람이 되어 있다.

 

아직도 현역으로 일하고 있어서

모처럼의 여행기회가 생기면

 

아내와 손자와 함께 가서

즐길 수 있는 스케줄을 짜기 바쁘니

 

어차피 나는 홀로 여행은 글렀고

오래전에 무정스레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친구 L 

 

내가 그 자신이 되어

겨울  산사(山寺)로 나홀로 떠나

 

고독한 존재가 되어 보는

상상(想像)을 해볼 도리 밖에 없다.

 

 

初冬古寺暮森森     초동고사모삼삼

展冊禪房坐擁衾     전책선방좌옹금

千緖萬端侵客夢     천서만단침객몽

楂楂鵲破寂寥心     사사작파적요심

 

초겨울 옛 절에 저녁 나무들 울창한데

선방에 책 펴고 이불 두르고 앉았으니

이런저런 잡다한 생각 마음에 걸리는데

쏙똑쏙똑 까치소리 고요한 적막을 깨우네

 

西山落日上燈初     서산낙일상등초

北斗寒風暗太虛     북두한풍암태허

砌立夜深明雪月     체립야심명설월

檐鈴朗朗客愁餘     첨령낭랑객수여

 

서산에 해는 지고 등불 처음  달고나니

북두성 뜬 어둔 하늘 찬바람만 불어오네

밤 깊어 섬돌에 서니 눈과 달은 외려 밝고

풍경 소리 낭낭하니 나그네 시름만 남도다

                                             (2023. 1)

 

* 森森삼삼나무가 우거져 무성함,

  展冊전책책을 펴다, 펼 전, 擁衾옹금이불을 두르다.

  千緖萬端천서만단수없이 많은 일의 갈피,

  楂楂사사까치 우는 소리,  

 

  太虛태허하늘, 砌立체립섬돌에 서다, 섬돌 체,

  檐鈴첨령처마에 달린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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